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셋째는 이불 위에 누워 내일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엄마 내일 유치원에 가기 싫어"
또 시작된 아이의 투정일 뿐이라고 생각한 나는 아이의 마음을 받아주기보다 가야 하는 이유를 늘어놓았다. 첫째와 둘째를 키우며 겪었던 상황이었고, 아이들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지금 또한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잊지 않았는지 일어나자마자 가지 않겠다고 한다. 아이를 안고 달랜 후 옷을 입히고 아침밥을 먹였다. 아이는 계속해서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내비쳤지만 버스시간에 맞춰 아이를 보내야 했기에 그 마음을 다 받아주지 못했다.
유치원에 가면 아이들과 잘 어울릴 테고 웃으며 돌아올 것이 분명했기에 그치지 않는 울음에도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의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안아주고 달래주고 싶었지만 버스 시간에 맞춰 나가려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집 앞 편의점에서 초콜릿을 사주었다. 달콤한 맛이 아이를 위로해 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버스가 정차하는 곳에 데리고 가니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버스가 도착했고,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터덜터덜 버스에 올라탔다.
아이는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린아이가 껑충 어른이 되어버린 듯 깊이 상념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나는 울부짖어도 내 뜻대로 하지 못하는가, 나는 엄마가 좋아서 엄마랑만 있고 싶은데 엄마는 왜 나를 보내려고만 하는가. 아이의 마음속 말들이 들려왔다. 평소와 달리 엄마를 쳐다보지도 손을 흔들지도 않는다. 이른 시간에 아이를 보내는 것이 내 편의를 위해서일까, 손잡고 걸어서 유치원에 데려다줬어야 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갔다.
창밖을 바라보던 아이의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작디작은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오가고, 그것을 스스로 정리해 낼 줄 아는 듯한 표정이었다. 체념과 포기를 일찍 배우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은 쓰렸지만 해야만 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아이가 알기를 바랐다. 아이의 마음을 다 받아주고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은 마음과 제시간에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기도 했지만 결국 버스가 오는 시간에 보내야 한다로 마음이 기울었다. 새로운 유치원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몸에 체화되는 리듬이 깨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유치원에 가게 된 후로 잠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일정한 수면시간으로 인해서인지 깨우던 시간에 아이의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조금만 졸려도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지만 그 요구대로 다 받아준다면 등원시간도 늦어지고 내 일과시간 또한 늦어질 것이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이를 잘 달래 등원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인 듯했다. 평이한 날들 속에서 지금의 내 인생은 잔잔한 물결과도 같았고 나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는 어떤 날들에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매일 글쓰기를 이어나가야 했다. 아이도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건강하게 성장해 나갈 거라고 믿는다.
월요일 아침, 유난히 몸이 무겁다. 피곤을 떨치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고 커피도 마셔보지만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잠을 떨쳐보려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데 소용이 없다. 시간은 가고 머릿속은 텅 비우고만 싶으니 이러려고 아이를 보내는데 힘을 썼나. 몸은 쉬라 하는데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밖에 나가 걸어볼까, 산책이라도 하고 오면 좋을까 싶은데 시간은 여유를 주지 않는다. 혼자의 몸이라면 자유로이 시간을 쓸 수 있는데, 아이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마저도 아깝게 느껴진다. 결국 피곤에 못 이겨 잠을 청해야 했지만 말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칼로리 높은 음식을 먹을 때 죄의식이 느껴진다고 하는 것처럼 글을 쓰는 나에게 황금 같은 시간에 잠을 자는 일이 그러했다.
이불도 깔지 않은 찬 바닥에 아이들이 갖다 놓은 인형을 베고 잠이 들었다. 온풍기가 만들어주는 따뜻한 공기에 의지해 잠을 잤다. 잠깐 눈을 붙일 요량이었지만 일어나 시간을 보니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 이상 자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고 어기적 거리며 일어났다. 전날 일찍 잠에 들어 충분히 수면을 취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피곤한 걸 보니 체력이 많이 떨어졌음을 실감했다. 잠에 취한 나는 잠시 앉아 잠을 깨우고 점심을 먹었다. 이전보다 상태는 나아졌고 개운한 느낌이 들어 안심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놀랍도록 고요했다. 글을 쓰며 무엇을 얻길 바라고 있는 걸까, 어떤 변화를 바라길래, 이토록 고요한 세상을 깨고 나오려고 하는지 나 조차도 궁금했다.
다음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졸음을 쫓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커피를 사 오기 위해 나온 한낮의 거리는 포근하고 한가로웠다. 가까이 있는 카페를 뒤로 하고 산책로를 돌고 돌았다. 좀 더 걷기 위해 평소 가던 동네 길이 아닌 윗동네로 향했다. 긴 횡단보도를 지나고 공원의 계단을 올랐다. 유치원 아이들이 공원의 인조잔디에 둥글게 앉아 있었고, 두 아이가 아이들 등 뒤로 이어 달리기를 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도, 등산바지를 입고 빠르게 걷는 아주머니들도 봄을 알리듯 가벼운 옷차림새였다. 빠르게 걷다 보니 얇은 점퍼가 덥게 느껴졌다. 따뜻한 라테를 사려했던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집으로 향했다.
가벼운 산책으로 몸을 깨우니 무겁던 머리와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청소기를 돌리고 건조기에서 수건을 꺼내 정리한 후 컴퓨터 앞에 앉았다. 걷는 시간조차 아깝다 생각하며 무작정 컴퓨터를 켰던 나는, 가벼워진 몸으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돌아온 봄에도 작년과 다를 바 없이 글을 쓴다. 재촉하는 마음 없이 일상을 글로 옮긴다. 올해도 글쓰기로 시작해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겠지. 나는 장거리 마라톤을 하듯 일정한 페이스에 맞춰 달린다. 숨이 찰 땐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천천히 이어간다. 변하지 않는 마음 그대로.
퇴근 후 집에 온 남편이 오이를 고추장에 찍어먹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네"
"오늘 로컬푸드에서 장 봐온 거야."
아이들이 저녁을 먹고 난 직후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나는 아이들에게 신선한 채소가 있는 잘 차린 한 끼 식사를 차려주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지역의 농산물을 바로 수확하여 파는 직매장에 다녀온 것으로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그런데 남편은 나의 의도와는 다른 말을 내어놓았다.
"나도 따뜻한 햇빛 쬐면서 한가로이 장이나 봤으면 좋겠다."
양손 무겁게 장을 봐온 것은 모르면서 한가롭다고 말하다니. 셋째가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두 시간 전부터 얼마나 열심히 재료들을 씻고 다듬어 반찬을 만들고 요리를 했는데. 그 수고로움은 알지도 못하고 햇빛을 만끽하며 산책을 하고 놀다 온 것처럼 말하다니. 남편에게는 주부의 일상이 그저 생활비 받아서 노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남편이 열심히 일해와서 우리 가족이 먹고사는 것은 인정하고, 고맙게 여기지만 때론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고 내뱉는 말들이 상처가 된다.
"당신이 직접 매일 이렇게 요리해서 아이들 먹인다고 생각해 봐. 쉬운 거 아니야. 상대방 입장도 알아야지"
"그럼 내가 일 그만두고 해 볼게"
또 똑같은 말이다. 주부로서 살아오면서 매일 출퇴근하며 일을 제대로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남편이 얼마나 힘든지 다 알지 못하고, 남편보다는 자유롭다고 할 수는 있지만, 주부의 일을 일로서 인정하지 않는 듯 말을 할 땐 남편이 괘씸하게 느껴진다. 남편이 매일 이른 아침 출근해 늦은 저녁에 돌아오는 것 자체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아내라는 존재가 있기에 자신 또한 일하러 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다. 내 마음이 남편에게는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가 보다.
낮에는 무얼 하느냐 라는 말에 글을 쓴다고 하고 싶지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다. 글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살림이나 청소만으로 하루를 꽉 채우지는 않기 때문이다. 개인의 취미생활이나 자기 계발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남편과 나의 공동의 일은 아니기에 자랑스럽게 말하지는 못한다. '남편 팔아서 돈 얼마나 벌었어'라는 남편의 말이 둥둥 떠다닌다. 남편과 나의 이야기가 담긴 첫 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줄곧 하는 그 말이 글을 쓰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글쓰기는 언젠가 빛을 보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달려온 장기 레이스이다. 그 또한 나에겐 가족을 위한 일이었는데. 지금의 내가 한가롭게만 보인다면 남편은 나를 정말 모르고 있는 거다.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할 것 같다. 나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아줄 그날이 있기를.
작가님들께 ⸜❤︎⸝
누가 뭐라 해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 자신입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 스스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어떤 부분을 채워가야 하는지를요.
유명한 아이돌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자신은 재능이 타고나지 않았기에 수도 없이 연습하고 또 연습해 왔다고요.
저 또한 그런 마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꾸준한 글쓰기입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습니다.
순수한 저의 노력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도 분명 있겠지요. 쓰면서 알게 됩니다. 써야지만 알 수 있습니다.
작가님들은 어떤 글쓰기를 지향하시나요?
작가님들께 행복 에너지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가족 안에서 흔들릴 때
그런 나를 감싸 안으며
나 자신을 토닥였습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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