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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Nov 09. 2021

성실함과 꾸준함의 힘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님이 늘 강조하시던 말씀은 “성실하고, 꾸준하게”였다. 말씀 중에, 글에서, 심지어 선배들의 결혼식 주례에서도 이 두 단어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말씀 중에 이 두 단어를 몇 번이나 사용하시는지 세어보곤 했다. A4용지 한 장이 조금 넘는 글에서는 17번, 10분 정도 소요된 한 선배의 주례에서는 14번 사용되었다. 내가 이렇게 선생님께서 강조하시는 두 단어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선생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에 비해서, 그 두 단어가 그 당시의 내겐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성실하고 꾸준함을 강조하는 선생님이 좀 고루하다고 느껴졌다.


학교에 다닐 때는 열심히 성실하게 공부해서 성적이 잘 나오는 친구보다는, 벼락치기 공부를 했음에도 성적이 잘 나오는 친구들이 매력적으로 보였고 부러웠다. 반면 노력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친구가 가장 안쓰럽게 느껴졌다.


내가 지도 교수님의 나이에 이른 지금, 오랜 회사 생활하면서 나 역시도 성실함과 꾸준함을 강조하는 사람이 되었다. 회사 생활은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이었다. 벼락치기로 회사일을 할 순 없었다. 별로 성실하거나 꾸준함이 없었던 나도 오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는 성실한 사람이 되었다. 


회사에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박사 출신인 한 후배가 있다. 똑똑하고 유능하고 성격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아침에 일찍 출근하지 못하는 중병을 지니고 있다.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하는 제도가 있어 그가 늦게 출근해도 공식적으로는 문제 되지 않는다. 주 40시간만 채우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에는 오전 일찍부터 시작되는 정기회의들이 있고, 어느 정도 직급이 올라가면 팀 대표로 그런 회의들에 참석해야 한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지 못하는 그는 그런 회의들에 대표로 참석할 수 없었고, 성실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어, 부장 진급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언젠가 노벨상을 받은 퀴리부인에 대한 영화를 보다가, 그녀가 라듐을 추출하기 위해 거대한 양의 광석을 정제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고상한 책상 위의 물리학자의 모습이 아니라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의 모습 같았다. 그녀에게는 명석한 두뇌도 있었지만, 몇 년을 지치지 않고 수많은 양의 광석을 정제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성실함과 꾸준함이 없었다면 그녀의 노벨상은 없었을 것이다.


재능이 있지만, 그 재능을 뒷받침해줄 만한 끈기와 인내력이 없을 때, 그 재능은 결국 빛을 못 보고 사장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케이트에 재능이 있던 김연아 선수나 수영에 재능을 보인 박태환 선수, 그들이 어린 나이에 각 분야에서 재능을 보인 것은 맞지만, 결국 그들을 최고의 선수로 만든 것은 수년간 이어진 그들의 성실하고 꾸준한 연습이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해내려면, 무언가를 잘하고 싶다면, 성실함과 꾸준함은 기본이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성실하고 꾸준하게 글을 쓰는 이웃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감동스럽기도 했고 도전이 되기도 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성실하고 꾸준하게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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