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빛을 보았다

'나는 빛을 보았다.'


처음으로 써 본 소설의 첫 문장이다. 글쓰기 과외를 받으며 썼던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이었다. 그 첫 문장만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의 일이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는지,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어릴 적 막연하게 꾸었던 작가라는 꿈이 똬리를 틀고 내 심장과 머리에서 나오지 않았다. 신혼집 근처에 있던 서울예대를 본 순간,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면 잘나 보이고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글도 쓸 줄 모르고, 문학의 문자도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내가 등록금도 없으면서 무작정 그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곧장 남편에게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가겠다고 말했다. 소설책 한 권도 제대로 못 읽고 글에 대한 지식도 개념도 없는 나였다. 입시를 위해 과외를 받아야 했다. 남편은 반대하지 않고 과외비를 내주었다. 지금이라면 남편이 동의해 주었을까? 신혼이었을 때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해주겠다는 마음이었던 걸까? 나는 매주 1시간여 버스를 타고 과외선생님이 계신 집으로 가 수업을 받았다. 선생님은 매일 숙제를 내주었다. 메일로 사진을 보내오면, 공책에 사진 속 모습을 글로 옮겨 적었다. 선생님의 칭찬에 힘입어 열심히 숙제하고 소설을 썼다. 10년 이상 세월이 흘러 당시에 썼던 소설을 찾을 수 없지만, 단 한 문장 만은 내 안에 남았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어려서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던 나는, 어느 날 엄마에게 시력이 좋지 않은 이유를 듣게 되었다. 태어날 때 빛을 보아서 그런 것 같다고. 차가운 수술대 위, 엄마는 나를 낳기 위해 수술을 받았다. 수술실은 너무도 밝았다.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마주한 섬광과도 같은 빛은, 순간적으로 내 시력을 약하게 만들었다고 엄마는 말했다. 나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에서 엄마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면허도 없는 돌팔이 의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엄마는 그 의사가 돌팔이였기 때문에 수술실에서 빛조절을 못했고, 그래서 나는 그 빛을 보았다고.


다섯 살 때부터 안경을 썼다. 유아가 쓰는 안경이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아서 무겁고 큰 안경을 코에 걸치고 다녔다. 그래서일까 내 코가 낮아 보이는 이유가 안경 때문인 것만 같다. 유치원 선생님은 내가 자꾸 눈에 힘을 주어 작게 뜨고 자주 깜빡이니 안과에 데려가보라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내가 아기였을 때 많이 운 이유가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는 왜 더 일찍 내가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그렇게 울고 또 울었는데, 자꾸만 울어서 엄마가 무척 힘들었던 기억을 회상하시곤 했다. 지겹게도 울었다고. 복도식 아파트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울음소리였다고 한다. 우리는 복도 맨 앞집에 살았는데 맨 끝집에 사시는 아주머니가 무슨 일이냐고 놀라 문을 두드리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내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엄마는 큰소리로 울어대는 내가 미웠을까? 20대 중반의 어린 엄마는 나의 울음소리에 앞이 보이지 않았을까? 자라면서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억울함이 내 안에 쌓여 울음으로 폭발될 때가 많았다.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가족이 때로는 적으로 느껴졌다. 엄마와 대화하다 보면 싸움으로 끝이 나곤 했다. 내 안의 억울함으로 인해 엄마의 마음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도 괴로웠겠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 아이 둘을 키우고 내조하며 자신의 꿈을 꾹꾹 눌러 내느라. 그리도 참고 살아온 세월 지나, 편해질 만하니, 남편과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딸로 인해 속이 썩어났을 엄마, 그것을 기억하지 않고 주려는 엄마다.


남편과 싸울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났다. 궁지에 몰리는 듯 느껴질 때, 엄마가 감정이 격해졌을 때 내게 했던 행동과 말이 떠올랐다. 엄마의 마음이 보이지 않았듯이 남편의 마음이 보이지 않았다. 화났을 때 하는 행동이 나를 괴롭게 했다. 엄마는 경제적으로 나에게 많은 보템이 되어주었고,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나를 찾아와 주었는데, 감정의 소통에 있어서는 가로막힌 벽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엄마가 나에게 잘해주려고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깊은 소통을 기대하기보다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한다. 표현은 서툴러도 나를 가장 사랑해 주는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 역시 때로 말과 행동이 거칠게 느껴질 때가 있었고, 그 모습만 보면 두려움이 밀려왔다. 남편과의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글쓰기가 빛처럼 다가왔다.


내 마음을 털어내고 또 털어내었다. 억울한 것이 다 풀리도록 쓰고 또 썼다. 그 마음이 흘려보내졌을 때 가족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의 마음이 내게 다가왔을 때 비로소 남편을 사랑할 수 있었다. 매일 출근하기 위해 힘들어도 일어나 단장을 하고 회사에 가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간혹 남편이 출근할 때 일어나지 못할 때가 있었고, 남편은 서운했는지 자주 화를 냈다. 나는 핸드폰에 알람을 맞추고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을 배웅했다. 남편이 출근준비할 때 물을 갖다 주는 것 외에 하는 것은 없다. 옷을 입고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머리에 왁스를 바르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남편이 외투를 걸치고 가방을 들고 신발을 신고 나갈 때까지 함께 있는다. "갔다 올게"라는 남편의 한마디가 나를 안심시킨다.


남편이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최대한 상을 잘 차리려고 노력한다. 남편이 우리 가정을 위해 애쓰고 있는 만큼 나도 그 정성에 보답하고자 남편의 입맛에 맞게 음식을 만든다. 남편이 내가 만든 음식을 남기지 않고 끝까지 먹는 모습을 보면, 맛있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그것 자체로 고맙고 감사하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남편과의 관계에서 빛을 보고 있다. 내가 애쓰고 사랑하는 만큼 남편도 내 마음을 아는지, 줄곧 쏟아내던 부정적인 말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남편을 위해 열심히 아침에 일어나고 배웅하면서, 자신은 일하는 노예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간혹 잔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책을 출간할 때도, 책에 쓰인 자신의 이야기가 불편하게 느껴지는지 화를 내기도 했지만, 책 속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남편도 아는 듯했다. 우리가 직면해야 할 현실을 책 속에서 마주하며 불편한 감정을 느껴야 했지만, 남편이 보여주는 행동과 말들이 관심의 표현임을 알기에, 그것 조차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넘어갔기 때문에 평온한 현재를 맞이할 수 있었다. 글쓰기라는 빛을 보고, 글쓰기에 집중하느라 남편과 살림에 소홀한 것으로 보일 때도 있었지만, 글쓰기에 여유가 생기면서 살림, 육아와 함께 균형을 맞추어 나갈 수 있었다. 주부로서 - 살림과 육아가 주된 일이기는 하지만 - 나 자신을 잃는 것 같고, 세상 밖으로 나가기에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것 같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때와 달리 지금은 글을 씀으로 나를 완성시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결혼 후 글을 쓸 수 있도록 남편이 도와주었기에, 시간을 돌고 돌아 글쓰기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남편에게 이제는 내가 빛이 되어줄 것이다. 남편에게 그 빛이 조금씩 스며들어 남편의 가슴에서 희망으로 꽃 피워지기를 소망한다.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132343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