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알을 낳았다. 달팽이가 집에 온 지 두 달여 만이다. 자연에서 살던 달팽이를 둘째 아이가 데려오면서 키우게 됐다. 집에서 키우는 달팽이가 알을 낳았다는 블로그 속의 글을 읽으며 부러워만 하다 실제로 하얗고 작은 알을 보니 신기하고 감사했다. 내가 만들어 준 환경이 달팽이들이 살기에 나쁘지 않았고, 괜찮은 상태임을 확인받은 것 같았다.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아파트 분양 홍보지와 함께 받은 부직포 행주를 채집통에 깔은 후 상추를 올려놓아 달팽이 집을 꾸몄다. 한참 달팽이를 키우는 법에 대해 검색했을 당시 달팽이 전용 흙이 아니어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빳빳한 행주를 물에 적셔 놓아도 된다는 말에 나는 즉시 흙을 치우고 행주를 깔았다. 흙을 깔면 매번 흙을 갈아주어야 하니 영 불편했었다. 부직포 행주는 흙과 달리 관리하기가 편했다. 달팽이만 밖으로 꺼낸 후 행주를 빨면 되었다. 행주를 빨면서 동시에 투명한 채집통을 닦아내기만 하면 된다. 그 위에 상추를 올려놓으면 5성급 호텔 부럽지 않은 달팽이 호텔이 완성되었다.
나는 짜잔 하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달팽이들을 깨끗이 청소한 집에 넣어주었다. 달팽이에게 감정이 있다면 달팽이들은 마치 새집으로 이사 온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집을 청소하고 며칠 지나면 채집통이 달팽이 똥으로 가득 차 있고 달팽이들은 패각 속에 쏙 숨은 채 벽이나 채집통 뚜껑에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집을 청소해 주고 물을 뿌려주면 숨어있던 몸통을 쏙 내밀고 활발히 움직인다. 달팽이들끼리 뭉쳐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왜 그렇게 서로 뭉쳐있는지 궁금했다. 밖으로 꺼내 물을 흘려보내주면 서로의 몸에 올라타는데 마치 엉겨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여러 블로그들을 돌아다녀본 결과 자기들끼리 노는 거라고 했다. 깨끗하게 목욕하고 기분이 좋아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노는 것일까. 애완용 백와 달팽이에 비해 작은 토종 달팽이여서 누구의 알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마치 결혼한 자녀가 아이를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금붕어를 키웠을 때는 실제로 알을 낳지 못하고 금붕어 별로 떠났는데, 달팽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알까지 낳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자연으로 방생해 줄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요즘같이 더운 날엔 달팽이들이 살기 힘들 것 같았다. 네모난 통 안이 사람이 보기엔 좁고 낮은 환경일 수 있지만, 작은 달팽이들에겐 자신을 보호해 주는 안정된 공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충이나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때때로 제공되는 신선한 상추를 먹을 수 있어 이만하면 훌륭한 달팽이 생이 아닐까. 비록 달팽이들이 자신의 환경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외부의 힘에 위해 이곳까지 왔지만, 생명을 데려온 만큼 끝까지 달팽이의 생을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간중간 달팽이별로 돌아간 달팽이들이 안타깝고 미안하기도 하지만, 남은 달팽이들 만이라도 예쁘게 길러주고 싶었다. 처음에 데려온 수보다 반이상으로 줄어 속상했는데 알을 낳고 또 새로운 식구들이 생길 생각을 하니 뿌듯했다. 처음 달팽이들을 데려왔을 땐 이렇게 달팽이들을 들어도 되는 건가 걱정도 많이 했었다. 지금은 패각을 살짝 들어 흐르는 물에 살살 씻겨준다. 가끔 달팽이 몸통을 가만가만 만져보기도 하는데 신기하게도 달팽이들이 좋아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마치 강아지들이 주인의 보살핌에 행복해 보이는 것처럼 달팽이들도 꼬리를 흔들고 있을 것만 같았다.
교감을 나누는 듯한 느낌에 소통을 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이 부모의 쓰다듬에 편안해하는 것처럼 달팽이들도 편안함을 느끼고 있을 것만 같다. 조그만 달팽이들 덕분인지 마음에 평온을 얻었다. 분주한 주말이 지나고 다시 맞는 월요일,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하얀 화면을 마주하려니 조금은 막막했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낸 순간 레디 고, 바로 앞으로 글쓰기를 향해 돌격해야만 할 것 같아 마음에 부담이 있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기도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셋째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도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했었지만, 결국 내가 해야 할 것은 글쓰기였다. 어질러진 집안을 청소하고 천천히 글을 쓰자 마음을 먹었다. 쌓인 설거지 거리를 해치우고 청소기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다 보니 더운 날씨에 말라가는 달팽이들이 보였다. 글쓰기에 갈피를 잡지 못해 혼란스러움을 간신히 참고 있다 처음으로 하얗고 둥근 알을 보니 마음에 새로움이 싹트기 시작했다. 달팽이들은 여러모로 고마운 존재들이다.
달팽이를 키우며 했던 일은 2~3일에 한번 집을 청소해주고 시간이 날 때마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워낙 작은 동물이고 관리가 어렵지 않다보니 달팽이의 존재를 잊을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패각 속에 벌레가 있었다. 이제까지 정성스럽게 돌보던 달팽이들이 그들의 별로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패각 속 작은 하얀 벌레를 죽이기 위해 달팽이에게 사용 가능한 벌레 퇴치제를 구매해 벌레가 보일 떄마다 뿌려주었다.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다. 달팽이에게 맞는 돌봄의 방법이 있어야 한다. 나 자신에게도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세심한 돌봄을 해야함을 알게 됐다. 나를 세심하게 돌보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며 나를 정확하게 알아차리게 된다.
사람들을 대할 때 느껴지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시키려고 얼굴에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느라 에너지가 소모될 때가 있다. 상대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 나에 대해 말하기보다 상대의 말에 수긍하듯이 반응을 한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관계를 흐트러 트리지 않으려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정보와 같은 대화만을 주고받는다. 때로는 나를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해 나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나에 대해 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크지만 당당하게 나를 드러내기란 꽤 어려운 일이었다. 관계 안에서 힘이 들때가 많이 있지만 글을 쓰기 이전에는 내면에 채워지지 않는 욕구로 인해 관계를 맺어보려 애쓰기도 했다. 그럼에도 혼자일 때가 많았다. 글을 쓰면서 부터는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자연스럽게 혼자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내면의 나와 대화를 시작했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무의식 속의 나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마치 기도를 하듯 내면에 울려퍼지는 진짜 마음을 알아갔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 간다. 나의 말이나 행동을 보며 반성하게 되기도 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게 되기도 한다. 힘든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 미래의 희망만을 보며 살아왔던 내가 현실 속 나를 제대로 알아가기 시작했다. 현실 속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나는 글쓰기를 선택했다. 글쓰기로 나만의 환경을 가꿔 나가고 있다. 나는 나의 현재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