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의 달팽이 Jul 01. 2024

있는 그대로의 나도 사랑스럽다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 욕구가 중요한 이유 

셋째를 유아 자전거에 태워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에 아이가 발이 아픈지 "발 아파"라고 말했다. 나는 자전거를 길 한쪽에 세웠다. "신발이 작아서 발이 아프지?"라고 물으니  아이는 "응"하고 대답했다. 집을 나서기 전 아이가 골라 신고 온 신발이 발에 딱 맞아 불편할 것 같아 다른 신발을 봉지에 담아 왔다. 가져온 신발은 운동화였고 신기려 하자 아이는 "이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나는 아이에게 "집에서 다른 신발 신고 갈까?"라고 말했다가 다시 돌아가기에 시간이 애매한 것 같아 어린이집 하원할 때 가지고 오겠다고 말했다. 역시 아이는 안된다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아이가 좋아하는 샌들을 신겼다. 다행히 늦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여유 있게 먹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떼를 써 난감했기 때문에 최대한 아이의 마음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애썼다.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다고 뿌리칠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가기에 귀찮은 마음과 내 시간을 좀 더 확보하고자 하는 마음은 결국 내 욕구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내 욕구에 맞출 수는 없다. 상황설명을 하고 엄마의 욕구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마음속엔 아이 발이 불편할 거라는 생각이 먼저였기 때문에 귀찮아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 신발을 바꿔 신겨야 했다. 


아이는 엄마를 힘들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발이 아프기 때문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내 중심으로만 생각했다면 얘가 왜 이러지? 나를 힘들게 하려고 골탕 먹이려는 건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봐주니 아이의 마음도 상하지 않고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다.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던 때를 생각해 보면 전혀 아이의 마음을 고려하지 못했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욕구가 중요하고 내 욕구도 중요하니 충돌할 때가 종종 있었다. 아이의 욕구를 먼저 들어주지 못한다고 하면 철없는 엄마의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욕구로 인해 내가 움직여진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을 누르고 참을 수만은 없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내 마음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했다. 내 마음의 존재를 없애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이 가능할까? 우는 아이를 달래지 못하고 어린이집에 들여보낼 때 선생님에게도 미안하고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아이를 억지로 보내던 날들이 계속되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했다. 내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상대방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대안을 생각해 본 결과, 내가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여 그 이전에 어린이집에 보냈던 시간보다 30~40분 일찍 나오기로 했다.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한 워밍업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아이와 천천히 어린이집 주변을 돌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싸 오기도 했다. 물과 물티슈, 간식을 챙겨 어린이집 근처 놀이터에 갔다. 아이에게 간식을 먹이고 미끄럼틀이나 그네를 타는 등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을 보며 10분만 놀다 가자 라고 하거나 미끄럼틀 한 번만 타고 가자라고 말했다. 아이의 욕구가 채워져서였을까? 아이에게 가자,라고 말했을 때 아이는 바로 자전거에 올라탔다. 아이를 울리지 않고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다. 어린이집 앞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자전거에서 내려 자연스럽게 어린이집 가방을 메었고 웃으며 인사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선생님께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실랑이를 했을 때는 아이에게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고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보내기 위해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해주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이의 기분에 맞추기 위해 아침부터 아이에게 tv를 보여주고 간식도 사 먹였지만 아이는 더 떼를 쓰며 가지 않으려 했다. 아침에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이 곤욕스러워지자 생각을 거듭해 보니 규칙이 필요함을 느끼게 됐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는 무조건 tv를 보지 않고, 어린이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고 정확하게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만화를 보지 않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많이 울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토닥여주면서 어린이집 가기 전에는 tv를 보지 않는 거라고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말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더 이상 아침에 만화를 보여달라고 떼쓰거나 말하지 않았다. 


아이의 욕구도 채워주고, 나의 욕구를 위해 일찍 나오게 되니 원하는 시간에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고,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낼 수 있었다. 더 이상 내 마음을 누르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욕구를 정확하게 바라보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내 마음을 알아채 주지 못하는 상대를 보며 화가 났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화를 내니 서로의 마음만 상하게 될 뿐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무엇이지?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고 내 욕구를 충족하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고 내 마음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를 울면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원하는 시간에 보내고 내 시간을 충분하게 보내고 싶었다. 아이를 울리지 않고 보내기 위해서는 아이의 욕구를 채워 주워야 했다. 내가 나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기대하거나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피하거나 돌려 말하지 않고 정확하게 말하니 아이도 수긍하는 듯 "응" 하고 대답했다. 어린아이 이기전에 나와 동등한 한 사람이라 생각하니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확하게 말해주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아이도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침이 되면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바폭력대화에서 저자 마셜 로젠버그는 '분석이나 비판보다는 우리가 무엇을 관찰하고, 그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며 무엇을 원하는가에 초점을 둘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연민의 깊이를 인식하게 된다.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도 귀 기울임으로써 존중과 배려, 그리고 공감하는 마음을 기르게 되어 진심으로 서로 주고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내 마음이 소중하듯이 다른 사람의 마음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존중과 배려가 일상적으로 흘러나올 거라 생각한다. 내 욕구와 느낌을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고 상대 또한 나와 같이 욕구와 느낌을 가진 존재이기에 상대에 대한 기대를 말하기 이전에 내 욕구를 정확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욕구와 느낌을 정확하게 알아차림으로 삶이 풍요로워짐을 느꼈다. 상대와 내가 소중하게 다가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삶을 선택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