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을 받은 첫째 아이의 안부만을 묻는 부모님의 전화에 둘째 아이가 신경 쓰였다. 한창 등교준비 중인 아침시간에 걸려온 아빠의 전화에 왜 전화했는지 알 것 같았다. "상 받은 거 축하해. 학교 잘 다녀와"
첫째 아이의 이름만을 부르며 학교 잘 갔다 오라는 부모님의 인사에 둘째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셋째의 유치원 등원까지 겹쳐 손이 바빠 스피커 폰으로 해놓았더니, 온통 거슬리는 말들 뿐이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들 모두가 공평하게 사랑이 나누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데, 친정부모님이 결과만을 놓고 한 아이에게만 칭찬을 해줄 땐 뿌듯함을 느끼기보다 둘째가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까 할아버지 할머니가 언니한테만 학교 잘 갔다 오라고 해서 서운하지 않았어?"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기 전 둘째를 안으며 물어보았다. "아니"라고 웃으며 말하는 둘째에게 왜 안 서운해~라고 말하며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한결 마음이 풀어져 보이는 둘째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닫히기 전까지 손을 흔드는 두 아이에게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오늘도 시작이다,라는 마음과 함께 유치원에서 긴 시간 떨어져 있을 셋째를 생각하며 나 자신도 스스로 잘 해낼 것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둘째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나는 어리광 부리는 아이가 귀찮게 느껴져 안아달라는 요청에 엄마 바빠,라고 핑계를 대며 피하기도 했지만 그 마음을 모른척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아주 잠깐의 고민 후 아이를 안아주고 뽀뽀해 주었다. 세 아이 중 둘째로 태어나 사랑의 감소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아이를 어루만지고 칭찬해 주려고 노력한다. 매번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샌가 아이에게 등을 돌리는 듯한 내가 보일 때 이래선 안된다는 찰나의 생각으로 다시 아이를 마주 본다. 둘째인 어린 나를 보듬는다.
불필요한 대물림이 내 아이에게까지 이어져 아이의 인생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친정엄마에게서 느껴지는 아이로부터 돌아서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불현듯 느껴지는 엄마의 차가움이 나 자신에게서 느껴질 때 흠칫 놀라곤 했다. 언제나 친절하고 따뜻함만을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쩌다 한 번씩 관계로부터 멀어지려 하는 나를 볼 때마다 아쉬움이 들었다. 관계를 맺는 방식마저도 닮아가려 할 때 내 손을 탁 때리며 정신 차려야지!라고 말한다. 지금은 많이 흘려보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친정가족들이 모두 모일 때 언니와 엄마 사이에 낀 나를 부정할 수만은 없었다.
첫째 아이와 대화를 할 땐 그 모습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어린 내가 보였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엄마와 언니로부터 멀어지려 걸음을 늦추거나 멈추었다.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아 소파에 드러누워 버리거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친정에서 머물게 되더라도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이들의 공부가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잘한 것만을 가지고 칭찬할 땐 거북한 마음이 올라온다. 첫째 아이를 이뻐하고 칭찬할 때 기쁜 마음보다는 '첫째'에 대한 부모님의 트라우마가 부모님의 인생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움마저 들었다.
나여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여서가 아니라, '첫째'라는 순서가 지닌 의미가 부모님에게는 큰 상처이자 보상의 기쁨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첫째인 아빠와 막내인 엄마가 만나 공통분모가 이루어졌고, 어쩌면 그것이 삶의 전부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첫째였지만 첫째 대접을 받지 못한 아빠와 이모와 삼촌 뒤로 맨 꼴찌로 태어나 제대로 사랑과 혜택을 받지 못한 엄마의 서러움이 자녀인 우리를 통해 발현되고 있음을 느낀다. 어릴 적 상처는 나이가 들어서도 손주들이 커가도 해결되지 않는 미완성 과제임을.
부모님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하며 원하는 대로 탄탄대로의 길을 걸은 언니, 그리고 매번 상이라는 결과물을 받아오는 첫째 아이. 이 둘이 겹쳐지며 '첫째'라는 타이틀이 주는 위압감을 느끼고 한 발짝 물러서는 내가 보였다. 내 형제고, 내 자녀인데 뒤로 물러서게 되는 이유는, 둘째로써 느꼈던 부모의 무심함이 이토록 나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물심양면 나를 도와주셨던 부모님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덤덤하지 못한 건 그것을 극복해내지 못했다는 증거일까. 내가 관계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가족 안에서의 경험이다.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가 컸고, 관계를 찾아내었지만 이미 형성되어 버린 앞의 관계가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서로 눈인사만 주고받던 엄마들과 아이들 덕분에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섞이지 못하는 감정들이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어디서부터 맺고 끊어야 하는지를 모르고 계속 이어온 관계가 과부하 되어 결국 터져버리고야 말았다. 관계로부터 얻어내고 싶었던 내 마음이 보였고 상대의 마음까지도 동화시키려 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놓아버리고야 말았다. 이상하게도 가까워지려 하면 할수록 내 형제와 주고받지 못했던 정을 보상받으려 했다. 나누고 싶고 돌려받고 싶은 마음이 실망으로 이어졌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언니가 되어주었으면 했고, 나보다 나이가 어리면 동생으로 대하고 싶었다. 어느 순간 관계를 놓아버리는 것이 부모님을 연상케 했다. 자신에게 침해가 되고 불편함을 일으켰을 때 극도로 신경질이 나 어서 가라는 신호를 보내는 부모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또한 정도나 상황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해야 되는 것이 우선이 되었을 때는 더 이상 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어떤 설명도 없이 상대를 피해버렸다. 부끄럽지만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 안에는 '첫째'라는 타이틀을 지니지 못한 내가 그 상황을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잘 되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있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 뒤에는 글을 쓰게 만드는 이유와 욕구가 숨바꼭질을 하듯 얼굴을 내밀다 숨다를 반복했다. 그것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검열을 하게 만들었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더 솔직하지 못한 내가 그곳에 끼인 듯 끼지 않은 듯 어중간하게 서 있었다. 최대한 솔직하지 않으려는 내가 그곳에 있었고 과정 되게 내 의견을 펼쳐 보이다 입을 곧장 다물어버렸다.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지만 무얼 물어보아야 할지 모르는 부모님이 내 앞에 있었다.
자신만의 기준이 대화의 물꼬를 트이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벽이었다. 부모라면 자식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부모마저도 결국 사람이었기에 자신을 알지 않고는 결코 나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야 말았다. 부모가 되어서야 알게 된 현실 속 모습들이 이제는 내 현가족을 챙기며 살아야 한다는 마음속 신호를 알아차리게 했다. 더욱 의지하고 챙기며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언니가 직장 내에서 성과를 내거나 외부에서 상을 받아오면 나는 알지 못했다. 표창만큼의 큰 상을 받았을 때조차도 부모님은 나에게 알리지 않았다. 어쩌다 발견한 아빠의 핸드폰 속 사진으로 알게 되었다. 부모님은 굉장히 자랑스러웠지만 나에게만큼 쉬쉬하려 했다. 언니가 집을 샀을 때도, 그 집을 우연하게 같이 보러 갔을 때도 부모님은 알리지 않으려 했지만 의식하지도 못하고 자연스럽게 같이 부동산에 가고 집 구경을 했다. 친정에서는 모른 척해야만 하는 것들이 많았고, 때문에 가족들이 왜 좋은 소식을 같이 나눌 수 없는 가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
첫째 아이가 대회에 나가 트로피를 받아온 주말, 아이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둘째 아이의 눈치가 보였다. 둘째도 언니의 수상을 좋아하면서도 서운한 눈치였다. 시어머니에게 영상통화로 이 소식을 전하며 둘째도 자신이 그린 그림을 카메라로 담아 할머니에게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누구 하나 비교되지 않게 똑같이 반응을 해주었다. 첫째 아이가 상장과 트로피를 챙길 때 둘째 아이는 할머니에게 줄 그림을 손에 들었다. 시댁에 간 날 두 아이는 할머니에게 상장과 트로피, 그리고 그림을 안겨드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뒤편에서 상황들을 지켜보았다. 상 받은 기념으로 같이 치킨을 먹었다. 둘째는 치킨도 먹고 할머니 김치찌개도 야무지게 밥과 함께 먹었다.
어머니는 맛있게 밥을 먹는 둘째 옆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셨다.
"아이고, 애기처럼 다 흘리고 먹어" 결코 그 말이 과하게 들리지 않았다. 아이가 흘린 밥풀들을 주우며 제일 잘 먹지,라고 하셨다.
"복스럽게 잘 먹어" 아이들의 증조할머니 되시는 시할머니는 그런 증손녀를 웃으며 바라보셨다.
'할머니, 내가 제일 잘 먹지? 세상에서 할머니 음식이 제일 맛있어.'라는 아이의 마음속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어머니는 "덕분에 치킨 잘 먹었다. 다음에 또 타와, 같이 맛있는 거 먹게"라고 하셨다. 그리곤 시아버지께 "상 타왔는데 용돈 좀 줘요"라고 하셨고, 첫째 아이는 용돈 5만 원을 거머쥐었다. 다음 날 시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용돈으로 똑같이 만원을 주셨다. 상 타온 아이만 주목이 되지 않았다. 하하 호호 맛있게 같이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눠 먹었다.
둘째와 셋째는 할머니가 나물을 다듬는 동안 옆에서 참견하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갔다. 아이들은 할머니 옆에서 잠이 들 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구 하나 서운해하지 않고 같이 시간을 나누는 데에 어머니만의 지혜가 있었던 것일까? 기쁜 소식을 같이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친정에서 느끼는 소외감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느낄 수 있는 따뜻함과 사랑을 시댁에서 보상받는 날이었다.
내가 시댁에서 느끼는 이 감정마저도 친정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얼까?
"동생을 잘 챙겨야 해"
엄마는 언니에게, 나는 첫째 아이에게 줄곧 하는 말이다. 생일이면 용돈을 보내오는 언니 뒤에는 부모님이 계시다. 최소한의 관계유지를 위한 방법이 라는걸 알지만 그래도 받고야 마는 나다. 반대로 언니를 챙겨라 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친정식구들에게 잘 챙기지 못해도 언니만큼은 그래도 가족이기에 챙기라고 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멀어지려고 해도 나를 다시 붙잡아 오셨다. 같이 즐겁고 행복하기 위한 것보다 '가족'이라는 이름과 소속을 유지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마다 자매지간에 잘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서로 어려운 것도 나눌 수 있고 기쁜 것도 함께 나누며 이보다도 더 가깝고 좋은 관계가 없다고. 첫째가 잘 살아야 한다고 하는 친정부모님의 말속에는 그것이 권위로 들려왔고, 나는 좋은데 딱하고 불쌍하다는 말을 아빠에게 많이 들어왔다. 첫째와 둘째의 상황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보려고 하는 아빠의 내면의 상처가 보이는 듯했다. 반대로 나는 첫째 둘째 셋째 모두 자신만의 삶을 잘 가꿔가길 바란다. 위축되어 보이는 둘째가 외향적인 첫째와 달리 안쓰럽게 느껴지던 때도 있었지만, 둘째를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하면서 둘째에 대한 내 마음이 변해가고 있었다.
부모로 이어져 오는 생각을 끊어내고 싶었다. 그래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원가족으로부터 정신적 독립이 되었고, 현가족 안에서 남편과 내가 똘똘 뭉쳐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과 가까워지면 질수록 친정과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오히려 나 자신이 바로서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반가웠다. 내 부모님을 존경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마음은 아팠지만, 그럴 때일수록 내가 내 자녀들에게 어떤 부모로 다가갈 것인가에 게 대해 더 몰두하고 고민했다. 아이들 또한 시댁과 더 마음이 가까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친정부모님에 대한 서운함 보다 안타까움이 더 커져갔다.
같이 밥을 먹고 한 공간에서 TV를 보는 단순한 일상이, 함께인 것만으로도 따뜻함이 느껴진다. 시부모님 밭에서 밥을 먹고 난 후 냉이 된장찌개가 맛있다는 나의 한마디에 어머니는 "가져갈래?"라고 하시며 찌개를 새로 끓여 담아주셨다. 시아버지가 제주도에서 사 오신 오메기떡을 잘 먹자 가져가라고 하신다. 챙겨주시는 것이 일상이고 큰일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가족 안에서 녹아나는 것이 때론 신기하고 감사하다. 계산하지 않고 주는 마음이 사랑이었고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임을 깨달았다.
친정부모님께도 많은 것을 도움받으며 살아왔고, 그것에 대한 감사함이 분명 있지만, 마음으로 늘 한결같지 않다는 것에 속상했다. 부모님의 '무슨 일 없냐?'는 말이 반갑지가 않았다. 부모님이 나를 안쓰럽게 보듯 나 또한 부모님을 똑같이 바라본다. 집안행사가 있을 때 큰집 작은집 모두 모이는 시댁과 달리 찬바람이 부는 듯한 친정이 외롭게만 느껴진다. 마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안위가 먼저인 듯한 부모님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신에게 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시댁에 자주 가더라도 며느리로서 불편함이나 불만은 없다. 시할머니부터 시부모님, 우리 가족까지 어울리며 느껴지는 다복함이 좋다.
이 또한 친정과 시댁에 대한 비교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이마저도 미안한 마음이다. 친정 안에서 어릴 적부터 외딴섬이었던 나는 부모님, 언니와는 다른 가치관 속에서 수요 없는 외침이 계속되었고, 지금은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주려했던 부모님의 마음만을 생각하고 자녀로서의 도리를 하며 마지막을 외롭지 않게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작가님들께 ⸜❤︎⸝
내 마음을 찾아가는 지도를 갖고 계신가요?
내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고,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알고 계신가요?
일상은 그 어느 것도 흘려보낼 수 없는 귀한 자료가 됩니다.
내 욕구와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길을 찾지 못해 헤맨다면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찾아가 보시면 좋겠습니다.
찾고 있는 그 길이 분명 내 안에 있습니다.
작가님들의 하루에 평안과 행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작가님들께 행복에너지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가족 안에서 흔들릴 때
그런 나를 감싸 안으며
나 자신을 토닥였습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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