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 갱년기 엄마

아이의 독립과 부모의 성장

by 카푸치노

퇴근길 현관문을 열 때 "엄마!"하고 부르며 달려와 품에 안기는 아들은 내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강력한 해독제였다. 품 안 가득 안겨오던 아들의 온기는 내가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살아가야 할 가장 확실한 이유이자 기쁨이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어 사춘기라는 문턱을 넘은 아이는 이제 웃으며 달려오는 대신, 자신의 방 문을 굳게 닫아거는 법을 먼저 배워버렸다.


퇴근 후 아무리 피곤해도 아들을 보는 기쁨으로 십여 년을 버텨왔는데, 이제 아들에게 엄마는 필요를 넘어 귀찮은 존재가 된 듯했다. 어쩌다 아들 방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아이는 손을 내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엔에이지에이!”

방에서 빨리 ‘나가(NAGA)’ 달라는, 아들만의 단호한 선언이었다.


공교롭게도 내게 갱년기가 시작되던 즈음이었다. 수시로 열이 오르고, 불면으로 잠 못 드는 날이 잦았다. 그런 때에 아들의 거부 반응은 내 삶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삶은 갑자기 무료해졌고, 마음 한구석은 텅 빈 듯 허전했다. 걸어서 퇴근하던 길에 눈물이 주룩 흘러내리기도 했다. 허무하고, 마음 둘 데가 없는 느낌이었다.


그때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유독 좋아했던 ‘부루마불’ 게임이 떠올랐다. 게임판을 펼쳐 놓고 주사위를 굴리며 아들은 늘 신이 나 있었다.

“앗싸, '황금열쇠'다! 엄마, 나 서울에 빌딩 세웠어!”

아들의 환하게 웃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그 게임은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 어려워 기본 30~40분, 길게는 두 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그래서 아들이 부루마블을 하자고 매달릴 때마다 나는 피곤을 핑계로 피하곤 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어 엄마와의 시간을 피하는 아들을 보며, 그 시절 아이가 느꼈을 외로움이 손에 잡힐 듯 이해되었다. 부루마블을 해달라고 조르다가 나의 거절에 풀 죽어 돌아서던 아들의 모습이 생각나면 지금도 마음 한 편이 아리다.


“그때 조금 힘들어도 아들이 그렇게 원하던 부루마불을 조금 더 해줄걸.”

이미 커버린 아들은 그때의 어린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는데도, 나는 자꾸만 기억 속의 어린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떨치기 어렵다.


하지만 변해버린 아들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변화된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수밖에. 나는 아들에게 온통 쏠려 있던 시선을 밖으로, 그리고 '나'에게로 돌리기 시작했다. 갱년기 증상을 다스릴 겸 몸을 쓰는 활동을 늘렸다. 남편과 토요일이면 근처 한두 시간 거리의 호수를 찾아다니며 둘레를 걷는 ‘호수 도장 깨기’를 했다. 30층 계단 오르기와 근력 운동도 병행했다. 아들의 빈자리를 나의 땀방울로 채워 나갔다.


아이가 자라면 부모와 아이 사이의 밀착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지나친 관심은 아이에게 애정이 아닌 짜증이 될 수 있다. 적절한 시기에 아이와의 거리를 넓히고, 그 빈 공간을 나만의 관심과 활동으로 채우는 연습. 엄마와 아이 사이의 ‘유연한 거리(Flexible Distance)’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는 고무줄과 같아야 한다. 아이가 자기만의 세상을 향해 멀어지려고 할 때, 억지로 붙잡아두려 하면 고무줄은 팽팽해지다 결국 뚝 끊어지고 만다. 아이가 멀어지는 만큼 고무줄의 탄성을 이용해 기꺼이 그 거리를 내어주는 유연함. 그 유연함이 있어야만 아이는 독립된 공간에서 안정을 느끼고, 다시 부모의 지지가 필요할 때 언제든 그 탄력을 타고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부모에게 끊임없는 헌신과 밀착을 요구해 왔다. 특히 엄마에게는 아이의 삶에 늘 가까이 머물며 모든 순간을 함께해야 하는 존재처럼 기대해 왔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할수록 부모의 역할은 ‘곁에 붙어 있는 사람’에서 ‘한 발짝 물러서 지켜보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이에게 독립이 필요하듯, 부모에게도 삶의 균형이 필요하다. 부모가 자신의 삶을 돌보고 새로운 관심과 세계를 만들어 갈 때, 아이 역시 부모에게서 건강한 독립의 모습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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