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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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줄곧 덥다고 하셨다. 집에서는 한겨울에도 민소매를 입고 계셨다. 계절 상관없이 늘 입고 계시길래 원래 열이 많은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불면증이 있으신지 잠에 쉽게 들지 못하셨다. 그 또한 잠귀가 밝고 예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자주 숨을 내뱉으셨다. 마음에 쌓인 감정을 내뱉고 계셨던 걸까? 길게 숨을 뱉어낼 때마다 어머니는 인내하고 참아내면서 살아오셨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마음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서 괴롭고 답답했을 거라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스스로 다독이며 버텨왔던 삶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런 어머니께 힘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어머니이자 한 집안의 큰며느리로서 감당해야 하는 모든 것들을 가족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워낙 움직임이 빠르고 무엇이든지 척척 해내셨기 때문에 조금은 느리고 눈치가 없는 초보 며느리인 나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해 서성일 때가 많았다. 어머니 혼자서 해오셨던 일들을 이제는 내가 해야 할 것만 같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음식이 완성되기도 전에 반찬을 놓고 젓가락을 놓으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농사일을 끝내고 돌아와 곧바로 부엌에 들어가 저녁밥을 짓고 정리한 후 밀대로 거실의 먼지를 쓸어내고 방 안의 먼지를 걸레로 닦아내셨다. 일을 끝내고 소파에 기대 꾸벅 졸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된 농사일로 무릎이며 허리며 손이며 성한 곳이 없었던 어머니는 힘들다는 내색 없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거 줄까, 저거 줄까, 하며 자식들을 챙기셨다. 밭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밝게 웃으시며 커피를 타 주셨다.

기나긴 세월을 바쁘게 보내오셨던 어머니는 아픈 티도 내지 않으시고 챙겨주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어머니가 얼마나 아프고 힘이 드는지 알지 못했다. 나에게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가끔 어머니의 건강을 묻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라고 하셨다. 그런 어머니에게 받기만 할 때 더 해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올라왔다. 씩씩하고 밝게만 보이는 어머니셨기에 갱년기 증상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불쑥 올라오는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한숨을 쉬듯 숨을 내뱉으셨고,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해도 다음날 일어나 똑같은 하루를 보내야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채비하고 밭으로 가셨다.

갱년기에 좋다고 하는 건강보조식품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증상이 많이 완화된 지금도 여러 보조식품을 챙겨 드신다. 육체적으로 쉬지는 못해도 건강식품을 드시면서 힘을 내셨던 것 같다. 지금까지 해오셨던 일들이 고되고 힘들어도 당연히 해왔던 것처럼 갱년기 증상 또한 식구들에게는 아무런 걱정거리가 되지 못했다. 오랜 시간 농사짓고 장사하시며 몸이 성치 않은 날들이었는데도 언제나 사람들을 반갑게 마주하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하셨다. 힘듦을 견뎌내고 잊게 하는 어머니만의 지혜가 있었던 걸까?

가족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가족을 지켜온 책임감과 희생의 마음이 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온전히 어머니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 가족들이 무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묵묵히 해왔고, 모두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숨죽이며 내 자리를 찾아갔다. 함께 나누지 못하는 마음과 감정들이 숨으로 내뱉어지고 있을 때, 조용히 각각의 마음들을 읽어내었다. 마음으로나마 어머니를 위로하고 또 위로했다.

자식들에게 모진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시고 무엇이든 주려 하는 어머니시다.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선뜻 내어주시던 사랑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런 어머니께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어머니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와 모습들을 내 가슴 안에 고이 간직했다가 조금씩 풀어내었다. 한창 딸기철임에도 딸기를 저렴한 것으로만 사드시길래 동네의 과일가게를 지나다 크고 새빨간 다라 속의 딸기를 보고 부모님이 떠올라 바로 사 들고 왔다. 밭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사 오신 간식 중에 맛있게 드시던 누룽지 과자를 마트에서 발견하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카트에 담았다. 소소하지만 작은 마음을 부모님께 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이렇게 실하고 빨간 딸기가 있었어?"

"동네 과일가게에서 크고 예뻐서 샀어요."

어머니가 씻어놓은 딸기가 채반 위에 예쁘게 손질되어 있어 가족들이 먹을 수 있도록 그릇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부엌에 들어와 채반 속 줄어든 딸기를 보며 "고새 누가 다 먹었어?"라고 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진짜 딸기가 맛있나 보다, 좋아하고 계시는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기뻤다. 손주들에게 하신 "맛있는 딸기 금방 없어져, 얼른 먹으러 와"라는 어머니의 말속에서 며느리가 사 온 딸기라 더 맛있네, 라는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부모님께 받은 것보다 훨씬 작고도 작은 것이지만 소소하게 나누는 마음들이 귀하게 느껴진다.

때로는 서툴고 부족할지 몰라도 그것 또한 마음으로 받아주시는 어머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가족 간의 소통이나 관계 속에서 서로의 어려움이 있기도 하지만, 가족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 마음을 나눠줄 때 꼬여있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려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사랑은 가시덤불 속에 숨겨진 보석이 아니라, 손이 닿지 않는 선반 위가 아니라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꺼내어져 있는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아닐까? 내 손에 쥐어져 있는 핸드폰과도 같이 사랑도 내 가방 내 주머니에서 언제든 꺼낼 수 있는 것이리라. 늘 내 옆에 있어 소중함을 몰랐을 뿐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내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속 울림을 따라가 본다.




사람마다 느끼는 갱년기 증상은 다르겠지만, 그 시기를 통과해 내는 사람의 마음은 모두 같을지도 모릅니다. '조금만 내 상황을 이해해 주길, 내 마음을 알아주길'


소소한 가족 간의 사랑과 챙김으로 서로를 보듬는 따뜻한 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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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라 함께, 고장이 아니라 업데이트된 인생 후반기를 준비하는 나만의 방법을 마음껏 공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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