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불안의 서 | 프랑켄슈타인

by 무화



chapterⅠ


피투된 우리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과연 대단히 의미 있는 존재일까요. 존재에 대한 고민, 고로 불안은 디폴트입니다. 한낱 우주 먼지일 뿐인 '우리' 만이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라고요?


음.. 그건 아무도 모르죠.


불안의 책 또는 불안의 서는 베르나두 소아레스가 쓴 일기입니다. 소아레스는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가 지어낸 인물이자 자기 자신, 말하자면 분신입니다. 페소아의 인물들 중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물이라더군요. 72명인가...


플라나리아 같은 페소아, 부릅따


평범하게 살아가는 회계 보조원,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지만

자신의 생각, 감정, 꿈, 고독, 권태를 끝없이 기록하는 즉, ‘아무 일도 없는 삶’ 속의 내면을 탐구하는 기록.


이랬다가저랬다가왔다갔다! 하는 소아레스의 일기를 따라 읽다 보면 삶의 무의미를 진하게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역으로 이렇듯 진진하게 쓴 존재의 불안과 무의미를 따라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철 노래 부른 거 다 알아요)라는 찬란한 접속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죠.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쭈욱.


배수아 번역의 벽돌책


존재의 불안을 다룬 영화는 수없이 많습니다.


페소아의 ‘나=타자’ 개념과 완벽하게 닮아 있는 찰리 카우프만의

〈Synecdoche, New York〉

안타깝게도 국내 ott는 없고.


대신, 찰리 카우프만의

〈이터널 선샤인〉

기억, 자아, 존재의 불안이라는 테마가

『불안의 서』의 내면적 독백과 닮아있습니다.


〈아임 낫 데어〉

밥 딜런을 여섯 명의 다른 인물이 연기하는 실험적 전기 영화. ‘나’는 하나가 아니다라는 페소아적 자아 개념과 거의 동일한 구조고요.


〈멜랑콜리아〉

세계의 종말을 앞둔 한 여성의 무기력과 불안, 그리고 기이한 평온을 그렸죠. 우울과 존재의 공허를 정면으로 직시한다는 점에서 『불안의 서』의 미학적 부분과 닮았어요.


〈Her〉

『불안의 서』의 디지털 시대적 변주!


기예르모 델 토로의〈프랑켄슈타인〉

저는 이 영화가 페소아의 존재론적 불안을 매우 가시적으로 현현한다 생각했습니다.





chapterⅡ『불안의 서』와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이 보여주는 존재론적 불안


페르난도 페소아가 『불안의 서』에서 끊임없이 불안을 되새기는 이유는 단순히 우울하거나 신경증적이어서가 아닙니다.
그의 삶을 관통한 근본적 질문은 바로 “존재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였으며,
이 질문은 그의 글쓰기 자체를 필연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우리 같은 쓰는 자의 내면을 다룬 것 같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해석한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겪는 존재론적 불안 역시,
자신의 기원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존재가 경험하는 근원적 고독이라는 점에서 페소아의 사유와 깊이 맞닿습니다.


1. 정체성의 분열과 존재의 붕괴


페소아는 수많은 헤테로님(필명과는 다른 외부에서 가져오는 이명)을 통해 다양한 자아를 만들어냈습니다.
소아레스는 그중 하나로, 그는 결코 고정된 ‘나’를 갖지 못한 채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맞서야 했습니다.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과 피조물도 유사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완전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 피조물은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분열된 인간과 조립된 인간, 서로 다른 형식의 존재이지만, 두 존재 모두 자아의 통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안을 숙명처럼 안고 산다는 점에서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2. 감각과 인식의 과잉이 낳는 고독


페소아는 “나는 너무 많이 느끼기 때문에 지친다”고 적었습니다. 세계의 모든 자극이 지나치게 선명하게 다가오고, 감각은 과도하게 예민합니다.
이 과잉된 인식은 곧 존재 자체를 압도하며, 그를 고독과 불안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피조물 역시 세계의 감각을 필터 없이 받아들입니다. 빛, 소리, 온도, 타인의 표정—모든 것이 동시에 몰려오며, 그는 ‘내적 방어막’ 없이 세계와 맞서야 합니다.
두 존재 모두 감각의 폭력성과 인식의 과잉이 불안과 고독을 증폭한다는 공통점을 보여줍니다.


3. 글쓰기와 이야기하기: 존재를 붙드는 방법


소아레스에게 글쓰기는 붕괴되는 자아를 잠시 붙드는 장치입니다. 페소아와 가장 닮은 헤테로님이기도 합니다. 페소아는 글을 쓰기 위해 존재하고, 존재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피조물 역시 말과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존재하게 합니다. 자신을 설명하고 이야기로 풀어내는 과정은 단순한 성장이나 학습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퍼즐을 맞추는 행위입니다.
즉,

페소아: 글쓰기로 존재의 파편을 임시 고정
피조물: 말하기로 존재의 파편을 정의

둘 다 자기 정의가 완수되지 않는 존재로서, 불안을 구조화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4. 자기의식의 과도함과 현대적 불안


페소아는 너무 일찍 현대적 자의식의 문제를 경험했습니다.
“나는 나를 너무 많이 의식한다”는 사실이 곧 그의 존재를 압박했습니다.

피조물 역시 자신이 ‘만들어진 존재’ 임을 깨닫는 순간, 자기의식의 과열로 인해 존재 전체가 불안정해집니다.
결국 두 존재 모두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5. 언어와 이야기로 붙드는 불안


페소아가 『불안의 서』를 쓴 이유는, 불안을 단순히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불안을 말과 문장으로 붙들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불안을 컨트롤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입니다.

델 토로의 피조물이 겪는 근원적 고독 역시,
태어난 이유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느끼는 근원적 고독입니다.
따라서 페소아와 피조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불안을 언어와 이야기로 붙들어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존재론적 경험을 공유합니다.

요컨대,
페소아의 소아레스와 델 토로의 피조물은
각각 ‘분열된 인간’ ‘조립된 인간’ 일뿐,
불안을 언어로 붙들어 살아간다는 점에서 같은 계열의 존재입니다.

이는 불안이 인간 존재의 필연적 조건임을 보여주며, 현대인의 정체성과 내면 탐색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학적·철학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그럼 우리는 이런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몽상가의 산란스러운 일기일 뿐인『불안의 서』를

왜 읽어야 하는가?

이것을 문학이라고 볼 수 있는가?





chapterⅢ『불안의 서』를 왜 읽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왜 지금 우리가 이런 종류의 텍스트를 필요로 하는가? 라는 질문과 맞닿습니다.

이 책은 불안을 없애주는 책이 아니라,

불안을 이해하고 경험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1. 내면의 감정을 대신 말해주는 책



소아레스는 우리가 ‘막연한 불안’이라고 부르는 감정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섬세하게, 솔직하게 언어로 옮겨냅니다.


읽다 보면

“아, 내가 평소에 표현하지 못하던 감정이 바로 이거였구나.”

하는 순간이 계속 찾아옵니다.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자기 내면을 이해하는 경험이 됩니다.



2. 불안은 결함이 아니라 존재의 기본 조건



『불안의 서』는 불안을 병리적 문제로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조합니다.

생각하는 존재는 본질적으로 불안하다

의식이 깊을수록 불안은 섬세해진다

불안은 결함이 아니라, 의식의 한 형태다

이 관점은 현대 심리학과도 겹칩니다.

나만 이러는 게 아니구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이런 감정이 드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 임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이건 케바케...



3. 혼란스러운 시대 속 ‘언어적 나침반’



우리는 지금 선택의 과다, 관계의 불안정, 정체성의 유동성,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갑니다. 페소아는 100년 전에 이미 이런 문제를 겪고 기록했습니다.

그의 문장은 지금 우리의 시대에 더 밀착해서 닿습니다.

마치 우리가 그의 뒤를 따라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동시대인이라는 착각에 빠져들 정도죠.



4. 자기 자신의 관찰자가 되는 법을 배우기



『불안의 서』의 핵심은 내면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소아레스는 감정, 욕망, 공포를 판단 없이, 꾸밈없이, 치밀하게 바라봅니다.

이 방식은 글쓰기, 창작, 자기 성찰, 내면 탐색을 하는 사람에게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도 이렇게 생각을 기록하고 싶다. 이렇게 감정을 명료화하고 싶다”

라는 욕망이 생깁니다.

즉, 내면을 보는 법을 가르치는 책입니다.



5. 불안과 고독을 ‘문학적 경험’으로 재구성



불안을 개인적 결함으로 느끼기 쉽지만, 페소아는 이를 하나의 미적 경험, 존재적 질감으로 바꿉니다.

그 순간 불안은

“나에게 일어난 나쁜 일” 이 아니라

“인간이 겪는 깊은 체험 중 하나” 가 됩니다.

이는 감정 경험을 예술적·철학적 사유로 확장시키는 큰 전환입니다.



6. 불안을 매개로 세상과 자신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다



『불안의 서』는 단순한 내면 기록이 아닙니다.

불안을 관찰하고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세상을 보는 방식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동시에 재편합니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내가 불안을 느낀 순간,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가?
내 불안 속에는 어떤 나만의 독특한 세계가 숨겨져 있는가?



즉, 불안을 통해 자기 세계를 확장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7. 인간 존재의 근본 조건과 마주할 기회



페소아의 글은 심리학, 철학, 문학적 통찰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인간 존재의 불가피한 불안, 분열, 고독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됩니다.

그 대면 자체가 지적 자극이 되며, 단순한 위로나 자기 계발이 아니라, 존재론적 사유를 경험하게 해주는 텍스트가 됩니다.



8. 언어의 아름다움 속에서 불안을 즐길 수 있다



페소아는 불안을 단순히 설명하지 않고,

언어의 리듬과 문장 구조 속에 담아냅니다.

읽다 보면 감정이 언어와 만나 춤추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거 아포리즘 책인가? 싶은 지점들이 있죠.

불안을 이해하고 관찰하는 동시에, 불안의 미학적 경험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책입니다.


자.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팔이피플인가?

아무 상관없고요..



『불안의 서』는 반복적이고 자기 사유 속을 끝없이 맴돌아 읽는 이를 지치게 만들며, 뚜렷한 해결책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아주 징그럽습니다.

그럼에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이름 붙이지 못한 막연한 불안과 감정을 언어로 정확히 옮기고 분석하게 해 주며,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보편성을 확보해 주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씁쓸하지만 위로가 되는 사실을 알려주는 거죠.


불안을 치료하진 못하지만 불안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게 해주는, 연속적 사건의 ‘주 흐름’이라기보다 읽는 이가 끊임없이 사고와 감정의 틈을 오가게 하는 어질어질한 체험.


즉, 존재의 안에서 시연되는 우리 자신의 막간극을 보는 겁니다.



도서 : 불안의 서 - 페르난도 페소아

영화 : 프랑켄슈타인 - 기예르모 델 토로




Cinema Reading Enjoy Arti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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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Ⅳ <부록> 프랑켄슈타인의 시작


세계 최초의 sf소설가


영국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를 남편으로 둔 어린 여인이 있었다.

어느 날 조지 고든 바이런과 친해졌는데

(맞다! 그 바이런)

그 해 여름 날씨가 우중충한 탓에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지... 그런 날씨에는 돌아다니다 괜히 사고나 치지..

이때 바이런의 제안으로 퍼시와 여인, 바이런 그리고 바이런의 주치의인 존 윌리엄 폴리도리 이렇게 4인이 심심풀이 삼아 괴담을 창작하게 된다.

뭐 그런 날씨에 괴담 창작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나?

아마도.. 타닥타닥 장작을 태우며 담배를 피워댔을 거고 쿰쿰한 공기를 한 껏 들이마신 뇌는 프레시한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거다.

그녀는 '시체를 모아 전기의 힘으로 되살린 한 과학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경청한 바이런이 '겁나 신박한데?' 라면서 소설로 집필할 것을 권유했고, 남편 퍼시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의 소설화 작업을 도왔다.

그녀의 이름은 메리 셸리. 19세였고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시크한 셀럽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창조한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