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아이들 방학이 어느덧 20일을 넘겼다. 늦잠 자는 아이들 덕분에 일찍 일어나 식사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셋째가 어린이집 갈 시간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남편이 출근한 후 다시 이불 속에 들어가 셋째의 온기를 느끼며 잠이 들었다. 한 시간이 지나서 눈이 떠진 나는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입은 후 냉장고 속에 있던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쩐지 느긋했던 나는 순조롭지 못한 등원과정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샌드위치를 마저 먹었다.
아이의 징징대는 소리가 들려 방 쪽을 쳐다보는데 아이가 방을 나와 주저앉아 있었다. 일찍 깨우지 않았다며 짜증을 부렸다. 그런 아이를 달랠 새도 없이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고 재촉했다. 내일 어린이집에서 뽀로로 만화 영화를 보러 가는데 오늘 어린이집에 간 사람만 갈 수 있다고 말해보지만 이미 기분이 안 좋은 아이에게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 옷 입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도톰한 내복을 벗기고 기모가 든 바지로 갈아입히려니 간신히 벗겨 놓은 내복바지를 다시 입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창밖을 보는데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아이에게 눈 구경 하며 가자고 설득해 보아도 소용이 없자 자고 있는 두 아이를 깨워 눈을 보러 가자고 큰소리로 말했다.
간신히 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세수를 시킨 후 잠바를 입혔다. 둘째 아이가 신던 캐릭터 부츠를 보여주니 신발에서 불빛이 나오는지 확인하려고 바닥에 쿵쿵 내리쳤다. 그런 아이에게 다시 사주겠다고 약속한 후 신발을 신겨 밖으로 나왔다. 하얀 눈 덕분에 아이의 기분이 금방 풀리는 듯했다. 아침부터 화를 내 미안한 마음도 잠시 친구들에게 줄 간식을 사겠다며 슈퍼로 향했다. 아이는 어떤 것으로든 화난 기분을 보상받고 싶은 듯 딱 하나만은 마음대로 하고 싶어 했다. 결국 마이쮸를 집어 들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돌아온 집에서 두 아이의 아침식사를 챙기고 이불을 탁탁 털어 개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빛에 나풀거리는 먼지가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문득 나의 미래도 그러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먼지와 함께 날아올랐다. 아침에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가 유난히도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설레는 감정으로 마음이 일렁거렸다. 새 아침 새 하루가 되었다는 느낌이 유독 선명하게 다가왔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일지라도 마음가짐에 따라 그날의 상황을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또 다른 변화를 꿈꾸는 나는 매일이 똑같은 하루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새로운 글이 써지기를 기대한다. 집이 아닌 곳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꿈을 꾼다. 꿈이 있지만 실천이 어려운 사람이나 일상생활에 자극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되고 싶다.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한다. '구체적인 계획을 실천해 가는 오늘이 다가올 내일을 결정짓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변화를 꿈꾸는 이유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부모의 영향권 내에 산다. 어른이 되어 독립을 하고 결혼하여 나만의 가정을 꾸려도 언뜻 나의 태도와 말에서 부모의 모습을 발견한다. 평소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마음이 급할 땐 아이의 마음을 고려하지 못한 말이 나온다. 시간이 여유로울 땐 아이를 꼭 안아주며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알아주고 달래준 뒤 천천히 등원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할 땐 가야만 한다고 언성을 높인다. 겨우 아이를 업고 어린이집으로 간다. 화를 내면 아이도 울고 내 마음도 속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뱉어내는 말들이 바늘이 되어 아이에게 꽂히고 만다.
아이를 보내고 뒤돌아서면 후회를 한다. 또 화를 내고야 말았다는 자책을 해보지만 흘린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신경을 건드리는 상황에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화를 내셨던 부모님의 모습이 나에게 보였고,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본능적으로 틔어 나오는 말들을 막아내기 어려웠다. 진짜 마음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내뱉어 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들도 먼 훗날 자녀를 키울 때 나와 똑같은 말과 행동을 보인다면, 이것 또한 내 자녀들에게 부정적인 습관을 대물림해 주는 것이라 생각되어 나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채워지지 않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자기 계발의 시간을 확보하고자 함이었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을 생각하니 촉박하게 느껴졌고 얼른 아이들을 보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순간적으로 부족한 내 모습이 떠오르고 내 안에 있는 불안이 튀어나온다. 학생으로서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공부가 이제야 절실해졌고, 뒤늦게 깨달은 공부의 이유는 자꾸만 나를 책상 앞으로 보내었다. 지금 당장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진 나는 아이를 등원시키고자 어떻게든 애를 썼다.
가정이나 주변에서 느껴지는 사사로운 감정들에서 벗어나고자 글쓰기에 몰두했다. 결국 답은 내 안에 있었고 나 자신이 변함으로 인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엄마 자신을 위해 공부하고 성취해 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을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는 엄마가 될지 선택하고 결정하고자 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유일하게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생각이자 태도였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변화를 원하고 있을까? 어떻게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삶의 태도는 어떤 사람이든 상대의 탓을 하지 않는 것이다. 타인을 통한 기대나 만족이 아닌 스스로 채워가는 삶을 꿈꾼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갖춘 사회인이 되는 것이다. 마인드(생각이나 사고방식)의 변화가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이끌어줄 거라고 믿는다.
태도의 변화는 곧 성공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줄곧 성공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데,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세 가지의 변화가 있었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일 테지만 이를 작가의 시선으로 해석해 보았으니, 이를 읽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적용해 보길 바란다.
TIME, PLACE, PERSON. 시간, 장소, 사람. 이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어린 자녀를 둔 나로서는 생활반경이 똑같거나 넓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이 세 가지를 바꿀 수 있을까 고민했다. 반복적으로 가는 장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자유로워야 할 듯하다. 성공하려면 성공한 사람 옆에서 배워야 하기에 성공한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 가야 하고 그 사람들에게 맞추어야 한다는 말인 것 같지만, 나는 특정한 사람들에서 나 자신으로 바꾸어 보았다.
첫 번째, 시간의 변화이다.
시간의 변화는 내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예를 들어 엄마인 나는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무얼 할 것인가, 만약 엄마들을 만나 카페에서 모임을 갖거나 혹은 집에서 주로 청소를 한다면 그 시간에 다른 일로 변화를 줄 수 있다. 전업주부로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될 때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시간의 변화란 늘 하던일을 다른 시간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일이나 반복된 일을 하던 그 시간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 판단하여, 자신의 발전과 성장을 위한 일과 시간으로 바꿔 보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아무도 없고 방해도 없는 오전시간에 글을 쓰기로 결정했고, 세 시간 이상 엉덩이 붙이고 글을 쓴다.
(방학이라 아이들이 집에 있지만, 주로 아이들이 학원을 간 시간을 이용한다. 혹은 아이들 각자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가 절호의 기회이다.)
두 번째, 장소의 변화이다.
장소는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것 또한 내가 결정한다. 내 방 컴퓨터 앞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보통 장소, 하면 사람을 만나는 곳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내가 생각하는 장소이다. (카페가 최적의 장소인 사람도 있다. 각자가 생각하는 장소를 떠올리면 된다.)
한참 글쓰기에 몰두하다 관계가 그리웠을 때가 있었다. 서툴지만 관계를 위해 노력했고, 마음을 다했다. 그에 비해 돌아오는 마음이 불편하고 내 시간마저 빼앗긴다는 생각이 들 때 관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다. 아쉬움은 그대로 두고 다시 글쓰기에 몰두했다. 내 방에서. 만약 TV가 있는 거실이 주로 내가 있는 곳이라면 책상이 있는 방 혹은 노트북을 올려놓고 쓰거나 책을 올려놓을 수 있는 식탁이 있는 부엌을 자기계발의 장소로 변화를 주면 어떨까?
세 번째, 사람이다.
만나는 사람은 어떻게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이것 또한 내가 결정한다. 흘러가는 대로 만나지는 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을 먼저 생각한다. 글을 쓰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의미 없는 대화는 지금 나에게 우선순위가 아니기에 오로지 나 혼자 글을 쓰며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관계를 싫어해서도 어려워서도 아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은 글쓰기이고,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나는 지금 나를 만나는 중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할지는 스스로의 선택이자 결정이다. 그것을 어떻게 움직이고 조정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달라짐을 믿는다. 부모에게서 이어져 왔던 생각이나 삶의 태도가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과감히 변화를 주면 어떨까? 내일이 똑같은 오늘이 아닌 새로운 하루가 될 것이다.
작가님들께 ⸜❤︎⸝
관계가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하니 변화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 관계를 마주하며 굉장히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지만 피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관계를 밀어내었던 저 자신을 반성하고, 절대로 상대를 내 마음대로 판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원하는 마음의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사람을 존재케 하는 이유라면 미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부정적인 마음으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어쩌면 그 마음이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오직 글쓰기였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 좀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가만히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로 글을 쓰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이 되어감을 느꼈습니다. 그 소스는 바로 내 안에 있었습니다.
내 마음의 불편함과 욕구를 따라가다 보니 보편적인 삶의 태도와 사람들의 요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 마음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여줄 때 살아있는 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글을 쓰며 저의 인생을 풀어나갈 것입니다. 온전한 제 자신이 되고,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진실로 나 자신과 마주할 때 성공의 문 앞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 어떤 마음과 마주하시겠습니까?
작가님들께 행복에너지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족 안에서 흔들릴 때
그런 나를 감싸 안으며
나 자신을 토닥였습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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