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키우는 아이들의 사랑
아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길래 아이에게 물었다.
“소풍 도시락 뭐 싸줄까?”
그러자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유부초밥.”
김밥 대신 유부초밥이라는 말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김밥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재료도 여러 가지 준비해야 하고, 볶고 말고 써는 과정도 꽤 번거롭다. 반면 유부초밥은 비교적 간단하다. 밥만 준비하면 금방 만들 수 있으니까. 수고로움을 덜었다는 안도감이, 엄마로서의 정성보다 앞섰던 것 같다. '우리 아들, 참 입맛도 효자네!'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유부초밥을 준비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뒤로도 소풍이나 체험학습이 있을 때마다 아들은 늘 같은 메뉴를 말했다.
“유부초밥 싸줘.”
아이들이 보통은 김밥을 더 좋아하는데, 우리 아들은 유독 유부초밥을 고집했다. 나는 그저 ‘이 아이는 유부초밥을 참 좋아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쯤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너는 왜 계속 유부초밥을 싸달라고 하는 거야? 김밥이 더 맛있지 않아?”
그러자 아들이 뜻밖의 대답을 했다.
“처음에 내가 유부초밥 말했을 때, 엄마가 너무 좋아해서.”
나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대견함보다 먼저 밀려온 것은 부끄러움이었고, 그다음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고마움이었다. 나는 속으로만 안도했다고 생각했는데, 안도하며 환해지던 내 표정을 아이는 놓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이는 단순히 좋아하는 음식을 고른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메뉴를 정했던 것이다.
나는 늘 '아에게 충분히 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나를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 마음으로 나를 배려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비로소 알았다.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이도 부모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일찍 어른이 된다. 부모가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말없이 눈치를 살피고, 작은 방식으로 부모를 도우려고 한다. 때로는 부모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부모의 사정을 이해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를 키운다는 일은 단순히 한 방향의 돌봄이 아니다.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모가 아이에게서 인간의 마음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치려 애쓰기 전에, 아이들이 이미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마음을 먼저 알아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말 한마디, 작은 선택 하나 속에도 부모를 향한 깊은 배려와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아이를 키우는 시간은 부모가 아이를 성장시키는 시간인 동시에, 부모 자신도 조금씩 자라나는 시간이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경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