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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달팽이 Jun 13. 2024

글쓰기로 세상을 마주하다

가족들과 함께 피아노 연주회에 다녀왔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의 독주회였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연주가로서 꾸준히 피아노 연습을 해오신 듯했다. 선생님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처음 보기에 기대반 설렘반이었다. 공연장의 크기는 어떨까? 관객들은 많이 올까? 핀 조명을 받으며 연주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평소 청바지에 기본티를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는 나는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장을 가려하니 옷차림새가 신경이 쓰였다. 평상시에 입는 캐주얼한 옷은 공연장에 오는 에티켓에서 벗어날 듯했다. 나는 과하지 않은 적당한 옷으로 까만 바지와 깔끔한 회색 라운드 티를 선택했다. 살짝 도톰한 재질인 회색 반팔티는 얇은 면 반팔티보다는 단정해 보일 듯했다. 내가 갖고 있는 옷 중에서 지금 입을 수 있는 옷은 몇 벌 되지 않았다. 다이어트할 때 입었던 옷은 도저히 입을 수 없었다. 넉넉한 사이즈의 옷 중에서는 통이 넓은 세미 정장 바지 하나뿐이었다.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는 롱드레스와 하히힐, 그리고 물방울 모양의 긴 귀걸이까지 모든 것이 반짝였다. 피아노를 연주할 때 두 팔은 적당히 얇았고 힘이 있었다. 1부에서는 짤막한 곡으로 30곡을 연주했고 2부에서는 1부에서 들려주었던 곡보다 긴 곡으로 24곡을 연주했다. 연주가는 곡을 연달아 치다 숨을 가다듬고 다시 연주하기를 반복했다. 꼳꼳한 허리와 반듯한 어깨는 충분히 자신감 있어 보였다. 각 성격에 맞는 곡들을 연주하고 일어나 다음에 연주할 곡들에 대해 마이크를 들고 설명을 했다. 연주가의 음성과 적당한 사운드 크기는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 준비한 대본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날을 위해 얼마나 연습하고 준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존경스러웠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리의 크기 또한 공연장의 크기와 잘 어울렸다.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는 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힘이 있었다. 연주자 홀로 연주하고 말하고. 마치 음악을 주제로 한 1인 토크 콘서트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문득 내가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생각했다. 옷차림새부터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세상에 나가 사람들을 만날 준비가 되었는지 나를 돌아보았다. 관객들은 홀을 나와 연주가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이 건네는 꽃다발을 보니 내 손이 허전함을 눈치챘다. 공연을 보러 올 생각만 했지 연주를 무사히 끝낸 연주가에게 축하 인사를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관객들 중 몇몇은 각이 잡힌 멋진 슈트와 원피스를 입었다. 빛이 나는 그들의 옷을 보니 내 옷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관객들은 연주가에게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했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내 모습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멀찍이 서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불렀고 나는 바로 핸드폰 카메라를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은 아이를 양쪽으로 서게 하고 두 팔로 아이들을 감쌌다. 여유 넘치는 미소카메라를 응시했다. 아이들은 이런 상황이 어색한지 살짝 샐쭉한 표정이었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번 공연이 나에게 준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됐을 테고, 나에게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상황에 맞는 옷차림, 그리고 선물까지. 장소의 성격에 맞는 에티튜드를 갖춰야 함을 깨달았다. 만약 작가로서 독자들을 만나게 되면 나는 어떤 모양새로 사람들 앞에 서게 될까 궁금했다. 잘할 수 있을까? 당당하게 웃음 띤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악수를 청할 수 있을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혼하고 10년 동안 아이를 낳고 기르며 제대로 세상 밖으로 나가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족 이외에 만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대체로 아이 엄마들이었다. 오다가다 만나는 아이 친구들 옆에 있는 엄마들과 살짝 고개 숙여 눈인사를 할 뿐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거의 없다 보니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네는 것이 어느덧 어색하게 되었다. 거절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숨곤 했다. 아직도 관계를 맺는데 서툴다 느껴지지만 언제까지 홀로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인연을 만들게 되면 예의를 갖추고, 품위를 지키는, 우아한 내가 되고 싶다. 


연주가는 음악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사람들과 소통을 하듯 나는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머뭇거리던 나에게 글쓰기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자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게 하는 도구이다. 

내 앞에 놓인 수많은 허들이 장애물로만 여겨질 때 글쓰기로 진지하게 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 진지하게 나에 대해 고민하는 때가 또 있을까? 글쓰기가 나의 업이자 소명이라 생각하니 놓을 수 없었다. 글쓰기가 하루의 일부분이 되니,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버티며 넘어갈 수 있었다. 


혼자인 것을 좋아하지만 함께이고 싶은 나는 나를 들어내고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다. 아이엄마들과 만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 스스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길 바랐다. 하지만 친구를 만들기 위해 아이를 앞세운 것 같아 좌절감이 들곤 했다. 아이가 아니고는 다시 만날 수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 엄마가 아닌, 이름을 가진 나와 너로 만나고 싶었다. 아이들 엄마들과 만나게 되면 누구 엄마로 불리거나 불러야 했다. 내 이름은 무엇인데 누구 엄마의 이름은 뭐냐고 묻는 것이 어색했다.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었고 혼자여도 괜찮다 했지만 마음속엔 공허함으로 가득 찼다. 


글쓰기는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했다. 온전히 나의 느낌과 생각을 궁금해했다. 나는 이에 성실히 답을 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떨 때 힘이 드는지 나의 모든 걸 이야기했다. 글쓰기는 나에게 어깨를 빌려주었다. 힘이 들 땐 기대라고. 글쓰기에 기대었던 나는 조금씩 힘을 얻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육아와 살림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남편에게 인정받을 수 없었지만 글쓰기는 어렵고 힘들 때도 그래도 해보라고 용기를 주었다. 스스로 움직이는 힘을 주었다. 지금의 나를 넘어서고자 하는 간절함은 어떤 상황에서든 글쓰기를 놓지 않게 했다. 


지금 내가 마주하는 것은 하얀 화면이다. 시간이 지나 하얀 화면 속에 까만 글씨로 가득 찬다. 나의 글과 마주한다. 마치 거울에 비친 나를 보는 느낌이다. 이 글씨가 내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날아간다. 글로 세상과 마주하기 위해 옷매무새를 만지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제 나의 글이 내가 되어 사람들과 만나려 한다. 나는 공손히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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