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키운 또 하나의 가족
입주 아주머니 없이 아들을 키우기로 했지만, 막상 현실은 쉽지 않았다. 학교 다녀온 후에 아들 간식을 챙겨주는 것과 저녁을 먹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들과 가장 친한 친구의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교가 끝난 뒤 우리 아들과 그 친구에게 함께 간식을 먹였는데, 아들이 간식을 잘 먹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아들이 잘 먹는 아이라는 걸 아는데, 아무래도 좀 눈치를 보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매일 두 아이 몫의 간식을 준비하기도 쉽지 않고, 아무래도 내가 알아야 할 것 같아 연락을 했다고.
아뿔싸.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식을 먹는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한 자리에서 딸기 한 접시를 뚝딱 비워내는 녀석인데, 친구 엄마가 준비한 간식을 눈치 보며 먹었을 아들을 떠올리니 가슴이 저릿했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엄마로서의 부족함에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같은 아파트 아래층에는 외손자를 키우는 할머니가 계셨다. 그 손자는 우리 아들보다 한 살 어렸고, 그 집도 아들 하나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곤 했는데, 할머니는 늘 우리 아들을 예뻐해 주셨고, 따뜻한 말도 자주 건네주셨다.
문득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던 아래층 할머니가 떠올랐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부탁을 드렸다."
“손주 한 명만 추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다행히 할머니는 흔쾌히 아들을 맡아주시겠다고 하셨다. 할머니의 크신 마음에 비할 순 없었지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작은 정성을 매달 전해드렸다. 아들은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 책가방과 학교에 갈 옷을 챙겨 아래층 할머니 댁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아침을 먹고 아래층 동생과 손을 잡고 함께 학교에 갔다. 하교 후에도 아래층에 들러 간식을 먹고, 학원을 오가다가 저녁을 먹고 내가 퇴근할 즈음 집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아래층 할머니의 도움 덕분에 아들은 초등학교 생활을 무사히 이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시간 대신, 아래층 동생과 함께 뛰어놀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외아들인 아이에게 큰 선물이었다. 덕분에 외로움 대신 웃음이 더 많은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낯가림이 심하고 내성적인 아들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에서 벌거벗은 채 돌아다닐 만큼 편해졌다. 할머니는 매일 새벽 기도를 하며 우리 아들을 위한 기도를 빼먹지 않으신다고 했다.
또한 같은 아파트의 아들 친구 엄마들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가끔씩 아들을 불러 저녁을 먹여주기도 했다. 나도 가끔 시간이 되는 저녁에는 아들 친구들을 불러 저녁 대접을 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아들을 키운 것은 나 혼자의 힘이 아니었다. 입주 아주머니도, 아래층 할머니도, 같은 아파트의 아들 친구 엄마들도, 그 시절 우리 삶을 함께 떠받쳐 준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흔히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과거에는 그 마을이 실제로 존재했다. 할머니, 이웃, 친척들이 자연스럽게 돌봄의 일부를 나누어 맡았다. 하지만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된 지금, 그 공동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어린이집, 돌봄 교실, 학원, 그리고 각종 돌봄 서비스들이다.
하지만 제도와 서비스가 아무리 촘촘해져도, 아이를 감싸 안는 따뜻한 관계의 온기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아이에게는 누가 밥을 차려주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누구와 웃고 이야기하며 하루를 보냈는지가 더 오래 남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아래층 할머니의 돌봄은 제도도 아니고 계약도 아니었다. 그저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이 내민 작은 손길이었다. 그러나 그 손길은 바쁜 직장맘이었던 나에게는 삶을 이어가게 해 준 버팀목이었고, 외아들이던 아들에게는 함께 자랄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얼마 전에 오랜만에 아래층 할머니를 다시 만나 식사를 함께했다. 할머니는 여전한 미소로 '그 녀석, 벌써 그렇게 컸니?' 하시며 아들의 소식을 물으셨다. 이사는 했지만, 할머니의 기도 목록에는 여전히 내 아들의 이름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기도가 지금의 아들을 있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촘촘한 돌봄 정책보다, 서로의 아이를 기꺼이 품어주는 이런 관계의 복원일지도 모른다.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할머니처럼, 나 또한 훗날 누군가의 쉼터가 되어주는 '좋은 할머니'로 늙어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할머니의 손길이 내 삶에 남긴 따뜻함을, 누군가에게 다시 건네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