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추는 첫째 아이는 곧잘 대회에 나갔다. 지방에서 열리는 대회도 종종 있었다. 이틀간의 일정으로 지방에 가게 되었는데 숙소를 잡아 하룻밤을 자야 했기에 이를 남편에게 상의해야 했다. 학원에서 단체로 참가하는 것이기에 원장이 직접 숙소를 예약하게 됐고 아이들이 함께 1박 2일간의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말이 상의지 통보와도 같았기에 남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미 이달에 잡힌 대회가 두 개나 있었으니 같은 달에 대회를 세 번 나가는 것에 남편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막막했다.
공부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은 춤으로 먹고 살 거냐고 말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아이가 춤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춤이 직업이 되지 않을 거라면 언젠가는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예체능은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라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확실하게 다가왔을 듯하다. 취미 이상으로 대회를 자주 나가다 보니 이걸 통해 무얼 얻고자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해 불안한 마음이 느껴졌다. 공부가 기본이 돼야 하는데 균형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 부모의 입장에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숙박을 해야 한다는 공지가 올라온 후 숙소 예약을 위해 빠르게 결정 해야 했고, 단체전이기에 한 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유명 댄서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큰 대회로 모두 참여해야 했고, 남편에게 의견을 묻는 것은, 이런 일정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과도 같았다. 남편이 퇴근 후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는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반대하지는 않을까 초조한 마음이었다. 더군다나 일찍 말을 하지 않았을 때 화를 내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엌으로 남편이 들어오자 나는 설거지를 멈추고 준비했던 말을 늘어놓았다. 약간은 긴장한 상태였지만 차분하게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보, 다음 달 두 번째 주에 충북에서 댄스대회가 있어. 이틀 동안 진행되는 행사라 왔다 갔다 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아서 원장이 숙소를 잡는다고 하네. 자기도 스우파 알지? 그 댄서들이 직접 심사하고 춤도 가르쳐 준대. 큰 대회고 팀으로 참가하는 거라 꼭 참여해야 돼."
남편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도록 유명댄서가 심사하는 것에 대해 강조했다.
"언제까지 할 건데? 대회 있다고 하면 다 따라갈 거야? 춤으로 먹고살 거야?!"
남편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속사포로 쏟아냈다.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가 커지고야 말았다. 왜 자꾸 남편은 끝을 이야기하는 걸까,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는데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묻는 이유는 뭘까. 글쓰기도 끝이 없는데 춤이라고 끝이 있을까? 마침표를 찍어야만 할까?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춤이 직업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본업으로 춤을 추면서도 가르칠 수도 있고, 길이 여러 가지 있어."
"네가 대변인이야? 얘가 직접 말할 수 있잖아."
아이의 마음을 대변하듯 나도 모르게 내 말이 틔어 나왔다. 진짜 그만두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되려 겁이 났다. 포기를 밥 먹듯 하던 나였기에 아이만큼은 끝까지 해내길 바랐다. 춤의 세계는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이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이야말로 어린 내게 동경의 대상이었기에, 어쩌면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무대를 통해 내 눈에 직접 담고 싶었다. 그 무대를 따라가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의 춤을 보며 음악을 느끼곤 했다. 아이는 나에게 또 다른 길이자 경험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무슨 반인데?"
"심화반이야. 이제 대회반으로 올라간대."
"그다음은 뭔데?"
"전문반이야. 입시반이래. 춤으로도 예고 갈 수 있잖아...."
아이의 진로가 확실하지는 않더라도 아이가 하고 싶다는 걸 그만두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확신은 없지만 어떤 말이라도 해야 했다. 아이가 무슨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계속하고 싶다고 말하면 될 것 같은데 왜 그 말이 안 나오는 걸까?
"애가 울 정도면 진짜 하고 싶은 거야. 그리고 잘하고 있는 건 맞잖아. 뭐라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안 했어. 내가 언제 하지 말라고 한 적 있어? 그리고 네가 대변인이야? 왜 자꾸 네가 말해.
(아이를 보며) 네가 직접 말해봐"
아이는 여전히 답이 없다. 핸드폰만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우리가 왜 싸워야 해. 애가 말할 때까지 좀 기다려봐. 나도 이제 말 안 할 테니까"
"어떻게 할 건지 보고서 써와"
아이에게 대답을 듣지 못하자 보고서를 써오라고 한다. 하지 말라고 안 했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빠는 네가 잘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춤이 직업이 돼서 돈을 벌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서 불안하고 걱정돼.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알려줄 수 있겠어?' 남편의 마음이 들려왔다.
답답한 마음을 겨우 누르고 설거지를 했다. 해야 할 말을 잘 전했다는 것과 분위기가 더 험악? 해 지지 않고 차분해진 것에 안도했다. 남편은 자리를 뜨며 지난번 대회영상이 업로드 됐는지 물어보았다. 아이가 출전한 분야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뿌듯해하던 남편은 무작정 반대를 할 수는 없었는지 아이가 얼마나 잘하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대회에 참여하는 것에 태클?을 걸까 걱정했던 마음이 안심으로 바뀌었다.
나는 아이가 지금하고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나가길 바란다. 공부하랴 방송반 활동하랴 학원 가랴 대회 나가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어느 것도 놓지 않고 차분히 해내고 있다. 그런 아이를 조용히 지켜보고 격려하며 응원하는 중이다.
대답을 듣고자 채근하는 아빠의 말에 우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나는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싶었다. 왜 대답을 못했는지,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슬펐어?"
"응"
"아까는 왜 대답 못했어?"
"나도 모르니까."
"그런데 왜 울었어?"
"아빠가 그만두라고 하는 것 같아서"
"이제는 울지 마. 우는 건 도움이 안돼. 하고 싶다고 네 마음을 당당히 말해"
아빠의 물음에 묵묵부답이었던 아이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다섯 살 때부터 시작된 춤사랑이 열세 살이 된 지금까지 이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코어에 힘이 없어 팔랑되던 아이는 반복된 훈련과 연습을 통해 실력이 날로 성장해 갔다. 방학 때는 학원에 살다시피 하며 연습을 했고 학교에 다닐 때는 학원에 한 시간 일찍 가 연습을 하곤 했다. 집에만 있으면 누워 쇼츠를 보던 아이는 어느샌가 집에 있을 때조차도 춤을 췄다. 누구보다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춤만 생각하는 아이의 외길 인생이었다.
아이의 춤인생은 이제 시작이고 진행 중이지만 지금까지의 과정과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하나의 꿈을 놓지 않고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해 왔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배움에 있어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필수이지만, 그에 반해 아이의 노력이 없었다면 그 꿈은 사라지고 말았을 테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대회에 나가 무대경험도 쌓고 상도 받으니 자신감이 날로 높아지는 듯했다. 경험을 통해 하면 된다는 것을 배운 셈이다.
춤을 배우겠다고 학원에 보냈는데 집에서는 연습도 잘 안 하고 놀기만 할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이가 활달하고 외향적이니 무대에 서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실력으로는 잘한다는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다 댄스학원에서의 수업일수가 늘어나고 대회를 목표로 개인전을 준비하다 보니 실력이 확 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보니 엄마인 나도 아이의 꿈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학원에서 공지한 대회를 지원하고 참가하는 등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엄마인 나도 뒤처질 수 없다고 생각하며 글쓰기에 집중했다. 말로만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려면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는 남편의 말처럼 나 또한 글쓰기를 한다고 살림과 육아에 소홀할 수 없었다. 춤을 계속 추려면 수학시험에서 85점 이상 맞아야 한다는 아빠의 말에 어려운 공부도 포기하지 않는 아이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엄마와 딸이 되기를 바라본다.
남편이 아이에게 언제까지 춤을 배울 거냐고 묻는 이유는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 후 한 번의 이직이 있은 후 한 직장에서 꾸준히 일하고 있는 남편은 누구보다도 현실적이고 이성적이었다.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공부를 못하면 어른이 되어서 힘들고 궂은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원했던 일을 선택할 수 없으니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들려왔다. 좋은 환경에서 풍요롭게 살길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자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남편의 마음이었다.
남편은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을 때 불안을 느껴 화를 냈다. '언제까지 춤을 배울 거냐'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는 지금까지 잘 배워왔고 좋은 결과를 내고 있으니 계속해서 배우는 것이 당연한데, 지금의 상황에서 언제까지 할 거냐 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서 당혹스러웠다. 내 머릿속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새로운 작품들을 배우고 연마해 대회나 행사를 통해 경험을 쌓고 기회가 된다면 오디션도 참가하는 계획이 있었는데, 남편에겐 춤을 추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는 과정은 익숙하지만, 고정적으로 출퇴근하는 것이 아닌 프리랜서와 같은 길은 잘 알지 못했다. 자신이 경험한 것은 그것이 맞다고 믿고 이야기하지만 경험하지 못한 것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편의 말을 풀어본다면, 첫 번째로, 만약 네가 댄서가 된다면 무엇을 배우고 어떤 대학교에 가고, 어디에서 일할 수 있고, 얼마를 벌 수 있는지 알려줘. 두 번째로, 댄서라는 직업이 일하는 곳도 수입도 불분명하니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공부도 열심히 하여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알아서 안심하고 싶은 남편의 마음이 느껴진다.
남편의 불안과는 반대로 꿈을 위해서 열심히 연습하고 도전하는 모습이 좋은 나는, 그 자체로 그 꿈에 다가가고 있다고 믿지만, 남편에게는 그 미래가 추상적으로 느껴질 것 같았다. 아이에게도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만 하기보다 구체적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공부도 균형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로에 대해서 이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향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었던 것임을 알았다. 아이의 학년이 높아질수록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 취미만을 할 수 없는 시기가 된 것이다.
나 또한 책을 출간하기 전에는 제대로 글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마음이 해이해지고 꿈이 희미해졌었다. 책을 쓰며 구체적으로 주제와 목차를 쓰고 그 방향대로 글을 쓰니, 출간 후 글을 쓰는 주제가 더욱 선명해지고 내용이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글쓰기가 무엇인지 눈에 들어왔다.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다. 불확실함을 이기는 힘은 구체적인 방향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실천 방법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희망은 구름 위가 아니라 내 눈앞에 보이는 것임을.
작가님들께 ⸜❤︎⸝
남편과의 갈등이 줄어든 데에는 구체적으로 말하고 미리 상의하는 실천이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말끝을 흐리던 제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면서 남편에게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남편을 위에 두고 허락을 하는 존재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화내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남편이 어떨 때 불안한지 알게 되었고, 불안이 화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편의 불안을 유도하고 있던 저였습니다.
남편에게 말하기 전 해야 될 말을 복기하고 되뇌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구체적으로 말할 때 남편의 반응은 편안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어떤 말이든 다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던 제가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말하는 습관을 바꾸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에게 말하는 것에 자신감이 붙고 남편과의 사이도 개선되었습니다. 남편과의 사이를 가까이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글쓰기의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글을 읽을 때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도록 쓰는 훈련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써야지,라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있는 그대로 글로 옮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습이 되고 훈련이 되었습니다. 저의 글이 많은 분들에게 현실감 있게 다가갈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되기를 바랍니다.
작가님들만의 갈등상황을 극복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있으신가요?
작가님들께 행복 에너지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가족 안에서 흔들릴 때
그런 나를 감싸 안으며
나 자신을 토닥였습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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