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존재이유라면

가족의 마음

나는 어머니의 말을 참 좋아한다. 상대를 높이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말이 한없이 다정하고 애틋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나온 세월의 고단함과 혼자 견뎌왔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어머니 자신보다 가족들을 위해 살아왔던 날들에 '고생했다, 네가 우리 가족에게 시집와서 참 든든하고 좋았다',라는 위로의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 들려왔다. 밥을 먹을 때나 차를 탈 때나 고마움을 잊지 않고 말씀하신다. 어머니가 밥을 사주실 때도 밥을 차려주실 때도 '덕분에 잘 먹었다.'라고 하시고, 아들의 차를 타게 될 때는 '운전하느라 고생했다, 태워줘서 고마워'라고 하신다.


표현이 서투르고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단순한 그 한마디를 내뱉기가 어려웠다. 부모님께 해드려야 하는 사람은 자녀인 우리들인데 받기만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그런 나를 이해해 주시고 받아주신 것처럼 어머니의 삶은 모든 걸 포용하고 참고 살아왔던 시간들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그 긴 날들을 지나오셨던 걸까. 인내하며 버텨오셨던 어머니의 시간이 보상받는 날들로 이어지길 바랐다. 말로 표현은 못하지만 그런 부모님의 마음과 애씀을 알고 있는 남편은 부단히 부모님 댁과 농장을 오가며 사소한 것까지 챙기고 살핀다.


남편이 때로는 거칠고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고 잔소리에 머리가 아파올 때도 있지만, 부모님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만은 최고라고 생각한다. 남편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참고 이해하며 넘어가려는 내 마음을 어머니는 다 아신다는 듯 챙겨주시고 받아주신다. 늘 그자리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신다. 가족을 하나로 아우르게 하는 어머니의 지혜가 느껴졌다. 남편과 내가 우여곡절을 겪고 극복해 나오며 모난 돌이 둥그러질 때까지 참고 기다려오셨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시댁 가족과 떨어져 지낸 2년이란 시간, 그 후에도 어머니는 나를 원망도 탓도 하지 않으셨다. 기다리고 계셨다는 듯 원래 자리로 돌아온 나를 토닥여주셨다. 그동안 자식을 향한 어떤 마음의 고통이 있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철없고 이기적인 나 자신만이 보일 뿐이었다.


남편 또한 가정을 놓을 수 없었기에 밉고 또 미워도 다시 나를 찾아왔다. 말로는 다 못할 사연이 우리에게 있었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데 지금까지 먹어온 나이 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부모님의 영향이 물론 있었고, 그 사실도 부정할 수만은 없었다. 다만 남편과의 사이에서 지혜를 발휘하지 못한 어리숙했던 내가 있었을 뿐이다. 남편 또한 어릴 적 부모님에게서 충족되지 못한 사랑이 있었고, 남편의 마음을 자리잡지 못하게 한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 아들 중 첫째 아들인 남편과 시부모님 사이에서 풀어야만 하는 과제들이 있었고,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남편과 나에게 있었음을 알게 됐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시부모님 댁에 자주 가게 된 이유가 남편과 부모님의 관계를 더욱 더 돈독히 하기 위함이었다는 울림이 왔다. 부모님과 아들이 함께 하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드리는 사랑이 부족할지 언정 남편만큼은 부모님으로부터 만족할 만큼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바랐다.


남편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서운함도 없고,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부부사이의 문제는 당사자들만의 이유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원가족 안에서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을 결혼 후에도 끌고 들어와 배우자로부터 그 욕구를 채우려하니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익숙했던 원가족 안에서의 환경을 복사해 자신의 가정에 붙여넣기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장남인 남편은 부모님을 도와드리는 것이 익숙했고, 맏며느리로서 맏이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길 바랐지만, 둘째로 태어난 나는 첫째의 마음을 잘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며 큰 며느리로서의 남편의 기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다 충족시킬 수 있는 자신은 없었지만, 가족과 함께한다는 마음 하나로 가족의 일원으로 그 자리를 지켜왔다.

장남인 남편은 누구보다도 책임감이 강하고 부모님을 향한 마음이 크고 넓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사랑의 할당량이 있다면 그것을 반드시 채워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것을 이제야 다 눌러 담아 넘치도록 뚜껑도 덮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린 듯하다. 물이 끓어 넘쳐흐르는 것처럼 사랑도 흘러내렸다. 한도초과의 달달함이 느껴졌다. 손주들이 채워주는 사랑이 가족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 주었다. 어머니의 따뜻한 말들이 어머니에게로 돌아와 감싸 안아주었다.



그날도 역시 가족은 함께였다. 선명한 노란색이 유난히도 아름답던 밤, 달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남편의 외사촌 결혼식이 있던 날 어둑해진 밤을 달리던 중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30분을 더 돌고 돌았다. 시부모님과 함께인 차 안에서 3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으로 가는 마지막 요금소를 빠져나오기까지 약간은 좁고 불편한 상태였지만 밤거리의 반짝임과 추억에 대한 여운이 남아 마음만은 몽글했다. 남편이 태어나기도 전 심지어 시부모님도 서로를 모르던 시절 각자가 살아왔던 서울 동네를 돌며 40여 년 전의 기억을 꺼내 더듬으셨다.


"집에 가는 길에 서울구경시켜 줘서 고마워"


어머니는 아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분위기에 젖은 듯 창가를 바라보셨다. 차 안으로 들어오는 서울의 밤하늘과 빌딩이 늘어선 풍경은 절묘히 어울렸고 마치 우리가 있는 이곳이 우리만의 작은 섬처럼 느껴졌다. 새삼스레 새롭게 느껴진 건 가족이 함께여서일까, 무수한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의 아이들의 아이들까지 함께인 순간이 벅찼던 것일까, 어머니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수많은 감정과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올해 열세 살이 되는 딸아이보다 조금 더 컸을 때 오가셨다던 종로거리는 밤이 되어 더욱 빛이 났다. 어둑한 밤을 지키는 건물과 간판의 불빛들이 마음을 간질였고 애잔하게 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린 날들 속에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느라 고되게 일을 하던 젊은 시절의 어머니 모습이 그려졌다. 녹록지만은 않았던 그 시절, 당당하고 밝고 유쾌했을 스무 살이 가까워져 오는 한 소녀가 대낮의 종로거리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머니의 청춘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그 거리를 상상하니 애처로웠다. 명랑하고 자신감 넘치는 어머니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니 이렇게도 빨리 시간이 흐를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고되었던 시간을 보상받기를 바라는 딸의 마음을 어머니 마음에 살포시 얹어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그 옆에는 훌쩍 자란 첫째 손녀가 코를 훌쩍이며 의자에 기대 있었다. 감기로 고생 중인 아이가 안쓰러우셨던 걸까, 아이의 손을 잡고 쓰다듬으셨다.


"아픈걸 혼자 감당하는 걸 보니 다 컸구나"


코막힘으로 힘들어하는 딸아이를 보며 혼자 감당하고, 있다고 하셨다. 혼자 감당, 하고 있다는 말에 어머니가 그러하셨다는 것을 짐작했다. 모든 말속에 어머니가 살아왔던 날들이 살아 숨죽이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인 삶이었지만 그 속엔 홀로 감당해 왔던 마음들이 있었다는 걸. 어머니의 지난 세월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를 어떤 동질감이 느껴졌고, 힘듦의 크기는 그에 비할바도 아니겠지만, 어쩐지 어머니의 마음속에 들어가 지나왔던 시간 속의 어머니를 만나 위로하고만 싶었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나 시부모님을 모시면서도 열심히 농사일을 하고 돌아와 집안일을 하고 저녁밥을 지었을 어머니에게 따뜻한 빛으로 존재해 힘들어도 마음만은 외롭지 않게 해 드렸다면 어땠을까. 조금은 덜 힘들고 덜 외로웠을까.


어떤 이는 당연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이는 바로 남편이다. 그 속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딸로서 여자로서 느끼는 마음은 결이 다른 감정의 세계이지 않을까. 어머니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며느리로서 해왔던 일은 역할을 가진 사람으로서 해내야 할 역량과도 같은 거라고 생각했을까. 이래서 아들과 딸은 다르다는 걸까? 딸 같은 살가운 아들도 있겠지만 나의 남편은 그와 좀 먼 듯하다. 부모의 요청에 바로 달려가고 사소하게 챙기는 늘 옆에 있을 것만 같은 아들이지만 말만은 그러하지 못했다. 일명 잔소리꾼. 옳은 말인지는 알지만 상대를 위한 말인지 혼을 내는 것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안에도 사랑이 있다는 것.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얼룩이나 흔적이 나만 보이는 것처럼 남편의 말도 자세히 살펴보아야 했다. 매의 눈으로 면밀히 지켜보면 그 말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마음을 알아보지 못하게 획 지나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였고 두 번째로는 아내인 나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지. 눈치 없이.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다. 이에 나는 말 안 하면 모른다고 일축한다. '원하는 걸 분명히 말해줘. 그리고 수고했다. 고생했다.라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알아차리고 행동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모든 걸 다 알 수도 챙길 수도 없어. 그러니 상대방 마음도 이해해 줘.'라고 말한다. 어쩌면 어머니는 이 말 조차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모든 걸 혼자 감당하려 하셨을까. 내가 하는 편이 더 빠르고. 그래야 핀잔을 듣지 않으니까.


내게 부족한 부분을 다 가지고 계신 어머니. 드시고 싶은 거 있냐는 물음에 네가 먹고 싶은 거 사와,라고 하시는 어머니. 코가 막혀 뒤척이는 딸과 주무시느라 같이 깨어 힘드셨겠다는 나의 말에 아니야 괜찮아,라고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시는 어머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지금을 소중히 여기시기에 힘든 것도 힘들지 않게 느끼시는 건 아닐까. 그저 옆에 누워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이 예쁘고 감기에 걸린 손녀에게 약을 먹이고 보살펴 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계실 거라고. 그 아이들이 남편과 나를 이어주고 부모님과의 연결을 단단히 하는 다리와 같기에. 지금 힘든 건 그동안 버텨온 세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어머니의 말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드려야 할 때가 오겠지. 내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건 그런 거다. 주면 돌아오는 것. 어머니가 기쁘고 행복한 건 어머니가 나누어 준 사랑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임을.




책을 내며 친정 부모님과 공감대를 이룰 수 있었다. 진짜 자기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김미경, 김창옥 강사처럼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가 청중들에게 공감이 되어 더욱 진실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 아빠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이나 드라마를 쓰라고 하셨던 엄마는 아빠와 나의 이야기에 수긍하시지는 않는 것 같았다. 엄마가 말하는 소설이란 작가의 이야기가 아닌 만들어진 스토리를 의미하는 듯했다. 글이란 것이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것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신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엄마는 사람들로부터 관계 맺는 것에 경계를 쳐왔기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무섭고 두려운 일이라 여겼을 것 같다.


시댁과 친정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에서부터 시부모님과 다르다는 것을 느껴왔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려 할 때마다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과 거리감 없이 다가가시는 시어머니 덕분이었고,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일가친척이 다 모이는 시댁 덕분이었다. 불편한 관계에서 떨어져 혼자임을 자처하는 친정부모님을 뵐 때마다 이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점점 그 분위기가 낯설어졌고, 딸인 나조차도 부모님 댁에 쉽게 드나들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의 온기로 따뜻함이 느껴지는 시댁이 이상하게 더 편하게 느껴졌다. 기대 쉴 수 있는 곳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의 경험과 느낌이 더욱 굳어지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관계를 멀리하는 것만큼은 닮고 싶지 않았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다 해도 좋은 사람들은 분명히 있고, 그들로 인해 이 세상이 존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보다, 자신에게 피해가 되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부모님이셨다. 그렇기에 친정만 가면 외딴섬이 되어 입을 꾹 다물게 된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요구하고 생각하는 대로 커왔던 언니와 달리 섞이지 못한 감정이 있었고, 또 다른 마음의 세계에서 외로움을 느껴야 했다. 나도 모르게 사람을 밀쳐내려고 할 때마다 내가 또 관계를 밀어냈구나 하는 생각에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를 한다. 자꾸만 내 기준에서 사람을 평가하고 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다. 그 사실을 알기에 나 자신을 알아차린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다시 내 마음을 세팅한다.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따뜻함을 느낄 수 없고 풍성하고 풍요로운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 간에 오가는 마음의 온기와 정은 내 마음을 따스하게 물들였다. 주는 것이 사랑이었고, 사랑할 때 나 또한 사랑받고 있었다. 더욱 사랑하는 따뜻한 겨울이 되길.



작가님들께 ⸜❤︎⸝‍


코로나 시기에 자주 접했던 캠페인 속 문구가 기억납니다. '덕분에'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어야만 했을 때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하는 응원의 말이었습니다. 저는 작가님들 덕분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꺼이 시간을 내어 읽어주시고 가끔은 댓글로 응원을 보내주시는 작가님들이 있어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무한히 감사를 표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의 깊이를 지닌 작가가 되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만큼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성숙한 사람으로 지혜를 발휘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내 마음을 터놓기 바빴던 제가 시선을 상대에게로 돌리면서 공감과 회복, 성장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존재한다는 것을요. 사회가 정의를 찾으려 하고 한마음으로 어려운 이들을 돕고 옹호하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 덕분에 아직까지도 마음에 온기를 갖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조금 더 웃어주고 밝은 마음으로 상대에게 다가갈 때 내 마음도 편안하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느낍니다. 마음으로 느껴지는 따뜻함은 물질적인 풍요와는 다른 행복감이었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고 다가가느냐에 따라 그날의 기분과 감정이 결정됩니다. 내가 가진 과업도 내가 가진 그 어떤 것도 모두 다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안정감이 드는 건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작가님들께 행복에너지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족 안에서 흔들릴 때

그런 나를 감싸 안으며

나 자신을 토닥였습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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