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시작과 끝, 핸드폰 친구와 함께인 첫째. 오늘도 역시나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가지고 나와 거실 매트 위에 엎드려 핸드폰을 본다.
"밥 먹어"
"안 먹어"
"왜 안 먹어."
"배 안 고파"
"몇 숟갈이라도 먹어야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알았어."
아이가 많이 먹지 않을 것 같아 그릇에 밥을 조금만 담아 식타위에 올려놓자 첫째 아이는 어기적 거리며 의자에 앉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반찬도 먹지 않고 밥만 먹고 일어난다. 사춘기라고 해야 할지 언제부턴가 아이는 툴툴대는 날이 많아졌다. 귀엽고 상냥한 아이는 어디로 가고 온 세상 불만을 다 뒤집어쓴 아이가 앉아있는지. 동심으로 가득한 순수한 표정을 지었던 어린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셋째가 첫째의 가방에 있던 물병을 꺼내 뚜껑을 열어 마시자 더럽다며 소리를 지른다. 아이는 어깨 한쪽에 대충 가방을 메고 신발을 구겨 신은 채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아이의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시기라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냉랭한 모습을 보일 때면 괘씸하게 느껴진다. 엄마껌딱지였던 어린아이에서 자기만의 세계에 발을 들인 아이가 엄마에게 조차도 틈을 내어주지 않으려는 것 같아 속상했다. 아이가 독립해 나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알지만 서운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인사도 않고 쌩하고 나가는 첫째 아이에게 오늘 사주기로 한 음료는 취소라며 엄포를 놓았다.
"안 먹어!"
"너 자꾸 그러면 너한테 아무 지원도 안 할 거야!"
나는 맘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아이가 화를 낼 때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싶은데 같이 화를 내니 나, 참 철없는 엄마다.
같은 시각. 주말에 할머니 밭에 있던 달팽이를 가져온 둘째는 달팽이 집 안에서 달팽이를 꺼내 손바닥에 얹는다. 마치 귀여운 강아지를 보듯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몇 날 며칠을 달팽이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는 10마리 이상의 작은 달팽이들을 애지중지 살핀다. 금붕어를 키우던 통 안에 할머니 밭에서 가져온 흙을 깔고 풀을 덮어 달팽이 집을 꾸몄다. 둘째 옆에 셋째가 앉아 같이 손바닥에 달팽이를 올려놓고 요리조리 살펴본다. 첫째와 두 살 터울인 둘째는 언니에 비해 아직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하다. 첫째는 플라스틱 통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달팽이들을 보며 징그럽다고 소리를 지른다. 둘째는 달팽이가 얼마나 좋은지 통을 들고 식탁으로 가져온다. 첫째는 "왜 여기로 갖고 와! 치워!" 라며 기겁을 한다.
오전 8시 30분. 둘째는 학교 갈 시간이라고 말하며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신발을 신는다. 셋째는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둘째를 따라나선다. 나는 얼른 나갈 채비를 하고 함께 밖을 나섰다. 둘째가 학교에 가는 길 둘째가 눈에 안보이자 셋째는 "집에! 집에!"라고 외치며 떼를 쓰기 시작한다. 나는 셋째를 얼른 안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간신히 어린이집 앞에 도착하니 셋째는 줄행랑을 친다. 주말에 어찌나 즐겁게 놀았던지 계속해서 언니를 찾는다.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억지로라도 아이를 안고 어린이집 앞에 왔다.
"왜 그럴까요?" 어린이집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어머니 힘드셨겠어요." 원장님은 아이가 아닌 나를 보며 진심으로 걱정해 주셨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 학교와 어린이집에 갈 때까지 아이들과 나의 감정은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아이들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를 재촉하지 않으면서 기다리자 마음을 먹었지만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첫째 아이가 화가 나 방문을 닫고 들어갈 때면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오곤 한다. 둘째와 셋째를 통해 보이는 순수한 마음이 첫째에게서 보이지 않으면 훌쩍 커버린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핸드폰 속 동영상만 쳐다볼 때면 점점 대화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아이 마음속에 부모라는 중심이 사라지고 공허한 마음을 핸드폰에 의지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다양하게 접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과 벽을 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마음을 차분하게 말로 전하기보다 자꾸만 화를 내며 말하는 아이를 보면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이런저런 걱정을 뒤로하고 나는 노트북을 넣은 가방을 메고 카페로 향한다. 조금 더 성숙해진 나를 만나기 위해 글을 쓴다. 내 마음을 뒤흔드는 상황들로 마음이 복잡해지다가도 가만히 앉아 차분히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온전히 내 마음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미움이나 판단이 걷어지는 듯하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면 나의 마음만이 나를 반긴다. 지난 주말 시어머니는 "애들 잘 키워"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나는 '나도 잘 키워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짧은 말속에 여러 메시지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세 아이들 각자가 가진 재능이나 특징들을 보며 각자의 개성대로 잘 키우기를 바라시는 듯 했다.
나는 나의 개성대로 잘 크고 있는 걸까? 11년 차 엄마이지만 나 또한 매년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 때론 아이의 말과 행동에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엄마이기에 반성하고 아이와 대화를 통해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려 한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성숙한 엄마가 되고자 글을 쓴다. 글을 쓰며 내 마음을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