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무언가에 쿡쿡 찔린다. 불쑥불쑥 튀어 오른다. 거북하고 불편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이 감정은 도대체 뭘까? 나를 이토록 혼란에 빠트리게 한 아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 안에는 수많은 말들이 오가고 잔잔했던 마음에 파장이 일었다.
언니가 친정에 왔다 집을 비운 사이 엄마 아빠와 다과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언니가 해외출장을 가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 특별하지도 않은 소식이었는데, 그 뒤 이어진 아빠의 말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언니가 총책임자로 가게 됐어. 능력이 있어 된 거야."
언니의 승진이 있고 엄마의 카톡 프로필에 올라온 축하 화환사진을 보며 마음속에 무언가를 억누르며, 단톡방에 먼저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남겼던 나였는데, 굳이 내 앞에서 언니가 능력 있음을 말하는 아빠가 미웠다. 눌러왔던 마음이 터지며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하고, 그 정도 월급 받으면 그에 맞게 일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말했다. 며칠 전만 해도 내가 제일 걱정이라던 아빠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당혹스럽고 갑작스러웠다. 절망스럽고 좌절스러운 목소리와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일을 잘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단순한 그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장을 받아온 언니를 질투하는 어린 내가 있었고, 그런 언니를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아빠가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걸 보니 감정에는 나이가 없어 자라지를 못하는구나, 단지 그 감정을 누르고 숨기는 것일 뿐이구나,라는 생각에 멈추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질 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아이와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아직도 인정이 그립다'
아빠의 마음이 들려왔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 조금 이르게 퇴직을 하신 아빠는, 본인의 선택이고 결정이었기에 어떤 미련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아빠의 마음을 들여다보니 좀 더 젊었을 때, 지금 언니의 나이였을 때 일에 대한 성과나 승진을 이루어내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는 듯했다. 조금 더 참고 버텨볼 걸, 좀 더 열심히 공부할 걸, 하는 후회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빠 자신의 바람대로 원하는 길을 걷게 된 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미련조차도 밀어낼, 그렇게 하길 잘했지 라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에게는 언니의 일과 성공이 자신들의 삶에 활력요소이자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친정에서의 대화는 언니의 직장 이야기뿐이니까.
그때마다 나는 가족을 멀리하고만 싶었다. 그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아 멀찍이서 바라보거나 자리를 피해버렸다. 언니의 승진 소식을 기다리며 입이 쓸 정도로 마음을 쓰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던 엄마와 소식을 목 빠지게 기다렸던 아빠에게, 언니의 성공이 자신들의 일인 것 마냥 간절하게 바라고 기대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질문을 던졌다. 왜 자녀의 성공이 부모의 희망이어야만 하는가?
그래서일까, 나 조차도 다른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지려 했던 것이. 부모 욕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이 좋은 직업을 갖길 바라는 마음은 나 또한 그러하니까. 내가 더욱 글쓰기에 몰입하는 이유다. 아이들에게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에 꿈을 갖고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결과가 크든 작든 노력하는 과정을 오롯이 아이들이 봐주길 바랐다. 부모님을 꿈이 있는 한 사람으로 바라보니 나에게까지도 자랑하는 아빠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부모로서의 나는 좀 더 다른 길을 가고자 한다. 부모님은, 내가 출간을 통해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을 테니, 기대나 바람보다 여전히 걱정스러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부모의 기대가 아닌 나 자신의 바람과 노력으로 이루어내고자 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고 격려하지 못하는 부모님에게 아쉬움을 느낀다. 할 수 있다고,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라고 용기를 주는 부모님이셨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글을 쓰며 비로소 나로 돌아온다. 지나간 모든 일들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오롯이 나의 것이다. 책망하지 않고 나 자신이 풀어나갈 때 어른이 되어감을 느낀다. 더 이상 부모의 걱정 어린 시선이 내 삶을 흔들어 놓지 않는다. 언니의 조건에 못 미치는 나를 안쓰러워하고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 또한 부모님 만의 생각이고 판단이기에 부모님의 말이 내 삶에 중요한 부분이 되지 않는다. 언니의 조건에 못 미친다고 말하지 않으셨지만 부모님에게는 무언가를 판단할 때 비교할 수 있는 기준임에는 확실하다.
결코 언니를 미워하는 것도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님은 걱정하는 마음으로 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오셨겠지만 그것이 나에게 성장이 아닌 독이었음을 느꼈을 때, 더 이상 내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 애썼다.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언니가 상을 타거나 승진했을 때 오로지 축하만 해주었다. 엄마는 언니의 승진 심사와 결과에 대해 조마조마했는지 밥맛이 없다고 가족톡방에 남기셨을 때, 얼마나 언니의 성공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는가를, 그것이 엄마 삶의 전부였다는 것을 알아버렸을 때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온전히 축하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자식의 일이 부모에게 전부가 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부분일 수 있지만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성과를 일으켜 낼 때 나 자신의 삶이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다른 자녀가 느낄 감정은 생각지도 않고 한 자녀의 일로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음을 내보일 때, 누구의 부모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늘 걱정이다,라는 아빠의 말은 내가 아픈 손가락인가 싶어, 부모에게 아직도 짐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진짜 내 마음도 모르면서 무조건 내뱉는 말들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나에게 걱정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고, 내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알아봐 주길 바라지만,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부모님에게 나는 결코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없었다. 마치 친척 앞에서 자식자랑을 하듯 내 앞에서 '언니가 능력이 있어서 총책임자가 됐어'라고 말했을 때, 가족 외의 사람이 된 듯했다. 뒤늦게 무안하셨는지 '너도 작가잖아'라는 말로 수습하려 하셨다. 나는 아빠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아빠가 이루지 못한 것을 언니가 이루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정리했다. 두 자녀에 대한 다른 마음이 자녀를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며 내 자녀를 대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봤다.
내가 이루어낸 성과에는 나만의 노력뿐만이라 다른 이들의 도움도 있다. 가족이나 지인들의 응원도 있고, 조언을 해준 멘토도 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다른이의 결과물이 될 수는 없다. 그 사람이 이루어내기까지의 과정을 보며 배울 점이 있지만, 그 결과물은 그 사람의 것이다. 자녀들을 보며 하는 생각이다. 각자가 가진 재능이 있고, 개성이 있다. 매력이 서로 다르다. 나는 아이들 자신의 것을 내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장단점도 나만의 판단일 뿐이다.
외향적인 첫째 아이와 달리 내향적인 둘째를 보며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것에 걱정을 하기도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교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혼자서도 잘 놀고 소수의 친구와도 잘 노는 것이었다. 아이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생각과 감정을 글로 그림으로 만들기로 표현하고 있었다.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은 아이였던 것이다. 아이의 내적세계를 볼 수 있는 글이나 그림들이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것을 품고 있었다. 가끔 아이는 칭찬을 받고 싶어 작품을 내게 들고 왔다. 나는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고 잘했다,라고 하거나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그럼 아이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들을 했고, 그것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알아갔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성공이란, 규정화된 교과목을 실패 없이 공부하고, 높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예체능을 가르치는 나에게 언제 그만둘 거냐고, 영어 수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가진 재능이나 성향을 생각지 않고 교과목 공부만을 말하는 부모님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듯했다. 바로 언니였다. 그 소신이 언니의 길을 찾고 성공이라는 이름을 부모님의 시선에서 달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언니는 단번에 시험 합격으로, 성과로 받은 상으로, 승진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렸던 것이다.
조건으로 말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생각을 깊이 할 수 있고,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다. 살아오면서 실패도 좌절도 포기도 밥먹듯이 하고, 관계도 서툰 나였지만 결국 나는 글을 쓰며 나를 찾아갔다. 내 마음을 글로 표현하며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 자신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인정하며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내 감정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큰 성과였다. 미숙한 부분도 있지만, 그렇기에 부족한 부분을 알고 채워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 인생의 트로피는 '나'자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님들께 ⸜❤︎⸝
셋째 아이의 어린이집 수료식날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간식이 담긴 봉투를, 담임선생님께는 핸드크림을, 원장님께는 제 책을 선물했습니다. 각 선물마다 아이들 이름을 적고 선생님께는 짧은 편지를, 책에는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을 전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과 앞으로 펼쳐질 아이의 새로운 날들에 대한 설렘이 공존했습니다.
책을 쓰기 위해 과감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벌써 3년이 흘러 아이가 여섯 살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데 힘든 날도 있었지만 선생님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내 할 일을 핑계로 아이를 억지로 떠밀어 보내는 듯한 미안함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아이를 돌봐주신 선생님과 그 진심을 알아준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아이의 성장에 함께 해주시고 더불어 엄마들의 마음을 헤아려주신 데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엄마들 또한 아이들과 성장해 나가는 시간이었길 바랐습니다. 아이들 이름을 선물에 적으며 엄마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떠올렸습니다. 친구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기억해 낸 아이에게도 기특한 마음이었습니다.
뒤돌아보면 잊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를 계기로 반성하며 성숙해지기를 바랍니다. 아무 의미 없는 날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삶이라는 무대에서 마음껏 자신을 펼쳐 나가기를 마음속 깊이 바라봅니다.
작가님들께 행복에너지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족 안에서 흔들릴 때
그런 나를 감싸 안으며
나 자신을 토닥였습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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