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있는 그릇들은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왔다. 그중 스테인리스 밥그릇은 세월이 무색하게도 변함이 없다. 나이를 추정할 수 없는 그 그릇은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어도 그 자리 그대로 머물러있다. 이사로 집만 바뀌었을 뿐 같은 위치에 놓여있다. 친정에 오면 늘 그렇듯 그 밥그릇에 밥을 담아 먹는다.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왔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키가 자라나고 몸집이 커졌지만, 밥그릇의 크기는 그대로인 것이다.
친정에 다녀온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집에 있는 그릇, 어머니가 계속 쓰시던데, 딸들이 바꿔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친정집에 있는 그릇과 접시는 대부분 사용한 지 30년 이상 되었다. 누가오든 그 그릇만을 사용한다.
"그러게. 생각해보지 않았어. 너무 익숙해서. 손님이 올 일이 없으니까 바꿀 생각을 하지 못하셨을까?"
백년손님이라는 사위들도 예외 없이 오래된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밥을 담아준다. 무뎌진 세월만큼 인식조차 하지 못할 때가 있다.
문득 나는,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옷을 바꿔 입고 머리를 정돈하는 것처럼 그릇도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그릇은 그 그릇대로 사용하면 되고, 새로운 그릇은 (손님이 올 때) 때에 맞게 쓰면 된다. 사람이 변화를 맞이하듯이 나 자신과 주변 환경을 가꿔나가야 한다는 깨달음이 왔다.
엄마는 줄곧 이렇게 말씀하신다.
"신춘문예에 나가봐"
소설이나 시를 쓸 능력도 없는 나에게 그 말은 얼토당토않은 소리로 들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과 관련된 능력은 나와 별개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가 생각하는 글이란 무엇일까? 엄마에게 글쓰기란, 돈을 버는 수단이자 작가라는 직업을 갖는 것일까? 이제는 다른 것(소설)을 써보라 하는 말의 의미를 알지만 와닿지 않는다.
어떤 장르이든, 글이란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인데, 엄마가 말하는 소설이란 나를 드러내지 않는, 짜이고 꾸며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이야기 일지라도 이름을 바꿔 소설을 써보라고 하는 말이, 나의 이야기를 직접 드러내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으로 느껴진다. 나를 위해 하시는 말이면서도, 자신의 진짜 마음을 드러내기를 원하지 않는, 엄마 마음의 현주소를 보는 것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그릇처럼 엄마의 마음도 그대로인 듯하다. 나는 생각한다. 내 마음의 위치는 어디에 있을까? 마음의 크기는 어떠할까? 나에게 글이란 상대에게 손을 뻗는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 믿는다. 우리는 모두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로 돈을 버는 것은 2차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변화해야 할까?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욕구와 자아실현을 넘은 자아초월적 욕구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에게 더 나은 삶이란, 경제적인 성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음의 성장을 갈망하면서, 성장의 척도는 무엇으로 매길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습관적인 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생각의 한계에 부딪힐 때면, 어떻게 한계를 극복하고 넘어설 수 있을까 고민한다.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특히 가족들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회피하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익숙하고 안정된 상태만을 바라는 가족들 사이에서 나는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홀로 외딴섬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문제에 다가가려 하고 드러내려 하면 불편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자기 문제에도 직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상대의 마음을 알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관계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글을 쓰며 해소한다. 내 마음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글을 쓴다. 내 마음에 있는 불순물을 걸러내고 순수하고 깨끗한 물로 정화시키는 작업이다. 글을 쓰는 목적이 명확해질수록 방향이 뚜렷하고 분명해지리라 생각한다.
나의 글은 사랑을 향하고자 한다.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면서도 사람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에 의하면, 참사랑의 경험은 인간 한계의 확장을 가져오므로 그 경험은 자아 경계와 연관돼 있고, 인간의 한계가 인간의 자아 경계라고 말한다. 사랑을 통해 한계를 확장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성장을 돕기를 소망하면서 그 대상을 향해 다가가기 때문에 그러한 일(한계의 확장)이 가능하다.
가족들이 문제를 회피하는 이유는 상처를 도려내는 듯한 고통과 마음을 드러낸 후의 일들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감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느껴진다.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상처를 용기 내어 드러내고 직면했을 때 마음의 성장과 확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 일이다. 나의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132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