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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Oct 28. 2021

JYP, 그의 순수한 열정에 끌리다

무대에서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춤추며 노래하는 그는 나와는 종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와는 전혀 교집합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완전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다. 


그러나, 언제가 TV에서 JYP가 하나님이 계신 것 같긴 한데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일단 그가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이 반가웠고 그럼에도 믿어지지 않아서 힘들다는 말에 예전 내 경험이 떠올라 그에게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다, 우연히 그가 쓴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책을 읽게 되었다.


책 속에는 그가 이제는 믿음을 확신하고 거듭나게 되었으며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찾아가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JYP 하면 연관되는 이미지가 비닐옷이었는데, 그의 삶에 일어난 변화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나, 그건 JYP의 삶에 일어난 변화였고 그 책이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자체적으로 교회 모임을 이끌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대신 책을 읽고 궁금한 점이 있었다. 


"예언들은 몇십 년,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후에 다 이루어졌고 그것들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인 자료들로 남아 있었다. 아무리 돌려서 보고, 삐딱하게 보려고 해도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결국 나는 성경이 인간이 쓴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확인했다고 한, 이루어진 예언들이 어떤 것들인지 궁금했다. 그동안 많은 책을 읽었지만 저자에게 메일을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고민 끝에 용기를 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다음날 답변 대신 세미나에 참석하면 궁금증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메일을 받았다. 궁금증 몇 가지를 해결하기 위해 두 시간씩 6일간이나 진행하는 세미나를 들어야 할지 처음엔 고민스러웠다. 성경 공부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JYP와 성경 세미나라는 낯선 조합에 대한 호기심과 내가 책에 대해 가졌던 몇 가지 궁금중을 해결하기 위해 그렇게 나는 세미나를 듣게 되었다. 


세미나를 듣기 전 나는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삶의 허무함 때문에 당황하고 있는 상태였다. 대학교 때 진한 허무감으로 고민하다 나름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며 한동안 잊고 살던 허무함의 문제가 다시 나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대학만 합격하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만 같았지만 대학 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허무감에 시달렸다. 그동안은 대학 입시라는 목표를 갖고 살았는데 막상 그 목표를 이루고 나니 나는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또 다른 목표를 세워도 역시나 그 목표를 이루면 같은 상태가 반복될 것 같았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삶의 의미는 무언가. 내가 그냥 우연히 태어난 존재라면 아등바등 사느니 지금 그냥 생을 그만둬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다만 죽는 방법만이 문제였다. 허무함이 찾아올 때면 나는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때론 낮 12시에도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곤 했다. 그러다 진리를 알아야겠다 싶었다. 화학을 전공하는 학생에게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세계 종교사의 이해라는 과목 등 종교 관련 과목들을 찾아들었다. 그러면서 다른 종교에는 별게 없고 진리가 있다면 성경 속에 있든지 아니면 없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책을 읽다가 집어던지곤 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전쟁에서 이기고, 손이 내려가면 전쟁에서 진단다. 이런 허무맹랑한 얘기를 믿으라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성경을 읽어가다 보니 서서히 뭔가 있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점점 진짜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이사야서 41장 10절 말씀을 접했다. 하나님께서 내 귀에 대고 소리치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지만, 두려운 마음마저 들었다.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내가 지금껏 모르고 지냈던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하나님을 믿기로 했다. 그런데, 머리로는 하나님이 계신 걸 알겠는데 머리와 가슴이 같이 연동되지 않았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속물로 죽으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고,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도 마음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또 가끔씩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믿음과 의심 사이를 오락가락하던 나는 한동안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를 떠나자 나는 다시 허무함에 시달리게 되었고 1년쯤 후에 나는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다시 교회를 찾은 날, 목사님은 요한복음 21장 말씀으로 설교를 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그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 장면이었다. 그 말씀을 들으며 나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펑펑 울었다.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의 심정이 그때의 내 심정이었다. 나는 내가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며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내 삶은 교회 생활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교회 지체들과 교제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나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대학가가 있는 신촌에 있던 교회였던지라 서서히 많은 교회 지체들이 결혼과 직장 생활로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직장 근처로 이사를 하면서 교회를 옮기게 되었지만 교회 지체들과의 교제 없이 그저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이가 들수록 회사에서의 업무도 늘어났고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다 보니 나는 점점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가끔씩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는 했다. 내가 이대로 산다면 죽기 전에 가장 후회할 일이 무엇일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일이 가장 두려웠다. 그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새벽기도회에도 참석하고는 했지만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고질병인 허무함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과거의 경험을 살려 다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좀처럼 간절함이 생기지 않았다. 성경을 읽어도 마음에 잘 흡수되지 않았고, 기도에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틈틈이 유튜브에서 다른 사람들의 간증 동영상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JYP 세미나를 듣기 전 내 상태였다. 


세미나는 사실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둘째 날이 재미있었다. 유대민족과 예수님에 대한 예언들이 몇천 년에 걸쳐 이루어진 사실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내 마음에 그다지 큰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끝까지 마무리는 하고 싶었다. 그러다 마지막 날,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래전에 구원을 확신했지만 지금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원인이 내가 믿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됐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는 다니고 있는 교회의 구역 모임에 참석하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모임이 좀 꺼림칙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어찌어찌 나는 JYP 교회의 일요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고, 조모임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이도 사는 지역도 다른 사람들 틈에 낯설게 끼여 몇 마디 상황을 나누는 모임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 달쯤 되었다. 


그러다, 지난주 토요일 혼자서 운전을 하고 가던 중 갑자기 내가 JYP의 교회에 참석하고 그 교회 사람들과 교제하게 된 일련의 과정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내가 이렇게 계속하는 게 맞을까, 나는 왜 이 모임을 계속하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남편도 내게 JYP 교주의 이단 종교에 빠진 거냐고 놀려대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내가 오래전에 자주 불렀던 찬양이 떠올랐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 되기 원합니다"


이 찬양은 내가 구원을 확신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자주 부르던 찬양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자꾸 다른 은혜를 구하고 싶지 않았다.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이끄심을 받고 그분 안에서 사는 게 행복했다. 하나님 자체를 구하고 싶었었다.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다가 내가 JYP 교회에 계속해서 참석하는 이유가 그에게서 하나님을 향한 때 묻지 않은 열정을 보았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그 순수한 열정에 내가 끌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간절하게 기도했다. 예전의 순수했던 그 마음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덧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 예배 중 어느 자매의 간증을 듣게 되었다. 그 간증 속에서 나오던 말씀을 듣고 나는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엎드려서 엉엉 울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서 53:5~6" 


2천 년 전 머나먼 예루살렘이라는 땅에서 예수라는 이름의 청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이유가, 2천 년이 흐른 지금, 이곳 한국에서, 집과 회사를 오가며 열심히 일만 하고 있고,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일은 절대 하지 않으며, 내 핸드폰을 이 세상 어느 누가 본다고 해도 별로 부끄러울 게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 죄 때문이라는, 어찌 들으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그 사실이 아주 오랜만에 다시 믿어졌다. 한 때 구원을 확신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수없이 고백해왔으면서도 그릇 행하여 하나님의 길을 등한시하고 내 길로만 고집했던 나를 생각하니 가슴이 물리적으로도 아팠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시 내 안에서 일하시기 시작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내 마음이 점차 부드러워지고 말씀을 들어도 무감각하던 마음이 점점 말씀에 촉촉하게 젖게 되었다. 낯설게 느껴지던 조원들에게도 조금씩 친근감이 느껴지고, 무엇보다 말씀에 대해 간절한 조원들의 자세에서 많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동안 오래 멈춰있던 믿음의 생활이 서서히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마라톤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죽는 날까지 쭉 계속되어야 할 아주 긴 여정이다. 나는 다시 흔들릴지도 모른다. 여전히 내 이기적인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을 거다. 그러나, 한 가지는 내가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믿음의 지체들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 말이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다른 소리도 있다. '꼭 JYP 교회여야 할까? 그냥 다니던 교회에서 믿음의 교제를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JYP 교회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괜히 상처 받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음, 이곳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게 보이는 것 같아. 계속해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고, 하나님이 내 안에서도 새롭게 일하시기 시작하셨어. 무엇보다 JYP와 교회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에 내가 끌리고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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