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리, 도우미의 자리

엄마라는 이름의 '정서적 지분'을 지켜내는 일

by 카푸치노

입주 도우미를 두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사람을 구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한 집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심리적 저항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회사 회의실에 들어갔다가 회의 시작 전, 옆자리에 앉은 동료에게 하소연하듯 털어놓았다.

“아들 때문에 입주 도우미를 구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

그러자 옆자리에 앉은 그가 말했다.

“저희가 입주 도우미를 쓰고 있었는데, 제가 미국 파견을 가게 됐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거든요. 연변 아주머니신데 저희 집에서 2년 동안 계셨어요. 우리 아들 잘 돌봐주셨고 요리도 잘하세요. 처음에는 연변에서 막 오신 터라 정말 먹기 힘든 음식을 하셨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좋아지셨어요. 저희 아주머니 모셔가세요.”


아니, 이런 극적인 장면이 있을 수 있나. 전혀 모르는 사람을 들이는 것보다, 이미 다른 집에서 2년 동안 지낸 분이라니. 나름 검증이 된 느낌이라 마음이 훨씬 놓였다.


그렇게 아들이 두 돌 즈음 되었을 때, 입주 도우미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주머니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들 돌봄, 청소, 빨래, 요리까지 맡으셨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며 아들을 회사 어린이집에 맡기고 오후 네 씨쯤 아주머니가 아이를 데려오셨다. 내가 퇴근하면 아주머니는 본인 방으로 '퇴근'하셨고, 금요일 저녁이면 본인 집으로 가셨다가 일요일 저녁에 다시 돌아오셨다.


다행히 아주머니는 아들을 정성껏 돌봐주셨고, 아들도 친할머니처럼 아주머니를 따랐다. 우리는 제주도 여행도 함께 갈 정도로 거의 가족처럼 지냈다. 나는 퇴근 후 집안일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아들과 보내는 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매일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회사 근처로 이사하면서 출퇴근 시간이 크게 줄어든 것도 큰 만족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문제없는 상황은 없었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어느 날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나를 낳으셨고, 할머니가 나를 키우셨어.”


아들이 엄마와 보내는 시간보다 도우미와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자신을 키운 사람이 아주머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 언젠가 보았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장성한 부잣집 도련님이 엄마에게 소리치는 장면이었다.

“어머니가 도대체 저한테 해주신 게 뭐가 있어요. 저는 ○○아주머니가 다 키우셨잖아요!”


돈 많은 드라마 속 사모님은 자신이 편하자고 아이를 맡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나는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최대한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내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아들의 기억 속에는 ‘자신을 키운 엄마’의 자리가 없었다. 그 순간 마음속으로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혼자 방으로 들어와 가슴을 움켜쥔 채 한참을 울었다.


그러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쯤 되자 하교 후 영어, 피아노, 축구 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귀가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자연스럽게 도우미의 할 일도 크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그동안은 아이를 돌보느라 집안 청소를 꼼꼼히 하지 못해도 그냥 넘어갔지만, 이제는 시간이 여유로우니 청소에 조금 더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런데 월요일에는 분명 청소를 한 흔적이 있었지만 목요일쯤 되면 바닥이 어석거리기 시작했다. 청소를 하셨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셨다. 하지만 베란다에 가서 걸레를 보니 바짝 말라 있는 것이 아닌가.

“아주머니, 청소하셨다면서 걸레가 바짝 말라 있네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내가 보지 못하는 곳으로 걸레를 치워버리셨다.


나는 남편과 아들 앞에서 이런 아주머니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아들이 울면서 내게 묵직한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 나를 7년이나 키워주신 분이에요.”


아들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을 복잡하게 오고 가던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주머니의 진심 어린 보살핌에 대한 고마움, 그런 마음을 아는 아들에 대한 대견함, 그리고 아들 앞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까지.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덮고 가장 크게 밀려온 것은 묘한 질투심이었다. 아들의 마음속, 내 자리가 생각보다 작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섞인 질투 말이다.


결국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 끝날 무렵, 입주 아주머니와 이별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원래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함께하려 했지만 계획보다 빨라진 셈이었다. 만약 아주머니가 초등학교 6학년까지 계속 함께 계셨다면, 아들의 기억 속에는 도우미에 대한 기억만 가득 남고 엄마 아빠의 자리는 지금보다 희미했을지도 모른다.


직장맘의 경우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것은, '타인의 손길을 빌려 내 삶의 시간을 벌 수는 있어도 아이의 기억 속에 남을 내 자리까지 대신 채우게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돌봄을 외주화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지만, 엄마라는 이름의 '정서적 지분'을 지켜내는 일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나의 몫이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날, 이제 훌쩍 커버린 아들에게 슬며시 물었다.

“너 어릴 때 돌봐주시던 아주머니 기억나?”

아들은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대답했다.

“응. 우리 집에 계셨던 할머니?”

“너 아주 어릴 때는 엄마가 나를 낳았고, 그 할머니가 나를 키워주셨다고 말했었는데.”

나의 장난 섞인 물음에 녀석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에이, 나를 키운 건 엄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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