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난, 글을 쓴다.
오늘도 난, 나를 믿고
by 이경진 봄날의 달팽이 Jul 29. 2022
아침 11시 14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빈 화면을 바라본다. 나는 누구인지, 지금 행복한지 나에게 묻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급 당긴다. 의식의 흐름대로 나를 믿고 써 내려간다. 유명 에세이스트들의 진솔하고도 명확한 글쓰기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이젠 낭만, 환상이 아니라 현실 속 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줄곧 그런 생각을 한다. 글쓰기로 업을 삼아본 사람도 아닌 내가 어떤 허상을 쫒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난 하루라도 잠시라도 글쓰기를 잊지 않았다. 잠을 자려 누웠을 때 수많은 생각이 오간다. 밤은 짙었고 몸은 피곤한데 마음 한편은 불편하다. 혼자 살았다면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았을까. 꿈만 바라보며 뛰어갔을까. 아님 그냥 되는대로 살았을까.
한편으론 내가 엄마이기에 지금의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 자신만 책임지고 살면 딱 필요한 만큼만 벌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을 텐데. 오히려 지금이 더 간절해진다.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서 독립된 어른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때론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그냥 그렇게 놔두기로 했다.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고 나 자신을 믿는 만큼 매일매일 글을 향해 걸어가기로 했다. 수많은 작가님들이 그러하듯 성실히 직장을 다니 듯 나의 속도에 맞추어 걸어가 보자고. 뛰어가다 다치면 아이들을 돌볼 수 없고, 나 자신도 위태해질 테니.
고군분투하며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언제쯤 난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을까. 아마 몇 해 동안은 쉽지 않겠지. 잠자리에 누워 남편의 푹푹 쉬어 대는 한숨소릴 들으니 문득 무서워졌다. 아이들과 함께 자는 나는 남편이 곤히 잠들기를 기다린다. 그래야 내 마음도 편하니까. 결혼 전 온전히 편히 기댈 수 있는 나무를 기대했던 나는 결혼 한지 9년 차가 되어서야 그건 바라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두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어도 각자의 독립이 중요하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독립이라는 말이 단순히 혼자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 자신의 분명한 정체성을 알고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사랑하면서도 밖을 보며 나아가고 싶었던 나는 살림에만 집중을 하지 못해 남편과 나의 사이가 늘 삐그덕거렸다. 남편은 내게서 주부로서의 역할을 기대했고 그게 내 할 일이니 똑바로 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남편은 그렇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남편은 가부장적인 느낌을 온전히 물려받았다. 본인도 부모님이 일하러 가시면 혼자 밥해먹고 청소도 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도 결혼을 하니 그것이 모두 아내의 몫이라 여겨 본인의 기준대로 해놓지 못하면 화를 냈다. 이해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비이성적인 모습이 많았다.
그래서 난 독립을 꿈꾼다. 경제적인 독립을 이뤄 내 이름 세 글자를 또박또박 불러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누구 엄마도 아닌 누구 작가님. 혹은 선생님. 등등 나를 존중해 주는 곳에 가고 싶다. 그렇게 여보 소리 하나도 듣기 힘든 나여서 혼란스럽고 편안치 못한 가정에서 내 이름 석 자를 찾기 위해 독립된 나로 살고 싶다. 더 이상 내 가치관과 삶을 흔들어 대지 못하도록 단단해지고 싶다. 때론 무너지고 싶고 무기력하게 놔두고 싶을 때도 있다. 직관이 강한 나는 미래의 가능성이 중요하고 앞날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명확히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도 내 머릿속엔 문장들이 왔다 갔다 한다. 쓰고 싶은 내용과 제목이 내 앞을 지나간다. 평가 없이 오로지 나와 나의 글만 믿으며 지나온 시간들이었다. 부족하게 여겨지면 부족한 대로 툴툴 털고 또다시 글을 썼다. 글쓰기 강의도 들어보았지만 결국은 내 생각을 믿고 꾸준히 밀고 나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책 속 문장이 좋아도 책 내용이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다가와도 나 스스로 나의 생각을 펼쳐 놓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이었다.
내가 느낀 깨달음으로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해본다. 뛰어난 글솜씨는 아니어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에 안심했다. 그렇게 마음을 편안히 가졌다가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다시 위축되고 가라앉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를 믿어야 했다. 오로지 나만이 나를 믿을 수 있었다. 주변의 말과 생각은 나를 더 바닥으로 내 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믿음을 확인해야 했다. 내가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어야 했다. 현실로만 보면 끝이 보이지 않고 가능성 또한 보이지 않아 지레 겁먹고 포기했을 것이다. 끝도 없이 파고드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나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을 것만 같다. 다시 돌아갈 것만 같은 두려움으로 인해 포기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해 위축되고 가라앉기를 반복해도 오늘도 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