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의 달팽이 Jul 20. 2022

남편, 생일 축하해

충분한 사랑과 인정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는다.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결정되는 순간이 어린 시절이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았던 사랑과 인정은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으로 만들어준다. 어려운 순간, 좌절의 순간이 와도 스스로 극복해나간다. 특히 부부관계에서 어린 시절 받았던 사랑과 인정의 결과가 실현된다. 충분히 받지 못한 경우엔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고 상대방에게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기대감이 생기고 기대했던 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상대방 탓을 하며 자신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한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까?


스스로를 부족하다 탓해야지만 마음이 편안해졌던 순간이 있는가? 아무도 나를 칭찬하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아 괴롭지 않았는가? 나는 수도 없이 나를 탓해야만 했다. 그 속에서 나는 희망을 꿈꾸는 이상주의자가 되었다. 나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의 괴로운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채 성장했고 그렇게 나의 결혼생활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남편 또한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큰 어른 아이다. 마음속 어린아이가 불쑥불쑥 틔어 나와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 일쑤였다. 우리는 각자의 어린아이를 돌봐야 했고 토닥여 주어야 했다. 서로에게서 발견되는 어린아이를 쓰다듬어주고 인정해주어서 어른으로 성장시켜 주어야 했다. 그 과정이 복잡하고 미묘했지만 우린 견뎌내야 했다. 왜냐하면 우린 부모이기 때문이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지 9년 차다. 우린 얼마나 성장했을까. 큰 아이는 자신이 아빠와 동갑이라 한다. "나는 9살, 아빠는 서른아홉 살. 우리 똑같은 아홉 살이야." 아이의 눈에도 부모가 어린아이로 보였을까? 자꾸만 싸우는 부모의 모습에서 서로를 탓하는 어린아이를 보았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가 싸웠던 이유가 굉장히 단순한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마치 두 딸들이 서로 뺏고 때렸다며 싸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부끄럽고 체면이 서지 않는다. 그 당시엔 큰 소리를 내어서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어서 미안했다면 지금은 엄마 아빠의 어린아이를 들킨 것 같아서 창피하다. 어쩔 수 없는 어른 아이였던가.


어젠 남편의 생일이었다. 생일파티를 계획하지는 않았었다. 미역국만 끓이면 될 것 같았다. 생일 전날 마트에 갔다 케이크 코너를 지난 가는데 남편이 케이크를 살 거냐고 물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우리는 주말에 시동생 부부와 캠핑을 갔었고 거기서 케이크를 사 축하를 해줬기에 또 할 필요는 없었다. 남편도 동생 부부와 조카들에게 축하를 받아 더할 나위 없는 생일 기념식이 되었을 것이다. 이미 생일파티를 했는데도 남편은 생일 당일에 축하를 받고 싶었던 걸까.


낮에 남편의 생일 미역국을 끓이려 미역을 불리다 케이크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네의 유명한 베이커리 카페가 있어 거기서 케이크를 사려했는데 문의해보니 다 팔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다 래터링한 케이크를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당일 예약이 안될 거라 생각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한 시간 안에 받을 수 있었다. 가격은 일반 케이크보다 배로 비쌌다. 남편이 좋아하지 않으면 어떡할까, 비싼 거 샀다고 타박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남편이 좋아해 주었다.


무심히도 티브이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케이크에 초를 꽂아 불을 붙여 아이들과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다가갔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빠의 생일 축하합니다". 남편은 생각보다 정말 좋아했다. 초를 불고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세 딸과 함께 케이크를 앞에 두고 웃는 남편을 보니 뿌듯했다. 살짝 어색해 보이는 미소였지만 그의 진짜 마음이 보였다. 나는 그의 가슴속에 있는 어린아이에게도 축하를 건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