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푸치노 Aug 25. 2021

어떻게 늙어가야 할까

고든맥도널드[내면세계의성장과 영적 질서]

20대에 이 책을 읽었었고 50대가 되어 최근에 다시 한번 읽게 됐다.


20대에 이 책을 읽으며 작은 바람에도 심하게 요동치는 얕은 바다가 아니라 웬만한 태풍이 불어도 끄덕하지 않고 유유하게 자기의 흐름을 유지하는 깊은 바다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었다. 깊은 바다와 같은 마음, 태도, 자세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20대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외적으로는 많이 질서 잡힌 삶을 살고 있다. 20대의 내 방은 정리되지 않았고 책상 위는 늘 지저분했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도 불규칙했고 규칙이라는 이름을 싫어했었다. 내가 자고 싶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게 좋았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광고에 혹해서 사곤 했으며 그렇게 사놓고 쓰지 않은 물건들로 집안이 꽉 차 있곤 했다. 


50대가 된 지금 우리 집은 늘 깔끔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고 물건들도 잘 정돈되어 있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도 규칙적이며, 주말에도 취침 시간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가계부를 쓰고 있고, 우리 집의 자산 상태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내 외적인 삶은 상당히 균형 잡혀 있고 질서 있는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내 외형적인 삶에 비해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 부끄러움이 가득하다. 20년이 넘도록 내 영적 성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늘 집합 부분만 공부하다 멈춘 수학책이나 To 부정사만 공부하다 그만둔 영어책처럼, 내 영적인 성장은 늘 시작만 하고 꾸준히 이어지지 못했다. 힘들어도 더 진도를 나갔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며 아래 구절이 내게 가장 아프게 다가왔다. 


기독교는 말만 많은 종교가 되기 쉽다. 말만 그럴듯하게 늘어놓으면서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입으로 약속을 하고, 결심을 말로 표현하고, 열정적으로 자기의 확신을 밝히기란 쉽다. 하지만 그 말의 배후에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 시작한 일을 끝내지 않는 사람,  열변을 토하지만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그들은 자신의 시간과 적합한 실천을 서로 조화시킬 줄 모르기 때문이다.

코울리지의 이야기는 훈련 없는 인생이 빚어낸 최악의 비극이다. 그토록 탁월한 지성이 그렇게 보잘것없이 산 경우는 달리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군에 입대하려고 케임브리지 대학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말에게 솔질을 해주기 싫어서 군대도 그만두었다. 옥스퍼드 대학에 다시 들어갔으나 학위도 받지 못한 채 그만두었다. [파수꾼]이라는 신문을 발간했지만 10호를 넘기지 못하고 폐간해버렸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할 일을 보면 처음에는 정신없이 덤비지만 언제나 미완의 상태로 남겨둔다. 그는 꾸준히 노력하고 집중하는 능력만 빼고는 시인의 자질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스스로 말했듯이 그의 머릿속에는 "온갖 책의 원고가 작성되어 있었지만 글로 옮기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곧 8 절판 두 권에 해당하는 원고를 인쇄소에 넘길 작정이다." 그러나 그 책들은 코울리지의 머릿속에 갇혀 있었을 뿐 실제로 만들어진 적은 없다. 앉아서 그것을 쓸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훈련 없이는 누구도 탁월한 인물이 된 적이 없으며, 그러한 인물이 되었다 해도 자기 훈련 없이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한 경우는 없었다.


얼마 전에 남편이 내게 뼈 때리는 소리를 했다. "당신은 시작은 많이 하는데 꾸준하질 못해." 

작년 말, 남편은 살을 빼겠다고 하더니 80Kg에서 70Kg 초반대로 살을 뺐고 10개월째 유지하고 있다. 요즘도 아침마다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나는 3Kg만 빼겠다고 5년째 말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몸무게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이 있고, 이런저런 일을 하고 싶다고 사람들에게 얘기하지만, 수년 동안 머릿속에만 머물 뿐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나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즐기지만 한두 달 반짝 노력하다가 쉽게 그만두고 만다. 


또한 50대가 되면서 나는 심하지는 않지만 허무감에 시달리고 있다. 앞으로 무얼 위해 살아야 할지 애매했다. 회사에서 임원으로 진급한 사람들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노력하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 회사에서 더 이상의 진급이 불가능한 것이 명백해진 지금, 나는 앞으로의 내 삶에 어떤 목표 어떤 목적의식을 두고 살아야 할지 난감했다.


수년 전 나는 한 위대한 남자를 알았다. 이제 10년이 흘러 다시 그를 만났는데 수다스럽고 기운이 빠지게 하는, 얄팍하고 가식적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마흔이 넘으면 그렇게 되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 게으름과 방종에 대한 두려움이 무섭게 엄습하였다.

나는 탈진하고 성장이 멈춘 채 그저 오락으로 인생을 소비하는 정신적으로 텅 빈 중년들을 무수히 보아 왔다. 


나도 이대로 살다 보면 성장이 멈춘 채 하루하루를 의미 없는 오락으로만 보내며 늙어가지 않을까 겁이 난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내 80대를 바라보며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지 어떤 내면세계를 가진 사람으로 늙고 싶은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고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80이 되어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노인이 되고 싶다. 꾸준히 건강 관리를 해서 허리가 꼿꼿한 노인으로 늙어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해야 할 일을 꾸준하게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일단은 하루 30분 기도와 한 시간 걷기를 평생 실천하며 살아야겠다. 한 시간 걷기는 두 달 동안 유지하고 있는 습관인데, 하루쯤 쉬고 싶은 유혹을 많이 느낀다. 그런데, 하루를 쉬면 어렵게 쌓아 놓은 습관의 둑이 급격히 무너질 것 같아서 이를 악물고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 끝까지 더 해보자. 


80대가 되어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을 때 내가 50대에 이 책을 다시 읽었던 것이 내 삶에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안도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The Power of Vulnerabilit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