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이의 엄마로서가 아닌, 당신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내 이야기를 할 곳이 사라졌다.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이의 유치원 친구 엄마들이었고 만나면 하는 이야기들이 거의 아이들 이야기뿐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각자의 아이들 이야기나 시댁 이야기 일 뿐, 정작 엄마들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만남의 인연은 길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락이 끊꼈다. 어쩌다 그 엄마를 발견해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럼에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필요했고 다시 엄마들을 만났다. 대신 여럿이 아닌 1대 1의 만남이었다. 살짝 어색한 기운이 있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럿이서 만났다면 내 이야기를 할 수 없어 듣기만 했을 것이다. 사람 간의 만남에서 의미를 중시하는 나에겐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육아 외에 평소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했고, 내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졌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함께 나누고 싶었다.




작년 8월에 모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민간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수업이었다. 코로나19로 대면 강의가 아닌 비대면으로 진행이 됐다. 줌(zoom)으로 수업을 받았다. 줌을 접해보니 신기한 세상이 펼쳐졌다. 직접 만난 것도 아닌데 마치 실제로 모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의실 안에서 조용히 수업을 들었을 때와는 다르게 바로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실제로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처음엔 수강생이 20명 가까이 모여 학교에서 수업을 듣듯이 조용하게 듣고 있으면 될 것 같았다. 인기척 없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태도는 전혀 이곳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소장님이 말을 자꾸 걸어주셨고 조별로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전체 앞에서 발표도 해야 했다. 도구만 온라인이었을 뿐 소그룹 강의나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해야 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어야 했다. 존재감 없이 편히 들을 수 있을 거라 착각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민간 자격증 2급을 땄다. 새로운 경험이 되었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짜 나의 이야기를 했다. 과정을 마치고 나니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달하는 것이 재미있어졌다. 3개월 간의 여정이 금세 끝난 것 같아 아쉬웠다. 더 깊이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아이를 낳고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1급 수업을 진행한다는 공지가 떴다. 반가운 마음에 수업을 신청했다. 아이가 너무 어려 고민이 되었지만 협회 소장님은 함께 해보자 하셨다. 걱정과는 달리 아기는 내 품에서 세 시간의 수업 동안 쿨쿨 잠이 들어 어렵지 않게 마칠 수 있었다. 함께 1급을 들었던 수강생 수는 나까지 포함해 총 세 명이었다. 소수의 수강생분들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진짜 나를 꺼내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공부했던 협회에서 MBTI 심리적성 지도사라는 명의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계속해서 나의 이야기를 꺼내고 드러내면서 진짜 나를 알아가고 있다.


'엄마'라는 호칭이 소중하고 중요한 만큼 내 이름 또한 소중하다. 내가 무얼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잊지 않고 자신을 찾아가다 보면 아이들이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할 것이다. 아이들이 독립해 떠나가는 때에 자신의 이름도 떠나가지 않도록 붙잡아 두기를. 허전해진 마음을 두둑이 채워 넣을 수 있는 마음의 양식을 저장해 두기를.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공부'라는 기회가 내게 다가와 '나'라는 이름을 찾으라 한다. 누구 엄마 도 아닌 나 자신으로서.




가끔 남편이 장난스레 내 이름을 부른다. 오랜만에 내 이름이 들리니 어색하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누구 엄마로 불리는 때가 많아져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해진다. 엄마들을 만나도 그저 어느 아이의 엄마일 뿐 서로에 대해 알기가 어려웠다. 아이들 이름만 알지 엄마의 이름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묻지도 않는다. 내 이름 또한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거나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때 써넣을 뿐이다. 그리곤 물건이 들은 택배 상자에 쓰인 내 이름을 확인한다.


나는 오늘도 내 이름을 찾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린다.


"이름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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