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오란다

부스럭부스럭 봉지를 들기만 해도 소리가 났다. 이른 새벽 유난히도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내 귀를 감쌌다. 도통 알 수 없는 나의 내면을 탐험하던 중 내 뱃속은 꼬르륵 거리며 빈 속을 달래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살금살금 깜깜한 거실을 지나 냉장고가 있는 부엌 옆 베란다로 향했다. 냉장고 선반에 있는 두유를 꺼내려다 수제 오란다를 발견했다. 며칠 전 남편이 회사에서 챙겨 온 간식이었다.


잘될 거란 보장은 없었다. 그저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모닝 페이지뿐이었다. 지이익, 수제 오란다가 든 봉지를 살짝 뜯었다. 혼자 있을 땐 아무렇지도 않던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울라 조심조심 살살 봉지를 뜯었다. 자고 있는 이의 코털을 건드리지 않으려다 보니 내 심장도 봉지와 함께 뜯기는 듯 알 수 없는 아픔이 딸려왔다.


글쓰기에 대한 어떤 보상을 바라는 마음을 추스르자고 조급해하지도 말자고 주문을 걸어보지만 한 번씩 엄습해 오는 조마조마함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써질 듯 말 듯한 모닝 페이지를 앞에 두고 비장한 마음으로 오란다를 꺼냈다. 그리곤 두유를 한 모금 들이켰다. 빈 속에 들어온 두유 한 모금은 마치 더운 여름 뜨거워진 아스팔트 위에서 얼음이 가득 든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두유 한 모금이 식도를 씻겨낸 자리에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수제 오란다가 굴러들어갔다. 오란다의 단맛이 입안 가득 채워지며 황홀함을 선사했다. 한입 두입 세입 네입 어느새 오란다는 사라지고 없었다. 달콤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히려 뱃속에 음식을 더 넣어달라며 아우성쳤다. 그렇게 오란다는 왔단 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배속의 허전함 만이 남았다. 배가 고픈 것인지 아픈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오란다의 흔적이 사라지는 사이 어느덧 모닝 페이지는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다. 후회 없는 마지막 페이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써 내려가는데 찌개 한 모금이 간절해졌다. 단맛이 지나간 자리에 아쉬움 가득한 여운이 생기니 짭조름한 국물이 당겼다. 배고프다. 어느샌가 노트에 배고픔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모닝 페이지를 아침에 일어나 바로 작성해야 하는데 아이들과 일어나는 시간이 겹쳐지면서 노트에 밥을 주다 마는 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밥을 준비하고 등교 준비를 시키느라 쓰다가 펜을 놓고 말았다. 아이들을 챙기는 사이 노트도 밥을 먹다 많이 배고프다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마치 펜이 수저가 된 것 마냥 펜을 들고 빨리 밥을 달라 시위하는 것 같았다.


비 내리는 아침이었다. 비와 함께 떠나고픈 마음만이 노트 위 몇 줄을 차지했다. "너는 그리도 어디를 가고 싶길래 여행 타령이야. 그러다 내가 떠날지도 몰라." 하며 투정을 부리는 듯했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옆에 두었던 노트는 그대로 입을 벌린 채 밥을 받아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아이들이 엄마가 해준 밥을 먹기 위해 기다리 듯 노트는 내면의 소리를 받아먹기 위해 나를 기다렸다. 내면의 밥을 먹다 말아 더 배고픈 노트는 그렇게 나를 계속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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