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한 권 읽고 자고 싶은데 어쩌지.'
평소 야식을 즐기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잠을 깰 수 있을까 고민하다 시리얼 한 그릇이 생각났다. 가볍게 먹기 좋을 것 같다. 현재 시각 밤 11시 31분. 지금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난다 해도 막내가 일어나 놀고 있을게 뻔해 차라리 한두 시간 늦게 자는 게 나을 것 같다. 한두 시간을 버텨야 하는데 졸린 눈으로 책을 본다는 건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
가족 모두가 잠든 밤, 슬금슬금 뒤꿈치를 들고 걸어가 찬장을 살살 올려 시리얼을 담을 그릇을 꺼냈다. 그리고 시리얼이 있는 베란다로 갔다. 문을 열고 시리얼 봉지를 살짝 뜯어 그릇에 부었다. 봉지를 뜯다 소리가 크게 날까, 봉지를 뜯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시리얼을 담은 그릇을 선반에 놓고 냉장고 문을 열어 시원한 우유를 부었다. 미션을 완성하기 전 단계를 통과하고 마지막 미션만 남은 듯 비장히 숟가락을 들고 방으로 향했다. 마치 영화를 찍듯 나만의 장면을 만들었다. 주인공이 된 마냥. 시리얼 한 그릇 먹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살이 안 찌기 위해 그토록 피했던 고칼로리의 야식 대신 택한 시리얼은 참 맛있다. 당 충전을 한 듯 바짝 힘을 내기에 충분했다.
감독도 작가도 주인공도 나. 사소해 보이는 일상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새로운 시선으로 시리얼을 갯 하는 장면을 만들어 낸다. 시리얼을 먹으며 오늘도 변함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를 발견한다. 매번 같은 장면이었지만 오늘 만은 특별히 시러얼 한 그릇으로 그럴듯하게 만들어 낸다. 책을 출간해서 작가가 아닌, 일상이 작가인 나로서. 온전히 글쓰기에만 집중하여 새로운 생각들을 생산해 내는 나를 작가로서 인정한다. 지금 당장의 꿀 같은 결과는 내게 없더라도 언젠가 내 글에 호기심을 가지고 제안을 해주는 곳이 나타날 거라 믿는다. 고로 나는 쓰기 때문에 작가다.
많은 책을 쓰고도 여전히 습작을 한다는 게 쑥스럽지만, 사실입니다. 맞아요, 저는 습작생이랍니다. 제가 엄청나게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매일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뻐합니다. 작가란, 단지 책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 글을 쓰며 온갖 희로애락을 느끼는 사람이 아닐까요. 매일 글을 쓰며 나 자신을 조금씩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 가고, 식물의 나이테처럼 조금씩 자신을 갱신하며, 마침내 언젠가는 깨달음의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아름드리나무로 자라게 될 사유의 묘목을 키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더위를 견디지 못할까 걱정했던 여름이 무사히 지나가고 있다. 더위가 살짝 지나간 여름밤, 졸음이 찾아와 내 눈을 감기려는 순간 책을 읽으며 가슴속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의 파도를 느꼈다. 내가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 알게 됐고 글 쓰는 기쁨을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자신을 부족하다 탓할 필요도 없고 잘 쓴 글을 보고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그저 쓰고 싶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새로운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나'로 존재하는 지금, 쓸 수 있어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