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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Feb 11. 2022

아들의 추억으로 저장될 엄마표 음식 만들기

돌아가신 지 30년이 훌쩍 지났어도 가끔 엄마 생각이 날 때가 많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많은 경우 음식과 연관되어 있다.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들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나기도 하고, 엄마를 생각하면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막걸리를 사 오라고 하셔서 만들어주시던 술빵, 갈치, 병어, 조기 등에 빨간 양념을 얹어 만든 생선조림들, 소고기 뭇국, 차례상에 올라왔던 홍어찜, 홍어회무침 등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음식들이 엄마에 대한 추억과 이어져 있다. 아들을 임신했을 때는 새삼 엄마가 해주시던 소고기 뭇국과 홍어회무침이 너무 먹고 싶어 눈물이 날 뻔한 적도 있다. 


워킹맘이기도 하고 요리에 별로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들을 위해 요리를 자주 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을 보며 내가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를 기억할 때 연관되어 음식이 떠오르듯, 아들이 나중에라도 엄마를 생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음식 몇 가지는 마련해주고 싶었다. 아예 아들의 기억에 각인되도록 의도하고 몇 가지 그나마 잘할 수 있는 음식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 가끔 아들에게 묻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아들, 엄마가 해주는 음식 중에 뭐가 제일 맛있어?" 아들의 입에서 내가 의도한 대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내가 대신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면 아들은 묻는다. "엄마, 이런 것도 주입식 교육인 거야?"


내가 워낙 스파게티를 좋아했기 때문에 아들이 어릴 때부터 가끔 해주곤 했다. 남편보다는 내 입맛을 더 많이 닮은 아들 역시 스파게티를 아주 좋아했다. 어린아이들이 주로 좋아하는 토마토 스파게티보다 올리브 오일 스파게티를 좋아했고, 그중 유독 봉골레 스파게티를 좋아했다. 접시에 얼굴을 박고 남은 한 가닥까지 남김없이 해치우는 모습을 보면 참 행복했다. 요즘도 아들은 올리브 오일에 마늘 볶는 냄새만 나도 스파게티를 하는 거냐고 물으며 반긴다. 유치원 때에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엄스(엄마가 해주는 스파게티)"라고 대답해서 나를 뿌듯하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봉골레 스파게티는 엄마표 음식으로 아들의 뇌리에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 뒤에 도전한 음식은 일 년에 두 번, 설날 추석에 해주는 소갈비찜이다. 처음에는 배와 양파를 갈아서 직접 양념을 만들었지만, 요즘은 그냥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히 소갈비찜도 아들은 아주 좋아한다. 봉골레 스파게티와 소갈비찜은 이제 확실하게 아들이 기억할 엄마표 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그런데, 두 가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최근에 엄마표 메뉴를 더 늘리려고 노력 중인데 자주 해주는 음식인데도 너무 평범해서 아들의 기억에 각인되지는 않는 것 같아 억지로 주입시키는 메뉴들도 있다.


일요일 아침 메뉴로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다. 김치찌개는 집집마다 다양한 버전이 존재할 텐데, 우리 식구들은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김치를 참기름에 달달 볶은 후에 참치캔을 넣고, 아들과 남편이 좋아하는 소시지와 어묵을 듬뿍 넣는 것이 우리 집의 김치찌개이다. 다른 버전은 시도해본 적이 없는데, 다행히 가족 모두가 좋아한다. 오징어와 새우를 크게 썰고, 부추와 양파, 당근을 넣고, 밀가루는 최대한 적게 넣어 바삭하게 부친 해물전도 아들의 기억에 남도록 시도 중인 메뉴이다. 한동안 내가 한 해물전이 왜 이리 바삭하지 못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죄책감 느끼지 않고 기름을 잔뜩 넣어 해물전을 부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은 기름을 많이 넣는 것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이 있었는데, 해물전을 할 때만큼은 죄책감을 집어던지기로 결심했다. 또 하나의 메뉴는 역시 오징어와 새우를 잔뜩 집어넣은 순두부찌개이다. 처음 이 요리를 시도할 때는 아들이 좋아할 거라는 예상을 못했는데, 의외로 아들은 자기가 순두부찌개를 좋아한다고 고백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대략 다섯 개 정도의 엄마표 메뉴가 준비되었고, 이제 추가로 몇 가지를 더 준비하려고 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내가 가장 슬펐던 것은, 엄마가 이 땅에서 살아온 흔적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엄마가 쓰시던 물건들은 모두 정리되고, 나를 포함한 자식들의 기억 속에서만 남게 되는 것이었다. 그 기억마저 사라져 아무도 엄마를 기억해 줄 사람이 없게 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최대한 내 기억 속에서나마 엄마를 오래 붙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음식을 통해서나마 아들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도, 내가 이 땅에서 살다가 간 흔적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 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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