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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달팽이

쓰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브런치를 한 지 약 3년이 되었다. 글쓰기 방향과 메시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써 내려가는 것 자체만으로 희열을 느꼈다. 읽고 쓰며 현실과 나 자신은 무관한 듯이 느껴졌다. 생각을 위한 몰입은 꽤 즐거웠고, 사색은 나를 살아있게 했다. 따뜻한 봄에 달팽이를 만나면서부터 내 인생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읽고 쓰는 인생은 변함이 없지만, 영감을 받고 글을 써 내려가는 일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려주었기에, 달팽이란 존재는 내게 빼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당시 나는 초안을 완성하고 책을 구성해 놓은 상태였다. 초보자가 책을 쓰는 과정에 발을 내딛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책을 내기에는 어설프고 부족한 내용이었다. 책 내용이 완전하지 않았지만, 수정하는 것에만 매달리기엔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기에 일단 써야 했다. 책이 하나의 주제로 일정하게 흘러가야 했기에, 중심을 잡아보자는 마음으로 프롤로그를 써보기로 했다.


(프롤로그의 첫 문장은 '아침에 일어나 달팽이의 안부를 챙긴다.'이다.)


프롤로그를 쓰고 지우고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달팽이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달팽이를 데려온 것은 둘째 아이였는데, 되려 내가 더 사랑하고 있었다. 달팽이 집을 청소하고 가꾸는 것이 내 몫이 되어버렸다. 가끔 달팽이들을 집에서 꺼내 베란다 바닥에 두고 물을 흐르게 하여 목욕?을 시켜 주었다. 달팽이 몸에 붙어있던 분술문을 씻겨 내려가게 하면서 내 마음도 정화되는 듯 새로운 마음으로 가득 찼다. 변화 없는 일상에 조금은 색다른 재미가 되었다. 그 작은 생명은 어두워지려는 내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꺼져가는 불씨를 키우듯, 내 마음에 등불이 되어준 작은 달팽이들을 생명의 은인이라 칭하고 싶다.


밖은 너무나도 밝은데 가만히 제자리에 있는 것만 같아 답답했다. 나는 가만히 목욕탕 의자에 앉아 밝은 햇빛이 들어오는 베란다에서 달팽이를 바라보았다. 통 안에서 느릿느릿 기어 다니는 달팽이의 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달팽이를 손등에 올려놓고 가만가만 패각을 만졌다. 어쩐지 나 같다는 생각에 동질감을 느꼈다. 느리더라도 가야만 하는 것이 삶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는 달팽이가 사는 환경을 가꿔주고 싶었다. 통을 깨끗하게 닦고 신선한 상추와 당근, 오이를 올려놓았다. 분필이 달팽이의 좋은 영양제가 된다는 블로그 속의 글을 읽고, 집 근처 문구점에서 분필을 사 와 통 안에 넣었다. 달팽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다 달팽이 패각 속에 기어 다니는 아주 작은 벌레를 보게 되었다. 응애 벌레. 이 벌레를 없애기 위해 달팽이용 벌레 퇴치제를 구매해 매일같이 뿌려주었지만, 한 번 생긴 벌레를 없애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날은 더웠고, 달팽이들도 지쳐가는 듯했다.


봄에 온 달팽이들은 한여름이 되어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갔다.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통 안을 씻어내고 신선한 채소를 주고 영양제도 뿌려주어 봤지만, 자연에서 데려온 달팽이들을 애완 달팽이처럼 집에서 키우기란 어려웠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 노력했지만 생명을 연장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 글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느리지만 조금씩 가면 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갔으니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 후 내 브런치 작가명은 봄날의 달팽이가 되었다.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기억에 남아 내 마음을 울린다.


그 이후 써지는 모든 글들이 수월하게 넘어갔다. 쓱쓱 써나갔다. 덕분에 프롤로그도 완성했다. 느리지만 힘이 있었다. 내 마음에 강단이 생겼다. 굳세고 단단한 마음이 느껴졌다. 무더운 여름 달팽이들을 보내고 출판사와 계약하게 되었다. 초보작가이자 출판에 대한 지식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내가 책 쓰기 교육원과 인연 맺은 출판사와 초고속으로 계약하게 된 것이다. 전적으로 교육원 대표님을 믿은 것이다.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후회는 없다. 방법이 여러 가지 있기 때문에 선택은 자신의 몫일뿐이다. 끝까지 책임질 자신만 있으면 된다. 출판의 과정에서 약간의 충돌과 걸림돌이 있었지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의 기준에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에 맡길 뿐이다. 지나고 나니 시간이 약이었음을 깨닫는다.


남편과 나 사이도 느리지만 조금씩 서로에게 사랑과 신뢰로 물들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결혼생활 10년이 넘었어도 지금껏 신뢰를 찾고 있는 우리가 아직도 서로에게 익숙해지려 하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서툴러 보일지라도, 서로를 놓지 않고 있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 사이에 희망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라는 이름을 놓지 않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유는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불가하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이유를 찾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긴 시간이 흘러 찾은 마음의 해답이다. 서로의 사랑이 변치 않는다면 나는 이 믿음을 놓지 않고 느리더라도 갈 것이다.

영감을 주고 떠난, 작년 봄에 만났던 작은 달팽이들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13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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