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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Sep 12. 2021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아니 이 시간에 왜 여기 계세요?"

평일 낮, 아파트 산책로에서 만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놀라 물었다.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위인 회사 선배였다. 회사에서 오가다 눈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친분이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평일 낮이면 회사에 있을 시간인데, 집 앞에서 만나다 보니 놀라서 물은 것이다. 


"병가 중이에요. 허리 디스크로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지금 회복 중이에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녀는 한번 심호흡을 한 후에 어렵게 입을 뗐다. 

"나도 병가 중이지. 나는 난소암이야. 다시 회사에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녀의 답변에 놀라,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였음에도 그 자리에서 그녀를 껴안고 울었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했다. 그날 우리는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같이 병가 중인 처지에 가끔 만나 산책이나 같이 하자고 얘기하고 헤어졌다. 


그 후로 그녀와 가끔 만나 점심을 같이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같이 산책을 하곤 했다. 대화를 나눌수록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도 꽤 일을 잘해서 기대되는 차기 여성 임원 후보자였다. 그녀는 다시 일이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는지 말끝을 흐리곤 했다. 그 몇 달 후 나는 병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고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몇 년 후에는 휴직 상태였던 회사도 퇴직을 해야 했다. 그녀는 신앙이 없던 상황에서 아프고 난 후 성당에 다니며 성경을 공부하고 있었다.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말씀 공부하는 게 너무 재밌고 감사하다고 했다. 새롭게 시작한 성경 공부와 신앙의 힘으로 그녀는 항암 치료를 잘 견뎌냈고 몇 년간을 잘 버텨냈다. 그러나, 그 후 몇 년쯤 지나 불길한 소식이 들렸다. 그녀의 암이 재발했다는 거였다. 그리고, 며칠 전 나는 그녀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내가 새벽 기도에 다닐 때엔 나는 잊지 않고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내 기도만큼이나 간절하게 기도하곤 했다. 그러나, 내 게으름과 영적 나태함 때문에 새벽 기도를 빼먹고, 집에서도 거의 기도하지 못하면서 나는 그녀에 대해 기도하는 것도 잊었고 그녀에 대해서도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리고, 그녀의 부고 소식을 접하면서 내가 그녀에게 제대로 된 이웃이 되지 못했음에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내가 기도한다고 그녀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을게다. 그러나, 나는 가끔 그녀를 찾아가 위로하고 말 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었음에도 그러질 못했다.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물었다.

"누가 우리의 이웃입니까?"

예수님은 한 강도 맞은 사람을 예로 들으셨다. 한 사람이 강도를 맞아 거의 죽게 된 채 길에 버려져 있었다. 한 제사장과 레위인이 지나가다 그를 보았지만 그냥 갈 길을 재촉했다. 한 사마리아인이 그 사람을 목격하고 상처를 치료하고 주막으로 옮겼다.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며 그를 보살피게 했고, 돈이 부족하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도 했다. 예수님은 이 셋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겠냐고 질문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셨다. 


나는 물리적으로도 그녀의 이웃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이웃을 제대로 돕지 못하고 안타깝게 그녀를 홀로 보냈다. 그래서 죄책감과 미안함과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오늘은 그녀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하며 그녀를 위해 애도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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