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의 달팽이 Jul 05. 2024

자녀와 소통이 안될 때
글을 써보세요  

'따라라라라~ 여러분도 음악처럼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Have a good day'

아침 7시, 둘째가 맞춰 놓은 알람이 울린다. 잠이 덜 깬 나는 거실로 가 다시 누웠다. 10분만 누워있을 요량으로. 누군가 내게 안겼다. 귀여운 셋째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아이의 살결을 만지니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화장실 신호에 벌떡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화장실을 나오는데 첫째 아이가 냄비에 뭘 끓이더니 김이 나는 냄비를 들고 믹서기에 정체 모를 노란 액체를 부었다.   

"엄마" 첫째 아이가 나를 불렀다. "엄마, 이거 안되는데. 어떻게 하는 거야?" 아이는 믹서기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작동이 되도록 용기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 위잉, 믹서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고 주변정리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직접 토스트를 만들었다. 바쁜 아침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먹으니 고맙고 대견했다.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며 아침을 챙겨 먹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 아이들은 토스트를 들고 거실에 서서 먹기 시작했다. 나는 가루가 날려 거실이 지저분해질까 신경이 쓰여 "얘들아 식탁에 앉아서 먹어. 가루 다 떨어지잖아"라고 말했다. 엄마 이거 먹어봐, 하고 내게도 토스트를 건넸으면 대견하고 고마워서 가루가 떨어지는 것쯤이야 치우면 되지,라고 생각했을까? 아이들이 처음 스스로 전기레인지를 켜고 불조절을 하면서 주걱이나 뒤집개를 이용해 프라이팬에 재료들을 넣고 휘저었을 때 아이들이 많이 큰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고사리 손으로 만들어 내게 전해주던 그때가 선명히 떠올랐다. 


안방에서 이불을 개고 나오는데 싱크대 위에 산이 하나 우뚝 솟아있었다. 그 이름은 일명 설거지 산. 식빵을 굽는 데 사용한 프라이팬부터 냄비, 믹서기, 컵, 그릇 등 한바탕 요리전쟁을 치른 듯 온갖 용기가 가득했다. 거기에 식탁 위 빵가루와 과자가루, 식탁 밑에 흘린 부스러기가 혓바닥을 내밀며 나를 약 올리는 듯했다. 아침 8시. 어질러진 부엌을 정리하려는데 첫째가 가방을 들고나가려 했다.


"지금 학교 가려고?" 평소 보다 일찍 나가려첫째에게 말했다.

"응"

"이렇게 하고 간다고? 요리는 너네가 하고 엄마는 치우기만 하는 사람이야? 엄마한테 빵 한 조각이라도 먹으라고 주지도 않고 엄마는 너희가 어질러 놓은 거 치우는 가정부야? 사람이 기본 예의가 있는 거야. 자기가 쓰고 정리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가사도우미를 쓰려고 해도 얼만데! 이제 요리하고 치우지 않으려면 엄마한테 사용료 내!"

"나 친구랑 만나기로 했어. 빨리 나가야 돼!"

"친구 만나는 건 네 선택이야. 그런데 요리하고 치워야지. 최소한이라도 네가 쓴 믹서기 연결 선 빼서 제자리에 갖다 두던지, 바닥에 떨어진 거 라도 줍든지 해야지! 요리사는 요리하면서 정리도 한다고! 네가 밖에 나가서 일한다고 하면 바닥청소, 설거지, 화장실 청소부터 한다고! "

"그래서 지금 가지 말라고?"

"휴, 오늘은 엄마가 정리할 테니까 다음부터는 꼭 요리하고 정리해. 알았어?"


참으려고 했지만 참을 수 없었다. 요리해서 자기들만 먹고 치우는 건 내 몫이라 생각하니 괘씸했다. 아이에게 정리하는 습관을 길러 주기 위해 정리하라고 말하려는데 가방을 챙기고 나가려고 하는 모습에 화가 차올랐다. 요리하는 건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일 벌여 놓는 건 치우지도 않으니 엄마가 정리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나는 아이에게 초등학교 4학년이면 이제 혼자 치울 수 있다고 정리하는 습관을 기르라 말했다. 욕구와 감정 말하기를 배웠던 사실이 무색하게 충고만 늘어놓았다.


아이는 인사도 하지 않고 쌩 하니 나가 버렸다. 엄마가 뭘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잔소리로만 생각하는 듯했다. 엄마 또 왜 저래? 진짜 잔소리 듣기 싫어라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대로 멈춰 서서 말도 하지 않고 나 짜증 났어요라고 눈빛으로만 보여주니 더 화가 났다.


아이에게 충고를 하듯 쏘아붙였지만 다시 정리해 보니

"네가 요리하면서 즐거우면 엄마도 즐거워. 그런데 요리하고 너희들만 먹고 끝내면 당연히 엄마가 해야 될 일이라 생각하는 것 같아 실망스러워. 엄마는 너희가 요리하고 같이 먹으면서 함께 그 시간을 즐기고 싶은데 엄마는 너희들의 공간에서 제외된 것 같아 속상해. 앞으로는 요리하고 먹고 치우는 것까지 함께하면 좋겠어. 요리하는 과정안에 치우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엄마가 치우는 것에 부담을 덜 느낄 것 같아"라고 말을 하고 대화를 이끌어나갔으면 어땠을까? 


화가 난 감정 그대로 아이에게 쏘아붙일 때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서운한 감정만이 중요해지고 나의 말을 듣고 상처를 받을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너는 잘못했으니 내가 화를 내는 건 당연해,라는 생각이 들어 아이를 처벌하려 했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아이를 탓하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아이가 좋아하는 요리도 하지 못하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후회가 되었다.     


아이도 치우려고 했는데 친구랑 약속해서 나가야 된다고 오늘만 엄마가 해주라고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도 밉고 나도 미웠다. 인사도 안 하고 쌩하고 나가버리는 아이에게 화가 나 현관문을 열고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하냐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싱크대 앞에 서서 고무장갑을 낀 채로 쟤는 인사도 안 하고 그냥 가버리네.라고 중얼거렸다.


사춘기에 들어서서일까,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조잘조잘 대던 아이가 한 해가 다르게 감정이 변화무쌍해졌다. 전화를 하다가도 뚝 끊어버리거나 핸드폰만 쳐다볼 때는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함을 느꼈다. 아이의 변화를 이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 것인지 아이가 커가는 모습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점점 손이 덜 필요해져 몸은 편해졌지만 아이와 거리를 두고 아이를 지켜봐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인내심을 요했다. 내가 아이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것처럼 나의 엄마도 나로 인해 속상하고 서운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다녀와 엄마에게 시시콜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엄마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어릴 적 엄마에게 대들고 화를 내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아이에게 화를 내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글을 쓰면서 말이다.


지나가는 한 때의 일일 수도 있지만 일상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기억할 수 있었다. 아이의 모습을 보며 어릴 적 사춘기를 지나왔던 때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화를 내었던 내 모습에서 엄마에게 언성을 높이던 내 모습이 보인다니 그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엄마가 나를 무조건 믿어주고 인정해 주길 기대했을 때는 기대가 커질수록 실망감은 더 커졌다. 나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는 상대의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났다. 나를 보지 못하고 상대만을 탓하니 관계회복은커녕 점점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게 되었다. 심리학을 배우고 글을 쓰기 전에는 상대로 인해 상처받은 내 모습과 나를 알아주지 않는 상대를 보며 미워하고 원망했다. 그런데 글을 쓰며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니 나의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상대만을 탓하고 나를 바라보지 않는 나를 보게 됐다. 엄마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말은 누가 봐도 버릇이 없고 예의가 없어 보일 것 같았다. 


첫째 아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 나에게 툴툴대며 말하는 첫째를 보며 한 친구는 아이에게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돼."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한 말이었지만, 어렸을 때의 나에게 하는 말로도 들렸다. 내 말에 화가 난 엄마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탓하지 않고 나의 감정과 욕구를 잘 전달했다면 아이도 나의 마음을 알고 내가 원하는 대로, 다음엔 엄마에게도 챙겨주고 잘 치우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서로의 마음이 다치지 않고 서로의 욕구와 감정을 존중하는 대화를 나눴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알아차리기 위해 글을 쓴다. 글로 적어 내려 가는 과정은 아날로그이다. 시간을 관통하며 나에게 내 감정과 욕구를 더 세밀하게 관찰할 시간을 준다. 글쓰기는 나를 알아가는 방법이다. 무수히 많은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수 있다. 생각을 걸러내고 정리해 내는 것은 내 몫이자 선택이다.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할지는 자기 자신만이 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고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어떤 결정이든 후회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나는 글을 쓰며 나를 돌아본다. 아이들에게 화가 났을 때 그때의 내 감정과 욕구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나는 내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고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배우고 깨달아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있는 그대로의 나도 사랑스럽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