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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Aug 29. 2021

두 달간의병가:미리 체험해보는퇴직 후의생활

두 달간의 병가를 마치고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다. 몸이 아픈 상태였다는 차이는 있지만 퇴직 후의 삶이 어떨지 미리 체험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나는 아직 퇴직할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게다가 아무리 경제적인 여유가 있더라도, 취미 생활만 하며 남은 인생을 보내도 안 되겠구나 싶었다. 물론 나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다.


내게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면 실컷 해보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었다. 여유 있게 아침을 먹고, 카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허리디스크가 터져 처음 한 달은 거의 누워 있었다. 그래도, 처음엔 회사를 가지 않고 집에서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항상 머릿속이 꽉 찬 듯했는데, 회사에 가지 않으니 머릿속이 가벼워지면서 상쾌했다. 누워서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도 실컷 봤다. 10여 년 전에도 허리디스크로 누워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누워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많이 갑갑했다. 그런데, 그 사이 ebook 콘텐츠가 많이 늘어나 누워서도 실컷 책을 읽고 유튜브도 볼 수 있었다.

 

병가 한 달쯤 후에는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조금씩 바깥출입을 할 수 있었다. 오전 오후 카페를 옮겨가며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회사 생활 중 내가 가장 로망으로 생각하던 장면이었다. 두 달간 30여 권의 책을 읽었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20여 편의 글을 올렸다.


그런데, 그렇게 한 달쯤 보내고 나니, 어이없게도 그런 생활도 시시해졌다. 시간만 많이 있다면 26년간의 직장 생활을 하며 깨달은 것들을 마구 쏟아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써보니 생각보다 내 안에 쌓인 얘기가 별로 없었다. 20여 편쯤 쓰고 나니 더 이상은 쓸만한 게 없었다. 더 많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이 채워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 책을 읽는 것도 아직도 읽고 싶은 책 리스트는 꽉 차 있지만, 책만 읽으며 하루를 보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어서 병가를 더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나는 두 달간의 병가를 마무리했다.


요즘 여기저기서 퇴사에 대한 글들을 많이 봤다. 내 관심사이니 눈에 잘 띄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퇴사 후의 자유로운 삶을 찬양하는 글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나는 너무 오랫동안 회사 생활로 못된 습관에 너무 오래 절여져서 그런지, 취미 생활을 하며 살기에는 부족하다 싶다. 퇴사 후에도 적게 일하고 적게 벌더라도 뭔가 일이 있어야 한다는 걸 절감한다. 올해 88세이신 아버지는 아직도 회사에 다니신다. 건강도 안 좋으셔서 집에서 쉬시라고 해도 회사에 나가는 게 더 낫다고 하신다. 연세에 비해서 정정하신 이유가 아직도 일하고 계시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틀간 회사에 출근해서 다시금 깨달은 게 있다. 회사에 있는 시간 동안 어차피 대놓고 딴 일을 할 수는 없으니 회사에 있는 동안에 열심히 집중해서 뭔가를 해야 행복하다는 것이다. 하는 일 없이 집중하지 못하고 8시간을 보내는 것은 전혀 건강하지 못하다. 시간도 잘 가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지고 오히려 우울함이 쌓인다. 회사에 있는 동안에는 뭔가에 집중해야 하고 열심을 내야 한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행복할 수 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있다.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있지 않는 대신 회사에 있는 시간 동안 최대한 집중해서 일을 해내기로 말이다. 언제까지 회사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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