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30분. 알람이 울리는 시간이다. 언제부턴가 알람이 울리는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게 됐다. 남편이 출근 준비하고 있을 때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던 때와 다르게 남편이 아직 일어나기 전인, 6시쯤 눈이 떠진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남편이 자고 있는 방으로 향한다. (남편이 숙면을 취하길 원해 남편 방을 따로 만들었다.) 나는 남편옆에 누워 잠시 남편의 온기를 느낀다. 편안함에 눈이 스르르 감긴다. 남편은 어젯밤에 잠들자마자 내가 아이들 방에 갔다며 아이처럼 투정을 부린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아이 같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보다 많이 편해 보인다. 남편에게도 평온함이 찾아온 걸까?
남편과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집안에도 밝은 기운이 돌고 있음을 느낀다. 가정이 따뜻한 울타리라는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남편이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세 딸들과 함께 남편을 맞이한다. 아이들이 문 앞으로 달려가 아빠에게 "다녀오셨어요"라고 큰소리로 인사한다. 남편은 웃으며 아이들의 애칭을 부른다. 평소처럼 나누는 반가운 인사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문을 열까 걱정반 기대반으로 남편의 퇴근시간을 기다렸던 나는 아이들을 보자 환하게 웃는 남편을 보니 그간의 걱정들이 녹아나는 듯 안심이 되었다. 괜한 걱정을 했던가. 휴, 안도의 숨을 속으로 내뱉는다.
결혼 후 출산을 하고 양육을 하며 엄마로서 자신의 가정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내 속에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약한 마음이 있었다. 이루지 못한 꿈과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올 때마다 좌절감이 느껴졌다. 바닥까지 내려간 마음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를 썼다. 언제든 나는 주저앉아 울 수 있었고, 도망칠 수 있었다. 진짜 내 삶을 찾아 떠나고 싶었다.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냉담한 현실 속에서 공허함을 잔뜩 끌어안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마음이 충만해졌다. 엄마이자 아내로서 행복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남편을 사랑하고 감사하게 되었다. 서로 생각이 달라 투닥거릴 때도 있었지만, 남편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반대하거나 말리지 않았고, 불만을 내뱉으면서도 끝까지 지켜봐 주었다. 부부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마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왜 이리 나를 탓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책을 쓰며 나를 돌아보게 되니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문제의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니 가정 안에 평안이 자연스럽게 찾아들었다. 엄마인 내가 아이들을 지키고, 아이들이 나아갈 길을 안내하고 열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자신만의 꿈을 이루려고 발버둥 치기보다 엄마로서의 나 자신을 자각하는 일이 우선인 듯했다. 자녀들이 부모를 보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비로소 나는 엄마로서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언제부터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된 걸까? 속상한 마음을 더 이상 부모님께 털어놓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느낀 순간부터일까? 셋째가 커가면서 나는 남편과 크고 작은 트러블이 생겨도 더 이상 부모님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별일 없냐는 부모님의 물음에 아무 일 없다고 답했다. 속상해도 티 내지 않고 묵묵히 순간을 넘어갔다. 남편의 말이나 행동이 커질 때 마음이 상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남편의 마음을 듣기 위해 노력했다. 나에게 불만이 쌓이고 쌓이면 그것이 거칠게 표출되었던 것이다.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니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남편과 나는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듯 평온과 불안을 오갔다. 잔잔하다가도 큰 파도가 몰려오길 수차례였다. 얼마 전 나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아빠가 이제 화도 많이 안 내고 편안해 보이네. 잘 웃고"라고 말했다. 아이들도 이에 동의하듯 "맞아. 몇 달 된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아빠 엄마 사이가 편안해졌다는 것을 눈치챘나 보다. 부모의 갈등으로 아이들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는 모습이다. 아이들끼리 투닥거리거나, 해야 될 과제가 많아 투정 부릴 뿐이다.
출간 후 시간이 흘러 다시 글을 꾸준히 쓰게 되면서부터 남편에 대한 마음이 편안하고 부드러워졌다. 굴곡 없이 평이하게 마음이 유지되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길어졌다.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가고 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책상 앞에 앉았다. 출간 후 두 달 정도는 쉬고 싶은 마음에 글쓰기를 꾸준히 하지 않았다. 책을 홍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출간한 책에 대한 아쉬움을 내려놓으면서 다시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글쓰기는 나에게 힘을 주고 있었고, 즐거운 일이라는 울림이 오니 매일 글을 쓰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엄마와 아내로서 글을 쓰는 것이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어떤 역할을 갖고 어떤 자리에 있던지 내 마음을 글로 표현하며 상대와 나눌 수 있는 마음이 귀하게 다가왔다. 글이주는 힘을 느꼈다. 내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글로 표현함으로써,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과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었다. 나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올라왔다. 글로 버티었던 때와 다르게 내 업인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글 쓰는 능력을 계발할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과 효용감이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했다.
남편에 대한 마음도 커져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언제든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 가족을 위해 책임 지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어떤 마음 상태이든지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남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내가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하는 것이 고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편도 노력하는 나를 알아주는 듯하다. 나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니 남편이 안심할 수 있었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며 부부로서의 사랑과 행복을 알아가고 있다.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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