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파이 이야기 | LIFE OF PIE

by 무화


1884년 난파된 미뇨네트호에는 4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식량이 떨어져 가던 와중 갈증을 참지 못한 어린 선원은 바닷물을 마신 후 탈수로 죽어가고 있었고 이에 선원들은 어린 선원을 죽여 식량으로 이용하고 만다. thirsty로 인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소년의 이름은 리처드 파커. 바로 파이 이야기 속 벵골 호랑이의 이름이다- 얀 마텔은 이 실화를 모티프로 소설을 창작해냈다- 그렇다면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정당한가? 공리주의에 대한 질문으로 이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캐나다로 이주하기 위해 가족과 동물들이 함께 화물선에 오르지만 태평양 한가운데서 배는 좌초된다. 네 마리의 동물들과 구명보트에 오른 파이. 이후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과 오랑우탄, 하이에나는 우여곡절 끝에 죽음을 맞이하고 커다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의 227일 동안의 숨 막히는 동거 끝에 파이는 구조된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진짜 이야기가 아니라 더 나은, 더 prefer 하는 이야기를.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이름

thirsty = 목마름. 갈증. 욕망. 본능에

파이의 이름을 무한함으로 치환해 조합하면 파이이자 리처드 파커인 thirsty의 이름은 무한한 갈증으로 설명된다. 표면적으론 물과 음식이고 생과 신, 그리고 이야기에 대한 무한한 갈증.

이 세 가지를 기준 삼아


1. 동물들이 나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2. 인간이 나오는 그럴듯한 이야기

3. 이도 저도 아니라 그저 상상 속의 이야기


로 파이 이야기에 대해 떠들어보겠다.





첫 번째 이야기를 선택한 당신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즉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종교적 신념과 생존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이다. 이야기의 본질. 즉 어차피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미'사실'이 아니고 창작의 요소가 들어있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고 이해하는 대로니까. 그리고 이야기 또는 신, 종교에 대한 객관적, 주관적 이해는 시대적 맥락 안에서 가능하고 세계관에 따라 다르다. 리처드 파커는 생존을 위한 긴장도를 올려주는 장치였고 불가능을 통해 신을 믿게 해주는 도구로 존재한다.


구조될 기회가 살짝 빗나갔을 때 파이는 뜬금없이 리처드 파커에게 사랑고백을 한다. 순수하고 자유롭고 무한하게 넘쳐나는 감정. 절망 앞에서 느끼는 신에 대한 사랑. 항상 내 곁에 계신다는 그 느낌으로 선포한다. 익숙한 클리셰다. 구조되며 태평양의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도 파이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옷과 음식을 주고 미숙아처럼 보살피고 문을 열어주는 이에게 감사한다. 단 하나뿐인 복도는 길었지만 쉬웠다.' 신(어떤 신이 든 간에)에게로 가는 여정, 감사의 인사로 보인다.


그래서 나도 신을 믿게 되었냐고?

음... 370p에 나오는 파이의 말에 어리둥절한 건 맞다.





"호랑이는 존재해요. 구명보트도 존재하고 바다도. 당신의 좁고 제한된 경험에 그 셋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죠"


나는 경험하지 않거나 보지 못한 사실은 믿지 않는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한동안 골똘해질 것 같다.





두 번째 이야기를 선택한 당신과 나는 그럴듯한 이야기. 무덤덤하고 메마른 붙박이장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이에나는 프랑스 요리사, 얼룩말은 다리 다친 선원, 오랑우탄은 파이의 엄마 그리고 보트의 방수포를 포함해 구명조끼, 힌두교를 상징하는 오렌지색은 호랑이이자 파이였다.


방수포 아래에서 튀어나와 하이에나(요리사)를 죽이는 장면은 파이의 무의식. 또는 본능이 표출되는 가장 극적인 씬이고 괴물의 욕구, 비도덕적인 단순성 속 욕구라 묘사된 감정 또는 행위는 '본능' 즉, 살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 인한 살인과 식인을 암시한다. 그리고 아사 직전의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미어캣으로 가득 찬 해초 섬에 도착한 후 '생명을 되찾았다'라 표현한다.


에너지를 모으는 기능을 하는 해초는 근섬유조직을, 미어캣은 구더기 떼, 초록 나뭇잎은 식물학자인 엄마를 뜻하는듯하다. (영화 속 섬은 드러누운 여성의 모습)


식인도 모자라 엄마를.



굉장히 혐오스럽고 불경하다할 수 있으나 극에 치달았을 때 생명에 대한 욕구는 지금의 이성으로는 판단불가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세계관, 맥락 안에서 이해돼야 할 문제라는 뜻이다.

뉴기니의 어느 부족은 장례의 절차이자 의식으로 식인을 한다, 먹음으로써 일체화되고 먹는 것이 곧 효심을 뜻한다는 것.


구더기에게 먹히는 것보다 가족이 취해주는 것이 훨씬 고결한 일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윤리적 딜레마는 존재하겠지만 현상은 이렇듯 맥락 안에서 이해해 보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기도 하는 법이다. 영화 #Alive 속 청년들은 동료의 궁뎅이를 참치뱃살마냥 먹는다. 이 영화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가톨릭사제인가? 여하튼 그분이 생존을 위해 한 이 행위가 장기 이식과 어떤 차이가 있냐고 질문했다는군. 어렵다. 나의 세계관 안에선.





꼼꼼한 당신 모르핀을 잊진 않았겠지?

세 번째 이야기.


이 모든 게 상상 속 이야기인 거다. 그러면 훨씬 받아들이기 편하다. 파이는 구명보트에 탄 유일한 생존자고 모르핀 앰플 여섯 개가 있었다. 지독한 두려움과 고독, 갈증을 견디기 위해 처음에는 이 모르핀으로 환각을 경험하고 나중에는 일명 '꿈의 걸레 - 물에 적신 걸레로 코를 막아 미몽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야기를 좋아하는 소년. 끝없는 이야기에 목말라하던 상상력 뛰어난 소년이었다.


내 가장 큰 바람은—구조보다도 큰 바람은—책을 한 권 갖는 것이었다. 절대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가 담긴 긴 책. 읽고 또 읽어도 매번 새로운 시각으로 모르던 것을 얻을 수 있는 책. _본문 중에서


어떤 결말이든 소년이 가족을 잃고 조난당해 고생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는 결과는 같다. 파이가 식인을 했는지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바나나가 물에 진짜 뜨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화되는 이상 더 이상 사실이 아니므로,



가장 중요한 건 그 모든 일을 겪고도 파이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 도서 : 파이 이야기 - 얀 마텔

● 영화 : Life of pi - 이안



Cinema Reading Enjoy Artistic
Moment 크림북클럽 2023년 7월



더들리와 스티븐스 재판


1884년 영국에서 발생한 식인 사건을 다룬 재판. 긴급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살인 및 식인을 한다면 죄가 성립되는가를 다루고 있다. 법학이나 공리주의를 배울 때 나름 중요하게 다뤄지는 판례 중 하나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 강의에서도 등장한 일화이며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로 논의할 수 있는 주제 중 하나다.

사건은 미뇨네트호가 난파된 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미뇨네트호는 요트 한 척을 영국에서 호주로 배달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고 있었다. 배에는 모두 4명이 타고 있었는데 선장인 더들리와 1등 항해사인 스티븐스, 일반 선원인 브룩스, 그리고 잡무원이었던 리처드 파커였다. 이 중 리처드 파커는 고아였고 나머지 선원들은 부양할 가족이 있었다. 그러나 출항 당시부터 이미 미뇨네트호는 오래되고 관리가 안 되어 부실했기 때문에 결국 항해를 시작한 지 7일 만에 거대한 풍랑을 만나 침몰했다. 선원들은 난파된 배에서 구명정을 타고 급하게 탈출하였는데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이라곤 통조림 2개와 나이프 1개, 경도 측정 시계가 전부였다.



며칠은 통조림과 바다거북을 잡아먹고 빗물을 마시면서 버텼으나 당연히 머지않아 바닥났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며칠을 버티던 중 더들리는 당시 선원 관습에 따라 나머지가 살아남기 위해 죽을 한 사람을 정하기 위해 제비 뽑기를 하자고 제안했으나 브룩스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결정은 유보되었으나 며칠 후 갈증을 참지 못한 리처드 파커는 다른 선원들이 잠든 틈을 타 바닷물을 마셨고 다음날 아침 더들리는 스티븐스와 공모하여 탈수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던 파커를 살해한 후 식인하였다. 이에 반대하던 브룩스도 더들리의 설득에 갈증과 허기를 참지 못하고 식인에 가담했다. 이들은 그로부터 4일 후 근처를 지나가던 독일 배에 의해 구조되었다.



영국에 도착한 후 더들리는 식인을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고 끝내 소송을 당한다. 소극적이었던 브룩스는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서 기소를 면하였으나 적극 가담했던 더들리와 스티븐스는 살인죄교수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었던 당시 여론과 실제로 사형을 집행할 마음이 없었던 정부 등 복합적 요인들에 의해 두 사람은 수감된 지 6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