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써라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도대체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알아야만 했다. 돈을 받고 글을 쓰는 작가도, 책을 출간한 작가도 아닌 내가 어떤 결과를 바라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명확히 해야 했다. 지지부진한 글쓰기 실력에 어디다가 내놓을만한 작품 하나 없는 내가 한심했다. 내 글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없으니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글을 계속 써야 할 사유가, 확신이 필요했다.


계속 끌고 가도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어떤 거창한 삶의 변화를 꿈꾸며 시작한 글쓰기는 아니었지만 글을 계속 쓰다 보니 일말의, 피자 한 조각 정도의 변화를 꿈꾸게 되었다.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다. 밖으로 나갈 구실을 만들길 원했다. 글쓰기에 대한 영감을 심어줄 수 있는 강의를 한다던지, 글을 써줄 제안을 받는다든지 하는 활동의 도구가 필요했다. 그것이 수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어깨를 펴고 당당히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 이상과는 달랐다. 아마도 공이 덜 들여진 것일 테다. 한마디로 내공이 부족한 것이다. 그동안 대중에게 다가갈 메시지가 있는 글을 쓰지 못했다. 다시 말해 돈을 받을 수 있는 글이 아니기에 조회수나 하트 수가 적은 것일 거라는 거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공을 들일 수 있는 시간이 쌓이면 언제 어디서든 신선하면서도 탄탄한 글을 쓸 수 있으리라.


그렇다. 내겐 시간이 필요하다. 온종일 글만 쓸 수 있는 날이 있어야만 한다. 매일매일 짬나는 대로 글을 써보고는 있지만 내공을 늘려나갈 정도의 글의 양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모닝 페이지를 쓰겠다 결심을 했었지만 일주일이 되니 내 체력은 떨어졌고 잠이 절실해졌다. 아이들보다 더 일찍 기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아이들 밥을 챙기고 등교 준비를 도와야 하니 도저히 여유 있게 글을 쓸 수 없었다. 내면의 말을 듣기 위해 집중해야 하는데 한 번씩 터지는 아기의 sos에 흐름이 깨지기 일쑤였다.


양은 많지 않아도 시간이 많지 않아도 매일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하다 여겼었는데 글의 양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책 속의 이야기에 회의감이 들었다. 지금 내 상황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나를 도와줄 그 누군가가 없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일주일에 단 한 번이라도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음 한편에선 지금처럼만 하면 돼 라고 말을 하지만 이미 '양'이 중요하다는 글을 본 순간 지금처럼은 안된다 라는 생각이 나의 뇌리에 박혔다. 밖으로 한 발짝 더 나갈 수 있는, 문을 열고 나갈 명분이 있어야 했다.


자격증 수업 중 깨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생각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나 자신을 깨고 싶다고 했다. 어느 날은 글쓰기에 자신이 있다가도 어느 날은 자신감이 뚝 떨어진다. 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 앞에 분명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서 매일 추상화만 그리고 있는 나를 자꾸만 발견하게 된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정확한 문장을 써야 하는데 나만 이해할 수 있는 글만 쓰는 것 같았다. 에세이도 소설도 아닌 어떤 장르라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소설을 쓸 아이디어도 없었다.

'그냥 써라. 써야만 하니까 쓰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 들려온 한마디이다. 구태여 글을 쓰는 이유를 알려고 하지 말아라. 그 고민을 할 시간에 쓰고 또 써라. 빈 곳 없이 써내려 가라. 너의 내면의 이야기를.

글쓰기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찾아낸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든지, 글 쓰는 행위를 부정하기보다는 자신을 더 깊이 불사르며 글쓰기 속으로 몰입하게 해 줄 것이다.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유가 가능하다. 당신은 문체를 향상시키기 위해, 당신은 얼간이이기 때문에, 당신은 종이 냄새에 미쳤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