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둘째 아이는, 개학 한 지 이틀째가 되던 날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엄마, 나 내일 부반장 선거에 나갈까?"
전 학년에 친구 따라 부반장 선거에 나갔던 터라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가 보다 하며 "그래?"라고 말했다. 선거에 나가기 위해 공략발표 준비를 해야 하는데 바로 내일이라고 하기에, 준비도 없이 나갈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위해 이불 위에 누워있던 아이는 "지금 쓰고 잘까? 내일 할까?"라고 물었다. 이번에도 친구가 나가니까 같이 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내일 일어나서 해"라고 말했다. 가볍게 생각하고 흘려보냈다.
다음날, 하교 후 집에 들어선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마음속으로 안 됐구나,라고 짐작했다.
"엄마, 나 슬퍼. 다섯 표 밖에 못 받았어. 한 표는 내가 나를 쓴 거야."
당선되지 못해 속상해하는 아이에게 어떤 반응을 해줘야 할까 잠시 생각했다.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싶었다.
"그랬구나."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곤 머리를 굴려 나름의 긍정적인 표현을 생각해 냈다. 지혜로운 엄마라면 어떻게 말을 할까?
"네 표나 받았네. 네 명이 지지한 거잖아"
"한표 받은 친구도 있어! 자기가 자기 이름 쓴 거야."
아이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은 듯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한 말투였다. 슬퍼하던 아이는 아주 잠깐 밝게 웃어보이다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엄마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뭐 먹고 싶어?"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마라탕!"
아이는 역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마라탕을 골랐다. 속상하거나 우울할 때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의 소울푸드였다.
"피아노 연습 하고 나가자."
약속한 시간까지 피아노 연습을 하고 나가자고 말했다.
잠시 후 피아노 소리가 뚝 끊기자 아이에게 연습해야지!라고 말했다. 그리곤 아이를 쳐다보니 아이는 건반 위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흐느적 대며 연습을 하지 않았다. 마라탕을 생각하며 열심히 연습할 줄 알았던 아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온몸을 피아노에 맡긴 채 엎드려 있었다. 마치 슬라임이 된 듯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했다. 나는 아이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빨리 연습하라고 소리를 높였다. 아이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겠다던 나는 잔소리 모드로 아이 옆에 서 있었다. 다시 들려온 피아노 연주 소리는 점점 느려지며 아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유난히도 구슬펐다.
방으로 돌아와 할 일을 하고 있던 나는 다시 소리가 들리지 않자 피아노가 있는 거실을 보니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이름을 크게 몇 번이고 불러봐도 대답이 없었다. 나는 집안의 이곳저곳을 살피다 마지막으로 남편 방을 가보니 아이는 방구석에서 쿠션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아이는 엉엉 울고 있었다. 잔소리 때문인 걸까 속상해서 우는 걸까,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더 이상 연습이 불가능할 것 같아 바로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마라탕 먹으러 가자!"
아이의 손을 잡고 도착한 가게에서 아이는 그릇 위에 자신이 좋아하는 마라탕 재료를 담았다. 재료를 고르는 아이의 표정을 보니 기분이 좋아보였다. 테이블 위에 놓인 따끈하고 매콤한 마라탕을 자신의 속도대로 맛있게 먹었다. 마라탕을 먹은 후 바로 옆 카페로 가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마라탕에 아이스크림까지, 완벽한 코스네! 그렇지?"
기분 좋게 집에 돌아온 후 얼마 되지 않아 아이는 "슬퍼"라고 말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말의 횟수가 늘어갔다. 하루 종일 슬프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니 선거에 진심이었음을 알게 됐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반장이 아닌 부반장이 되고 싶었어?"
"애들이 잘못하면 선생님이 반장부터 혼난다고 해서. 그래서 부반장 나갔어"
"그랬구나. 부반장 선거는 왜 나가고 싶었어?
"비밀이야"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엄마 아빠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어린 시절 내 꿈은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시람이 되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가장 큰 이유가 부모를 위해서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딸이 되고 싶었다. 내가 부모에게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처럼 아이도 그런 마음일까 궁금했다. 그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내 마음이야"
아이는 내 예상과는 다른 말로 대답을 했다. 구체적인 이유를 들을 수 없어 답답했지만 아이의 입이 다물어지자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래도 도전한 자체로 대단해. 엄마는 학창 시절에 나갈 생각도 안 했는데."
잠시 생각을 고르고 아이에게 말했다. 어떤 이유였든 아이가 도전한 것에 대해 인정해 주고 싶었다. 평소 부끄러움을 타고 쭈뼛한 모습을 보아왔기에 아이가 친구들 앞에 나가서 어떻게 발표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소신을 가지고 나갔을 아이가 기특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춤하거나 고민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 것에 칭찬해 주고 싶었다.
"다음 학기에도 나갈 거야?"
"응!"
"다음번에는 공략을 미리 작성해서 연습하고 나가자. 도전만 하고 안되면 속상하잖아. 거울 보면서 말하는 연습도 하고"
아이도 나처럼 앞에 나서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노력 없이 바라기만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연습을 통해 자신감을 얻길 바랐다. 나 또한 글을 쓰며 현실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알았기에, 도전에 앞서 친구들 앞에서 당당히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도전을 했던 추억보다 성취감에 대한 느낌을 기억하여 앞으로 노력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가길 바란다.
아이가 왜 부반장 선거에 나가고 싶었는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듣지는 못했지만, 다음번에도 나가겠다고 하는 아이의 기대에 부푼 표정을 보니 어쩌면 아이 마음 가운데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포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내향적인 아이였지만 마음속에는 늘 꿈이 있었다. 그 마음을 부모님이든 누구든 알아봐 주길 원했지만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작아지기도 했다. 응원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도 그런 마음일까? 나는 아이를 보며 내 어릴 적 모습을 떠올렸고, 꿈을 가지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 존재 자체로 가치 있음을 되새겼다. 그 마음을 귀하게 여기며 응원하고 격려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
작가님들께 ⸜❤︎⸝
새 학기가 되어 둘째 아이는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밥은 야무지게 잘 먹는데 그에 비해 운동량이 적어 점점 살이 오르는 듯해 아이에게 운동을 권유했습니다. 줄넘기, 태권도, 수영 중 수영을 선택했습니다. 수영을 좋아하고 잘하는 남편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이는 수영을 배우겠다고 합니다.
강습을 받는 첫날, 남편과 함께 수영장 바깥에서 창을 통해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남편은 아이가 좋아할지, 잘할지 궁금했나 봅니다. 일을 일찍 끝내고 수영장으로 달려왔습니다. 발은 쭉 펴서 차고, 숨은 어푸 하며 이렇게 쉬어야지,라고 창 너머의 아이에게 말합니다.
조금은 느린 듯하지만 선생님의 지시에 순서에 맞게 잘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기특하면서도, 많은 아이들 틈에서 지도를 잘 받고 있는 것인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수영복을 입고 물속에 들어가 지도하는 선생님을 상상했던 남편과 나는 슬리퍼를 신고 편한 옷차림새로 처음부터 끝까지 의자에 앉아 크게 소리치는 선생님이 낯설었습니다. 이런저런 선생님을 경험해봐야 한다고 말하는 남편의 말에도 잘 가르치고 계신 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넓은 수영장에서 아이들 각자가 선생님의 말을 잘 들으려면 큰소리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의 지도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은 투명창을 마주보며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잘해요."라고 입모양과 함께 손글씨로 써보였습니다. 그리곤 "물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좋아해요."라고 말하며 지나갔습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선생님의 태도가 건성건성하는 듯했지만 선생님은 눈이 이곳저곳에 붙은 듯 아이들 모두를 살피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인 둘째아이를 잘 쳐다보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것 또한 저의 걱정이자 판단일 뿐이었습니다. 아이가 재밌어하고 물에 친숙하게 다가가니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습니다.
소극적일 것만 같던 아이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땐 깜짝 놀랍니다. 아이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앞으로 아이의 보이지 않던 부분들을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도록 조력자로서 아이와 함께 하려고 합니다. 아이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잘 성장해 나가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위 글을 쓸 때, '부모의 꿈'이란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부제는 부모마음, 엄마의 지혜입니다.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이 무얼까 생각하다, 지혜로운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이자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부모가 되고자 하는지, 그 소망이 담긴 제목입니다.
작가님들은 어떤 부모의 모습을 꿈꾸고 계신가요?
작가님들께 행복에너지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가족 안에서 흔들릴 때
그런 나를 감싸 안으며
나 자신을 토닥였습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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