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시은이와 시은이 엄마를 만났다. 우는 시은이를 끌고 가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지나가는데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엄마대로 마음이 급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상처를 입으니 그 시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고역일까. 아이를 보내고 돌아오는 엄마의 마음이 아이를 보내고 후련하기보다 후회스러울 것 같아 안타까웠다.
집에 들어와 빨래를 너는데 그 엄마의 마음이 내게 훅 들어와 눈물이 났다. 사랑하지만 상처를 주기도 하는 존재가 엄마인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렸다. 엄마로서 애쓰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엄마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아이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 전 셋째의 어린이집 하원 후 집 근처 공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머리와 무릎 그리고 팔에 보호장비를 차고 롤러브레이드 신발을 신은 시은이와 그런 아이를 부축하는 시은이 엄마를 보았다. 평소와는 다른 낯선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본인 것이 아니라 벤치에 앉아있던 한 아이의 것이었다. 시은이가 타고 싶어 하자 그 아이의 엄마가 빌려준 듯했다. 그 아이가 타려고 했던 것을, 너무나 타고 싶어 했던 시은이를 지나칠 수 없어 타게 해 준 것 같았다.
시은이의 엄마는 미안했는지 슬러시를 사 와 빌려준 아이와 우리 아이들 것까지 나눠주었다. 난감해하는 시은이 엄마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졌다. 새로운 것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시은이로 인해 난감하지만 체념한 듯 아이에게 맞춰주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밝아 보였지만, 마음 안에서는 여러 감정이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모습들이 나에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서도 상황에 따라 화를 내는 모습이 나와 겹쳐 보였기 때문일까? 나 자신이 내 마음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아이를 많이 사랑하고 있고, 그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아이를 모질게 대하는 내 모습이 시은이 엄마에게서 보이는 것 같았다. 시은이 엄마에게도 자신을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시은이 엄마를 도울 수 있을까? 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걸까? 시은이 엄마를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하고 돌보고 싶은 것일까? 외동인 시은이를 보면 첫째 아이가 그만한 나이였을 때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올해 다섯 살인 시은이를 보면, 첫째 아이와 온전히 행복하지 못하고 감정이 흔들리는 대로 따라갔던 그때의 내가 생각나, 나보다 어릴 듯한 시은이 엄마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편안해지기를 바란다.
자기 돌봄이라는 것은 내 감정을 이해하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것이다.
마크 브래킷의 '감정의 발견'에 의하면,
*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일이 벌어지기 전에 나는 뭘 하고 있었는가?
* 내 감정이나 반응을 유발한 원인은 무엇인가?
* 오늘 아침에 또는 어젯밤에 이와 관련된 일이 있었던가?
* 이전에 이 사람과 관련된 무슨 일이 있었나?(감정이 관계와 관련 있는 경우)
* 이런 상황이나 장소와 관련해 어떤 기억이 있는가?
라고 질문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무엇이 이 감정을 일으키는가?
* 보통 무엇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가?
* 이런 감정을 느낄 때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 이런 감정을 느끼기 직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가? 누구와 함께 있었는가?
*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 내가 어떻게 도우면 좋을까?
나는 시은이 엄마를 보며 아이의 감정보다 내 감정이 앞설 때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를 내는 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우는 아이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보기 전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커피를 사 집으로 가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옷을 가져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서는데 어린이집 선생님이 다급히 나를 불렀다.
"어머니 오늘 숲체험 하러 가는 날이어서 바지를 입어야 해요."
"아 네. 치마 속에 바지를 입혀서 치마만 벗기면 될 것 같아요."
"어린이집 단체 티도 입어야 해요. 지난주에 바지와 단체티 입혀 보내달라고 공지했었어요."
"네. 집에 가서 가져올게요."
순간 나는 어린이집 공지를 보지 못했다는 것에 죄책감이 일었다. 제대로 입혀 보내지 못한 엄마가 된 것 같아 부끄러웠다. 선생님은 분명 알림장을 통해 공지를 했고, 그것을 확인하지 않는 나는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불량엄마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깨끗하지 못한 신발을 신겨 보냈을 때, 그것을 쳐다보던 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라 화끈거렸다. 그 이후로는 깨끗한 신발을 신겨보내기 위해 아침마다 어린이집 등원 전에 신발전용 세제를 묻혀 열심히 닦는다.
어린이집 공지를 확인하지 못한 죄책감과 아이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그때의 감정이 우는 시은이와 시은이 엄마의 모습에 덧입혀진 듯하다. 아주 가끔 아침마다 엄마와 실랑이를 하며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날은 유독 마음이 아팠던 것은, 이미 내가 그와 유사한 경험을 했거나 감정을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는 아이를 보면서 남편으로부터 잔소리를 듣는 내 모습이 겹쳐졌다. 전 날 남편이 내게 판단과 비난 어린 잔소리를 쏟아낼 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죄책감이 느껴졌고, 그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날 아침, 아이에게 혼을 내거나 조급하게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혼자 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나 자신을 돌보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 시은이 엄마가 안쓰러워 보였고,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했다. 다음에는 좀 더 나아지기를 바랐다.
감정의 발견에 따르면, 감정을 이해하려면 스토리텔링 능력, 조망 수용 능력, 현재 상황을 이끈 감정과 사건을 종합해 재구성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모든 감정이 정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 감정의 '원인'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자신은 물론이고 상대를 제대로 도울 수 없다.
시은이와 시은이 엄마를 통해 느낀 감정으로 나를 이해하고, 상대의 마음에도 따라가 볼 수 있었다. 시은이 엄마를 보며 흘린 눈물로 인해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감정이 어디서 온 걸까,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걸까,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했다. 나를 탐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감정을 이해하며 나에 대해 한걸음 더 나아갔다.
** 이름은 가명입니다.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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