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푸치노 Nov 07. 2021

폐암 말기 아버지와 죽음 공부

제프리 롱의 [죽음, 그 후]를 읽고

올해 88세이신 아버지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연세가 많으셔서 수술도 어렵고, 항암 치료도 적극적으로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버지의 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요즘 죽음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다. 죽으면 인간은 어떻게 되는 건가? 성경에 나온 대로 천국과 지옥이 있는 걸까? 아님 내 의식이 내 육체와 함께 생겨났듯, 내 육체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는 건가?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책꽂이에서 낯선 책을 하나 보았다. 분명 내가 사놓은 책인 거 같은데, 언제 샀는지 기억나지 않고 읽은 기억도 없다. "죽음, 그 후(Evidence of afterlife)". 마침 내가 요즘 고민하는 주제에 대한 책이었다. 방사선 종양학과 의사인 저자가 1998년에 임사체험연구재단을 설립하고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약 10년에 걸쳐 임사체험자 1,300명의 경험을 연구하여 정리한 책이다. 임사 체험(Near-Death Experience)이란 의학적으로 죽었다는 판정을 받았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체험이다.


1970년대부터 심폐 소생술이 널리 시행되기 시작하면서, 그전에는 죽음과 함께 그대로 묻혔을 심장 마비 환자들의 이야기가 그들이 심폐 소생술로 삶을 다시 회복하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임사체험자들 주변에 있던 의사들이 늘어나면서 이에 관심을 느끼는 의사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 책도 그런 의사 중의 한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우선 임사 체험자들의 경험을 12가지 요소로 이야기한다. 

1. 유체이탈

"내 영혼이 실제로 몸을 떠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병실로부터 12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남편과 의사들이 이야기하는 모습도 보고,  말도 들었습니다. 나중에 남편에게 확인을 해보니, 내가 들은 내용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한 체험자는 다시 깨어난 다음 의사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왜 수술실에서 그렇게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대셨나요? 제가 다 들을 수 있다는 걸 모르셨던 모양이죠?" 전체 응답자의 75%가 유체이탈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2. 감각의 고조

"그 감각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 이곳의 삶에서는 그런 감각을 경험한 일이 없었으니까요. 나 자신이 마치 수정처럼 맑아지는 느낌이랄까요? 마침내 마음의 고향으로 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안해할 필요 없이 무언가에 강력하게 속해 있다는 느낌, 정말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 나 자신이 완전해진 느낌이었습니다"  


3. 격렬하고 긍정적인 감정

"사랑과 기쁨, 행복, 그리고 당신이 한꺼번에 느낄 수 있을 온갖 놀라운 감정을 다 느꼈습니다"  


4. 터널 체험

"파도를 타는 것처럼 공중을 날다가 부드럽게 한 번 움직였더니 터널의 입구로 들어갔는데 요람에 있는 것처럼 편안했다는 거예요. 터널의 벽은 물결처럼 부드러웠고 환했지요. 밝은 빛이 하나 있었는데 그쪽으로 다가갈수록 터널은 좁아지고 더 밝아졌습니다"  


5. 신비롭고 눈부신 빛

"아름다운 빛이 나를 끌어당겼습니다. 그 빛이 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지자 바로 눈물이 났고요"  


6. 지인이나 신비로운 존재와의 재회

"어머니와 딸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딸은 사망할 당시 두 살 정도밖에 안됐는데, 어른 목소리를 하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그게 딸의 목소리라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들은 내 이름을 불렀고, 내 몸은 기류를 타고 이동하는 것처럼 아주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  


7. 시공간의 개념이 달라짐

"내가 그 빛 안에 있는 동안에는 이전에 알았던 것과 같은 시간 감각이 없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과거와 현재, 미래, 이렇게 연대기적으로 시간이 흘러간다는 느낌이 없었거든요. 그 빛 안에 있는 동안은 모든 시간을 매 순간마다 체험했습니다"  


8. 주마등처럼 삶을 회고

"몸을 떠난 직후에 나의 삶 전체가 순식간에 앞에 펼쳐지는 걸 봤습니다." "내 첫돌부터 첫 키스, 부모님과 싸운 일들까지 내 삶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모든 일들을 보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서 바꿀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해보고 싶었습니다."  


9. 비현실적인 영역과의 접촉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푸른 하늘과 멀리 펼쳐지는 언덕들, 온갖 꽃들.. 모든 것이 빛으로 충만했지요. 마치 밖에서 빛을 받아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10. 특별한 지식을 접하거나 알게 됨

"그 존재의 눈을 들여다보았을 때, 우주의 모든 비밀이 보였습니다. 그 존재의 눈을 잠깐 들여다보았더니 모든 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게 된 것입니다. 우주의 온갖 비밀과 모든 시간, 모든 것에 관한 지식을요."  


11. 경계나 장벽을 만남

"경계를 사이에 두고 내 쪽에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했어요. 반대쪽은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갔습니다"  


12. 자의 혹은 타의로 되돌아옴

"거기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게 정말 속상했어요. 순수한 사랑! 이것이 내가 그 존재와 장소를 표현할 수 있는 한계죠. 그런 곳을 떠나게 된 거예요. 항의도 해봤지만 결국은 돌려보내고 말더군요."


그중 내 눈길을 끌었던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해본다.


- 시애틀의 임사체험자인 마리아라는 여성은 유체이탈 상태에서의사가 행한 소생술의 세부적인 내용을 상세히 증언했다. 특히 그녀는 의식이 병원 밖으로 빠져나가서 병원 3층 창밖 선반에서 테니스화 한 짝을 보았다고 말했다. 담당 의사는 그 말을 들은 즉시 3층의 창문 선반을 전부 뒤졌다. 그리고 마리아의 묘사와 정확히 일치하는 신발을 찾아냈다. 


-유명한 의학 잡지 란셋(Lancet)에 실린 한 의사의 경험담이다. 그의 환자는 심장마비와 호흡정지를 모두 겪었다. 환자에게 공기를 주입하기 위해 기도에 튜브를 삽입하다가, 의료진은 환자가 틀니를 착용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환자의 틀니를 빼서 응급환자용 카트의 서랍에 넣어두었다. 일주일 후에 환자는 유체이탈 체험을 했다고 이야기하며, 소생술을 받았던 병실과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을 정확하게 묘사했으며,  잃어버린 틀니가 응급환자용 카트 서랍에 있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케이티는 3살 때 호두가 식도에 걸리면서 임사체험을 하게 되었다.  "죽었을 때 나는 몸 위에 있었고 할아버지가 나를 구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몸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거실에 있는 어떤 존재를 향해서 부엌을 나왔습니다. 거기는 환한 빛이 있었는데, 그 존재에게서는 평화와 사랑, 자애와 기쁨이 느껴졌습니다. 그분이 나를 껴안으니까 너무 기뻤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기쁨이 느껴집니다. 그 존재가 신인지 어떤 분인지,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그런 개념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것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다시 깨어났을 때 계속 어머니에게 "누가 나를 만들었어? 영원이 뭐야? 신이 뭐야?"라는 질문을 던져 괴롭혔다고 합니다." 


-생후 며칠 만에 시각장애인이 된 비키는 임사 체험 후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게 몸이라는 건 알았지만 내 몸인 줄은 몰랐습니다. 몸을 흘낏 보고 내가 내 몸 안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른손 약지에 평범한 금반지를 꼈고, 그 옆에 아버지의 결혼반지를 하나 더 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결혼반지는 확실하게 보았습니다. 반지 한 구석에 오렌지색 꽃이 새겨져 있었어요. 그때가 내가 시각과 빛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유일한 때였습니다. 직접 체험했으니까요."


책을 다 읽었지만 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 믿지 않았던 사후 세계를 믿게 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그동안 나는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죽음 이후에는 뇌 기능의 정지와 함께 우리의 의식도 사라지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믿기지 않는다고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단정하는 게 더 위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굳게 닫아놨던 문을 살짝 열어놨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의 이야기로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임사체험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암환자들 중 몇몇은 내게 '죽음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겁을 먹은 채 물어보곤 한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10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축적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증거를 자신 있게 보여준다. 그런 증거들이 암환자들이 더 강한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질병과 싸울 수 있도록 도왔다고 나는 확신한다."







작가의 이전글 JYP, 그의 순수한 열정에 끌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