응시

가여운 것들 | poor things

by 무화

poor things를 응시하는 자



과잉과 결핍이 지독하게 공존했던 '키메라'의 시대. 도덕과 위선이라는 가운을 걸친 과학자와 발명가들은 이성을 부르짖었고 갖가지 미신과 신, 전설과 도시 괴담을 믿던 대중들은 벌거벗겨진 채 울부짖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태어나 '빅토리아'라는 이름을 죽이고 '벨라'로 재탄생하게 되는 여성과 그녀를 둘러싼 남성들의 이야기.

진실은 무엇이고 거짓은 무엇인가.



part 1.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라면.



남성의 소유물로 취급받고 거래되던 무지성의 여성이 비약적인 뇌의 발달로 처참한 세계를 목도하고 모험하며 비로소 반짝이는 자아를 완성해 낸다는 류. 이런 클리셰는 이제 씨알도 안 먹힌다고. 거기에 에피타이저격인 의뭉스러운 초반 설정덕에 오토리버스 리딩의 세계가 펼쳐지네? 아. 이 일을 어쩌나. 그런 와중에도 술술 읽힌다. 점점 재미져... 이 글로벌한 세계관은 뭐람? 결말이 궁금해 자꾸만 뒷장으로 넘기려는 손가락 겨우 저지시켰네. 나대지 마라 손가락 너.


나는 전문적인 의심가라고.



part 2. 여어... 이 흥미로운 조짐은 뭐지?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빅토리아 맥캔들리스의 편지는 이 이야기를 완전히 전복시킨다. 새로운 관점 제시는 물론이거니와 이야기를 한층 풍요롭게 살찌운다. 서사의 중심에 섰던 벨라를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할 여지를 준달까? 일단, 이 걸작에 대해 괴랄이라 단정 지었던 내 시선을 거두겠다. 속단이었다. 암쏘쏘리벗알러뷰. 구멍이 숭숭 뚫린 벽돌로 쌓아가던 벽돌집에 탄탄한 철근콘크리트가 입장한듯하다. 미장도 고급스럽다. 아트 미장? 이야기는 쓰러지지 않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진한다. 그것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벨라가 아닌 고드윈을 향해.



part 3. godwin & 요르고스 란티모스



'갓'이라 불리는 고드윈. 그는 아버지에게 진보와 기술을 전수받지만 췌장을 제거 당해 퇴화되었다. 대부분의 어류들도 소화액을 분비한다는 점에 기반한다면 피조물이자 아들인 고드윈에게 신은 원시생물로의 회귀를 자행한 셈이다. 고드윈은 심지어 고자다. 기술이 있음 뭐 하나, 생산성이 제로인 걸. 모든 것을 주고 가장 중요한 걸 앗아 간 존재를 우리는 숭배해야 하는가?


그와 달리 고드윈은 벨라에게 급진적 진화를 선물한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 갖은 노력은 물론이거니와 '결합'까지 거부한다. 자신은 프랑켄슈타인의 슬픈 피조물이었지만 벨라에겐 진짜 god win을 보여 준 셈.


마치 심해어 같은 얼굴로 기포를 뻐끔거리는 고드윈은 자신은 왜곡된 어류의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음을 자각하고 벨라의 도약을 돕는다. 영화에서 벨라가 비약적인 도약을 할 때마다 물고기의 등을 타고 전진하는 등의 물속 세계가 그려지는데 이는 그 자체로 고드윈의 지지를 보여준다. 마치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모놀리스를 던지는 장면과 유사한 심상. 그런데, 여기서 묘한 지점이 발생한다.



part 4. poor things



가여운 것들을 응시하는 건 대체 누구인가? 아니 무엇인가?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 속 인공 지능 '할'은 인간들을 응시한다. 할로 형상화 된 진보와 기술은 약한 인간을 돕지만 죽이기도 한다. 분출하듯 생기를 뿜어대던 벨라의 에너지는 뇌로 집중된다. 진보 속에 갇힌 에너지는 벨라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그런 그녀ㅡ발전ㅡ를 바라보는 진보의 시선에는 무엇이 자리해야 하는가? 부조리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가엾다ㅡ징징대는 웨더번마저도ㅡ각각의 이유와 각각의 상황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급변하는 세계에서 필연적으로 가엾어질 우리를 바라볼 시선. 그 속에 무얼 담을지는 우리만이 선택할 수 있다.



아주 오랜만에 결말을 궁금해하며 읽었다. 재독 예약. 처음부터 끝까지 블랙 유머다. 영화는 전지적 카메라 시점으로 철학을 완성했다. 그 모든 엄한 것들을 제끼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발랄함에 한 박자 늦게 환호.



어떤 관점으로 이 작품들을 보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무게 추를 움직여가며 즐기시길 바란다. 메시지? 좋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건 예술로서의 '표현'이다.



● 도서 : 가여운 것들 - 앨러스데어 그레이
● 영화 : 가여운 것들 - 요르고스 란티모스
● 확장 영화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HER
● 확장 소설 : 여자의 재능을 질투하는 찌질한 남자 토니와 수잔



Cinema Reading Enjoy Arti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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