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채널을 돌리다 작은 아씨들이라는 드라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친구가 이 드라마가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 '작은 아씨들'을 모티브로 쓰였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초등학교 때 읽었던 동화책을 나이 든 지금 다시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줄거리도 가물가물하고 네 자매의 이야기라는 것 외에 주인공들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다.
책을 찾아보니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은 그리 두껍지 않았을 텐데, 거의 천 페이지에 근접하는 두꺼운 책이었다. 다행히, 책은 나이 들어 읽어도 재미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어릴 적 동화책에는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았을 테고, 어린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디테일한 것들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무얼 먹고, 어떤 취미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이동했으며,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갔는지 말이다. 19세기 미국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내용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50년 전, 남북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1868년에 쓰였다. 작은 아씨들의 아버지도 남북 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책 속에 나오는 음식들이나 문화생활을 즐기는 내용들은 지금의 내가 읽기에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들은 어떤 집에서 살았을까?
작은 아씨들이 살았을 집의 외관에 대해서는 쉽게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데, 작가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생가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매사추세츠주의 콩코드에 있는 '오차드 하우스'이며, 방문도 가능하다(https://louisamayalcott.org).
책의 내용들이 상당 부분 작가 자신의 삶과 닮은 것에서 유추하면 책 속에 묘사되는 집의 구조도 실제 그녀가 살던 집과 비슷할 것 같다. 1층에 거실과 주방이 있고, 2층에 침실이 있고, 꼭대기층에 자그마한 다락방이 있다. 이 다락방에서 둘째 딸 조는 쥐를 친구 삼아 글을 쓰곤 한다. 집 내부에는 벽난로가 있고, 양탄자가 깔려 있고, 거실에는 소파가 있으며, 주방에는 식탁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반적인 2층 집과 구조가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주방에는 요리용 화덕이 있고, 오븐이 있고, 냉장고도 있었다!
그 시대에도 냉장고가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직 전기가 들어오기 전이었으므로 현대적인 전기냉장고는 아닐 테지만 냉장고가 1834년에 처음 발명되었다고 하니 어쨌든 그 당시 미국의 가난한 가정에도 냉장고라는 이름의 물건이 있었던가 보다. 물론 전기가 들어오기 전이므로 밤에는 램프를 이용했다.
게다가 그 시대의 미국인들도 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물건들을 발명했던 것 같다. 부잣집 도련님인 로리가 재미있는 물건들을 자꾸만 사 온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칼들을 죄다 망쳐놓는 칼 세척기, 카펫의 보풀은 떼어내지만 먼지는 그대로 두는 청소기, 손을 씻으면 피부까지 벗겨놓는 노동 절약형 비누, 붙으라는 물건은 안 붙고 바보처럼 속아 넘어간 구매자의 손가락만 붙여버리는 초강력 접착제, 수증기로 물건들을 세척해주시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주전자"
가난한 작은 아씨들의 옆집은 부잣집인 로런스가의 주택인데, 위풍당당한 석조 저택으로 묘사되어 있다. 큼직한 마차 차고와 잘 관리된 마당, 그랜드 피아노가 놓인 커다란 응접실, 양옆에 꽃이 만발한 산책로를 갖춘 온실이 있다. 온실에는 머리 위로 뻗어나간 멋진 덩굴식물들과 나무들이 즐비하다. 글쎄, 집안에 산책로를 갖춘 온실이 있다고 하니 어느 정도 규모의 집일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그들은 주로 어떤 음식을 먹고살았을까?
자매들의 나이는 큰 딸이 16살, 막내딸이 12살일 때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 나이에도 그녀들은 커피와 와인을 마신다. 손님 초대 요리로 바닷가재 샐러드를 내놓고, 크리스마스에는 속을 채우고 갈색으로 구운 뒤 장식을 한 통통한 칠면조 고기를 먹는다. 간단한 식사로는 소고기랑 빵, 버터, 아니면 빵과 우유를 먹기도 한다. 해시(작게 다진 고기와 감자에 양념을 해서 약간 갈색이 될 때까지 튀기고, 고추나 셀러리 양파를 다져 넣은 음식)와 어묵, 치즈, 감자 등도 등장한다. 다양한 디저트들을 즐겼는데, 블라망쥬, 크림이랑 머핀, 케이크, 아이스크림, 봉봉 캔디, 레모네이드, 코코아 등을 먹었고, 간단한 점심 도시락으로 파이를 먹기도 했다. 주방에는 식품 저장고가 있어서 수제 절임 식품들을 보관하기도 했다.
블라망쥬
그들은 주로 무얼 하며 놀았을까?
크리스마스 저녁, 가난한 작은 아씨들은 연극이나 뮤지컬을 볼 형편이 되지 않자 자기들이 직접 연극을 제작해서 시연한다. 자매들은 화창한 날이면 정원을 가꾸거나 산책을 하거나 강에서 배를 타거나 꽃을 따러 다녔다. 비 오는 날이면 집에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뜨개질을 했다.
그 시대 돈 많은 사람들의 삶은 지금 보기에도 호사스럽다. 여름이면 여름휴가를 3개월씩 다니고, 주로 종일 쇼핑을 하고 산책을 하고, 말을 타며 사람들과 어울렸고, 저녁이면 연극이나 오페라를 보러 다녔다. 부유한 집의 가정교사를 하던 메그의 얘기다.
"6월 1일이네. 킹 씨네 가족이 내일 해변으로 놀러 가니까 난 해방이야! 3개월 동안 휴가인데 뭘 하면서 놀까!"
또한, 당시 부유한 집에는 여러 명의 하인들을 두었고, 가난한 작은 아씨네 집에도 오랫동안 집안일을 거들어온 하인이 있다. 지금으로 치면 입주 도우미에 해당할 것 같다.
그들의 이동 수단은 무엇이었을까?
먼 거리는 기차를 이용했고, 가까운 거리는 마차를 주로 이용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당시에도 합승 마차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우리의 마을버스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콜택시에 해당하는 콜마차도 있었다. 전화기가 없는 시대에 어떻게 콜마차를 불렀을까. 주로 하인들이 마차를 부르러 갔던가보다. 그리고, 쿠페 마차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찾아보니 쿠페 자동차가 쿠페 마차에서 유래한 용어였다. 보통 마차는 마부가 앞에서 운전하고 뒤에 사람들이 타고 가는 구조였다. 그런데, 젊은 귀족들은 옆에 애인을 태우고 직접 마차를 몰곤 했는데, 그렇게 되면 뒷좌석이 필요 없으니 반으로 자른 형식의 마차를 쿠페라고 부른 게 자동차에 까지 이어진 것이다. 당시에 쿠페 마차는 부유함의 상징이지 않았을까 싶다.
"프랑스산 신발을 신고 쿠페 마차를 타고 다닌다는 이유로 그 애들한테 굽실거려야 되는 줄은 몰랐어"
쿠페 마차 그리고, 막내딸인 에이미는 부유한 친척의 도움으로 장기간 유럽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녀는 프랑스의 니스 해변을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직접 운전하며 드라이브를 한다.
돈에 대한 생각은 어땠을까
그 시대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돈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는 얘기는 작은 아씨들의 부유한 친척인 대고모의 입을 통해 주로 등장한다. 대고모는 맏딸인 메그에게 강조한다.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는 게 맏딸인 네 의무다. 그걸 잊으면 안돼"
맏딸인 메그가 가난한 가정교사와 결혼하겠다고 말하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넌 돈도 지위도 사업체도 없는 남자와 결혼해서 지금보다 더 힘들게 일하면서 살겠다는 거구나."
"네 부모는 갓난아기보다도 세상 물정을 모르니 그렇지."
메그의 부모님이 가난한 가정교사와 메그의 결혼을 승낙하자 한 말이다.
메그도 사실 마음속으로는 부유한 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했다.
"매일 멋진 저녁 식사를 즐기고 꽃다발을 받고 파티에 가고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고 힘든 일도 안 하면서 사는 게 좋긴 하겠지, 남들은 그렇게 살잖아. 사실 그렇게 사는 다른 여자들이 늘 부럽기는 해. 나도 화려하게 살고 싶어."
작은 아씨네 가족이 부유한 옆집 로런스가와 친하게 지내고, 로런스가에는 자매들 또래의 로리라는 손자가 있다 보니 사람들은 그들의 친분을 의도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 집 딸들 중 하나는 수지맞겠네요. 양쪽 집안이 아주 친하데요. 그쪽 노인도 그 집 딸들을 무척 예뻐한다더라고요."
"마치 부인이 계획을 잘 짰지 뭐야. 일찌감치 카드를 돌리기 시작한 거지."
책 속의 자매들의 삶에 대한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150년 미국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도 꽤나 즐거웠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