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노동의 주어는 '우리'여야 한다
맞벌이 부부의 주된 부부 싸움의 주제는 아마도 집안일이 아닐까. 둘 다 바쁘게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집안일이 쌓이게 마련이고, 그 작은 불균형이 갈등으로 번지기 쉽다.
신혼 초에 한창 계속되던 집안일 관련 부부 싸움은 입주 도우미가 생기면서 신기하게도 싹 사라졌다. 우리에게 입주 도우미를 소개해 줬던 회사 후배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입주 도우미가 계시니까, 부부 싸움이 확 줄더라고요."
그런데 입주 도우미가 나가자 다시 집안일을 둘러싼 남편과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균열은 아주 사소한 단어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남편의 입에서 나온 '도와준다'는 말. 그 말에는 가사 노동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나보다 세 살 많은 남편의 친구들 중에는 맞벌이 부부가 거의 없었다. 남편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친구들을 기준으로 삼았다. 남편은 늘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나 정도면 집안일을 꽤 많이 도와주는 편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 말 자체가 문제였다.
“왜 맨날 도와준다고 말해? 집안일이 왜 나만의 일인데? 맞벌이면 집안일은 공동의 일이잖아.”
그렇게 시작된 부부 싸움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우리는 무려 3주 동안 서로 말을 하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우리의 냉전을 눈치챈 아들 녀석이 “엄마, 제발 아빠랑 화해하세요”라며 나를 재촉했다. 식사 시간에도 아무 말이 없고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 머물지 않는 남편과 나 사이에서 눈치 보며 불편해하고 있는 아들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먼저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3주 사이에는 추석 명절도 있었다. 나는 시댁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신은 집안일도 책임지지 않는데, 나는 왜 시댁에 가서 하루 종일 음식을 해야 해?”
나는 결국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고 집에 홀로 남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명절에 혼자 있으려니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그저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남편이 시댁에서 내가 오지 않은 이유를 뭐라고 했을지도 궁금했고, 시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되겠다 싶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참았다.
결국 명절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누워 있던 내게 다가와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그 한마디로 우리는 화해했다. 그리고 그 이후 남편은 청소와 빨래를 맡았고, 나는 주방일과 다른 집안일을 맡는 식으로 각자의 역할을 나누었다. 그 분담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둘 다 모두 바쁠 때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 청소와 빨래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맞벌이 부부에게 집안일은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세탁기와 청소기가 있고, 배달 음식과 밀키트 덕분에 가사 노동이 많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집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말리고, 개야 한다. 로봇청소기도 물을 갈아주고 필터를 관리해야 한다. 매번 외식을 할 수는 없으니 누군가는 요리를 해야 하고,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고 빼는 일도 해야 한다. 집안 정리, 이불 빨래, 재활용 정리, 욕실 청소 같은 일들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런 기본적인 집안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회사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회사 업무로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이 어지러워 있으면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지곤 했다. 그래서 맞벌이 부부에게 집안일의 원활한 분담은 단순한 생활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안정과 지속적인 직장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후배들에게 가능한 한 집안일을 외주화 하라고 말하곤 했다. 청소든 음식이든,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그 외주화 비용은 단순히 몸의 편안함을 사는 지출이 아니다. 그것은 부부 사이의 날 선 긴장을 완화하고,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지불하는 '관계 유지 비용'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다.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는 사회에서 집안일은 더 이상 개인 가정의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누가 집안일을 ‘도와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이며, 때로는 사회적 서비스와 제도가 함께 떠받쳐야 할 영역이기도 하다. 집안일이 원활하게 돌아갈 때 비로소 사람도, 가정도, 그리고 직장 생활도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