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은 엄마면 좀 어때서

감사의 반대말이 ‘당연’ 임을 가르쳐준 아이

by 카푸치노

남들보다 꽤 늦은 서른 후반에 엄마가 되었다. 아들의 사회생활이 시작되며 각종 엄마들의 모임도 생겨났다. 그곳에서 나는 여지없이 ‘가장 나이 많은 엄마’였다. 대부분 나보다 일곱, 여덟 살은 어렸고,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엄마도 있었다.


엄마들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나는 ‘나이 많은 엄마’라는 이유로 괜히 주눅 드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대체 나이 많은 엄마라는 사실이 왜 나를 위축시키고 부끄럽게 만드는 것일까. 그 감정의 정체가 못내 궁금해졌다.


드라마나 신문 기사에서 아이들이 나이 많은 엄마가 학교에 오면 부끄러워한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유독 젊고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도 들었다. 비교 대상이 없는 집에서는 상관없겠지만, 여러 엄마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는 혹시라도 아들이 나이 든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괜히 마음이 쓰였다.


게다가 사람은 어느 모임에서든 평균에 속할 때 마음이 편한 법이다. 그런데 나는 그 평균에서 꽤 벗어나 있었다. 어쩌면 그 사실 자체가 나에게 작은 스트레스였는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고 키우면서 이런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곤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이 많은 엄마라서 느끼는 분명한 장점도 있었다.


나는 아들을 키우며 누구보다 행복한 엄마였다. 아들을 갖기 전 한 차례 유산을 겪었고, 나이도 적지 않았기에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들이 태어났을 때, 늦게 얻은 이 아이는 내 인생에 주어진 큰 선물처럼 느껴졌다.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이라는 말이 있다. 만약 내가 젊은 나이에 큰 어려움 없이 아이를 가졌다면, 어쩌면 아이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아이는 당연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감사의 선물이었고, 당연하게 주어지는 월급이 아니라 뜻밖에 찾아온 인생의 보너스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아들을 키우면서도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들에게 과한 기대를 걸기보다는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주기만을 바랐고, 잔소리하고 간섭하기보다는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려고 했다. 아들이 실수하고 잘못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행복감이란 내가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할 때 비로소 느껴지는 감정이다. 어려움 없이 숨을 쉬는 것, 휴일 오후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것.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망일 수도 있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을 느끼게 되고, 욕심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늦은 나이에 부모가 된 사람은 그만큼 다른 삶의 경험을 가지고 아이를 만난다. 그 경험은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에도 또 다른 색깔을 더해 줄 수 있다.


아들이 두 돌이 되기 전 어느 날, 당시 아들을 양육하고 계시던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고열로 경기를 일으켜 119에 실려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급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아들은 해열제를 먹었는데도 쉽게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아들 옷을 벗기고 미지근한 수건으로 열심히 아들의 몸을 닦아주었다.


그때는 우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뒤 옆 침대의 아이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제 아들도 같은 증상으로 입원했거든요. 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애 몸을 닦아주면서 두 분은 농담을 주고받으시더라고요. 확실히 나이 있는 분들이라 좀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나이 많은 부모라고 해서 아이가 아픈데 마음이 편했겠는가. 나 역시 아이가 아플 때마다 속이 타들어갔다. 다만 아이 앞에서 지나치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아마도 일부러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던 것 같다.


실제로 영국의 한 대학 연구에 따르면, 고령 부모일수록 자녀를 대할 때 감정의 기복이 적고 더 인내심 있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병실에서의 내 여유도, 어쩌면 세월이 내게 쌓아준 근육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산모의 나이가 높을수록 신체적·산과적 위험은 증가하지만, 자녀의 정서적 안정이나 인지·언어 발달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인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단다. 그 이유를 심리적 성숙도와 안정된 관계, 그리고 양육 태도에서 찾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적절한 나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준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결혼에도, 출산에도, 심지어 부모가 되는 나이에도 암묵적인 평균이 존재한다. 그 평균에서 벗어나면 괜히 스스로 위축되고 눈치를 보게 된다. 나 역시 엄마들 사이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불필요한 부담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부모가 되는 데에는 사실 정답의 나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젊은 나이에 아이를 만나고, 누군가는 조금 늦게 부모가 된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나이가 아니라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과 태도일 것이다.


나는 ‘나이 많은 엄마’라는 사실 때문에 잠시 위축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덕분에 아이를 더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부모의 나이는 결코 결핍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를 향한 사랑을 완성해 가는, 저마다의 깊이 있는 시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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