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과 전업맘 사이, 그 치열한 갈등에 대하여
아들이 대여섯 살 때였다.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거울 앞에 서 있는데, 아들 녀석이 거울 앞에 와 앉았다. 새로 산 옷을 입어 보던 나는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 이 옷 어때? 예뻐?”
아들은 잠시 나를 올려다보더니 뜻밖의 질문을 했다.
“엄마, 이 옷 입으면 일찍 와요?”
예상치 못했던 그 대답에 한동안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입으려던 옷을 내려놓고 아들을 꼭 껴안았다. 아들에게 중요한 것은 엄마가 어떤 옷을 입느냐가 아니라, 엄마가 자기와 얼마나 함께할 수 있느냐였다.
그 무렵 나는 회사 일이 바빠 아침 일찍 집을 나와 밤 9시나 10시가 되어야 돌아왔다. 한 달에 두세 번은 토요일에도 출근했다. 일요일이면 아들은 주로 친구들과 놀았다. 이래저래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아들을 두고 이러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심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엄마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번다 해도, 아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엄마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차라리 조금 가난하더라도 아이 곁을 지키는 엄마가 되는 것이 더 든든한 삶이 아닐까 끊임없이 자문했다.
특히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어쩌다 쉬는 날 아이의 책가방을 메고 손을 맞잡고 등교하던 길은 잊을 수 없다. 그 느낌이 너무 따뜻하고 행복해서, ‘계속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하고 수없이 바랐다.
아마 모든 워킹맘이 한 번쯤 겪는 지독한 갈등일 것이다. 일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 곁에 머무를 것인가. 아이가 어릴 때 부모가 곁을 지키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자신의 커리어를 내려놓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기로 한 선택은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숭고하고 가치 있는 결정이다.
하지만 나는 하루 종일 아이만 돌보며 사는 삶 안에서 내가 행복할 자신이 없었다. 육아휴직 시절, 나는 이런 다짐을 했다. 내가 번 돈을 고스란히 육아 도우미에게 쓰는 한이 있더라도 일을 계속하겠다고.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다른데, 내게 육아는 사랑과는 별개로 참 고된 영역이었다. 경력 단절 이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길도 막막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그만두는 것’ 대신 ‘지속 가능한 워킹맘’이 되는 길을 택했다. 길게 보면 엄마가 자기 삶에서 행복을 찾는 길이 결국 아이에게도 건강한 에너지를 줄 것이라 믿기로 했다.
게다가 워킹맘의 아이가 더 자립적으로 자랄 수 있곘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교육의 목표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더욱 그랬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숙제와 준비물은 스스로 챙기도록 교육했다.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물이 있으면 네가 확인해서 엄마에게 말해줘. 그러면 엄마가 준비해 줄게. 엄마가 알림장을 일일이 확인해서 먼저 챙겨주지는 않을 거야. 알았지?"
아들은 가끔 준비물을 빠뜨려 학교에서 곤란을 겪기도 했다. 마음이 아팠지만, 그 곤란함을 스스로 감당해 내는 과정 또한 아이에게 필요한 근육이라 믿으며 꾹 참았다. 다행히 아들은 혼자서도 씩씩하게 제 몫을 해내었고,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스스로 길을 찾는 아이로 자라났다.
물론 아이마다 차이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세대만 해도 부모가 숙제나 준비물을 일일이 챙겨주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들 자기 삶을 살아내지 않았던가. 한 세대 만에 아이들의 DNA가 갑자기 달라졌을 리는 없다.
회사에서는 회의를 마칠 때 늘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명확히 정리한다. 아무리 좋은 논의가 오가도 책임자가 정해지지 않으면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심폐소생술(CPR) 교육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응급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막연히 "누구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면, 사람들은 '나 말고도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에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소위 '방관자 효과'다. 그래서 반드시 특정 사람을 지목해 명확한 역할을 맡겨야 한다.
“거기 안경 쓰신 남성분, 119에 신고해 주세요. 파란색 셔츠 입으신 여성분, 자동심장충격기를 가져와 주세요.”
이렇게 손가락으로 정확히 가리키며 지목받는 순간, 그 사람은 상황을 지켜보는 관찰자에서 생명을 살리는 '책임자'가 된다.
아이 교육도 다르지 않다. 부모가 모든 것을 대신해 주면, 아이는 ‘내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한 발 물러섰다. 아이가 자신의 삶에서 방관자가 아니라 주인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때로는 엄마의 ‘의도된 소홀함’이 아이를 성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전업맘보다, 워킹맘이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는 유리할 때도 있다. 오랜 시간 같이 있다 보면 숙제를 안 하고 빈둥대는 아이를 보면서 참아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내가 힘들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 아들이 말리곤 했다.
“엄마 이제 20년쯤 회사 다녔으니 그만두면 어떨까?”
입사 20년쯤 지났을 때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 30년 갑시다!”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아들을 보며 나는 한참을 웃었다. 한때는 내가 아이를 위해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아이가 나를 버티게 하는 단단한 기둥이 되어 있었다.
어떤 엄마에게는 아이 곁을 지키는 삶이, 또 어떤 엄마에게는 일터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삶이 최선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내용이 아니라, 그 선택을 내린 엄마의 마음이 건강한가이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얼마나 오래 곁에 있었는가'가 아니다. '엄마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갔는가'라는 질문이다. 그 뒷모습을 보며 아이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