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라면 한 그릇의 자유

새벽 4시, 라면을 끓여 먹고 야무지게 밥까지 말아먹었다. 후식으로 쿠앤크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라면은 내게 자유의 상징이다. 첫째 둘째가 모두 학교와 유치원에 가있는 사이 셋째 낮잠시간, 아주 찰나의 쉬는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호사이다. 혹은 오늘처럼 나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진 새벽시간에, 자유의 시간임을 확인하기 위해 라면을 끓여 먹는다. 건강 상의 이유로 라면을 일주일 혹은 열흘에 한 번 먹는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사실 끓여 먹을 생각은 없었다. 어제저녁 남편이 집에 돌아와 자신의 방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을 보고 새벽에 먹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모두가 다 잠들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아무래도 자기 전 야식은 수면을 방해할 것 같아 새벽에 먹기로 결정했다. 나는 자기 전 세네 시쯤 일어나길 마음속으로 바라고 잠이 들었다. 11시쯤 잠이 든 나는 거짓말처럼 딱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완전히 잠에서 깨지 않은 상태라 비몽사몽이었지만 더는 시간을 미루지 않고 책상에 앉았다. 살짝 졸린 눈으로 책을 읽으며 필사를 했다. 그러다 글이 써지면 글을 썼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네 시가 되었다. 더는 졸린 상태로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결심한 나는 조용히 베란다 문을 열고 라면을 가져와 냄비에 물을 부어 전기레인지 위에 올렸다. 지이이 하는 전기가 돌아가는 소리로 온 가족이 깰까 조마조마 한 마음으로 4분을 기다렸다. 바글바글 라면이 끓는 동안 냉장고에서 김치와 갓김치를 꺼내 방안에 있는 상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그런데 웬걸, 라면을 방에 갖고 와 반찬 뚜껑을 열었는데 갓김치가 아니었다. 다시 냉장고 문을 열어 찾아보았지만 반찬통에 덜어 놓은 갓김치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김치 냉장고 문을 열어 큰 김치 통 안에 있는 갓김치를 작은 반찬 통에 덜어 방으로 가져왔다. 그 사이 라면을 불어있었다.


다행히 국물은 뜨거웠고 너구리 라면이 살짝 가락국수 면이 되었지만 나름 만족하며 라면을 먹었다. 자유를 누리는 기념으로 먹기 전 사진을 찍었다. 별것 아닌 그 흔하디 흔한 라면인데 내게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니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맛은 있었지만 먹는 내내 남편이 자고 있는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건 아닌지 귀를 쫑긋 세웠다. 제발 깨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라면을 끓이러 가기 전 남편의 방 문을 살짝 닫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눈치 보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9년째 나는 눈치를 보며 살고 있다. 그동안 내게 자유의 상징이 되어주었던 음식들이 있었다. 라면, 치킨, 짬뽕 그리고 탕수육... 모두 배달 음식이다. 남편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다음 날, 나는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낸 후 먹고 싶었던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 배달 용기를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가 놓았다. 평소 남편이 퇴근 후 쓰레기를 곧잘 버리는데 분리수거할 용기를 보며 내가 낮에 무얼 먹었는지 묻곤 했다.


남편은 배달 음식을 사치라 생각하는 것인지 나 혼자 혹은 아이들과 시켜 먹으면, "넌 돈도 참 많다. 나는 10원 한 장도 아까운 사람인데, 주유비도 주지 않으면서..."라는 말을 한다. 맛있었냐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늘 자신을 빼놓고 먹는 것처럼 말한다. 돈이 많아서 시켜 먹은 것도 아니고, 밥하기 싫을 때 아이들하고 시켜 먹을 수도 있는 것인데, 늘 이렇게 말하는 남편이 싫어 배달음식을 먹은 후엔 항상 음식용기를 바로 버린다. 때론 이런 내가 싫다. 왜 그리 숨겨야만 하는지, 내가 이리도 가치 없는 사람인 건지 나 자신에게 되묻곤 했다. 엄마에게 '엄마, 나 왜 이렇게 키웠어? 엄마도 나 이렇게 싫어했어?'라고 따지고도 싶었다. 남편의 눈치를 보는 내가, 다 엄마가 날 이렇게 키워서 그런 거라고 엄마 탓을 하고 싶었다.


성인이 되어 독립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는 결혼으로 독립을 꿈꾸었다. 편안하지만은 않았던 원가족으로부터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해와 지지를 받으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의 1년도 안 되는 짧은 연애를 마치고 결혼을 했다. 만나면서 남편이 내 남편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그 확신은 내게 불행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시댁 근처의 아파트에 살았었다. 시부모님의 도움으로 아파트를 전세로 살았다. 달콤할 것 같았던 신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서로 다르게 살아왔던 세월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막내딸이었던 나는 철이 없었다. 그저 가족이 될 거라 믿었던 내가 바보였다. 며느리로서의 삶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결혼을 했으니 효자였던 남편이 얼마나 답답해했을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당연히 가부장적인 것도 싫고 시댁의 문화를 따르는 것도 싫었지만 그마저도 남편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이니, 남편을 무작정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이혼 위기까지 갔던 우리는, 시댁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혼 결심 후 떨어져 지내며 누렸던 해방의 시간은 지나갔다. 남편 몰래 크로스 핏과 필라테스, 복싱을 다니며 운동으로 스트레스와 살을 날려 버렸지만 계속 훼방을 놓는 남편으로 운동마저도 포기했다. 집에서 하던 홈트도 층간소음으로 하지 말라 하고 운동도 코로나19로 다니지 말라 하고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반대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것이었지만 내게 자유가 박탈된 기분이었다. 남편이 출근 후 나름 해방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만 남편이 돌아오면 알게 모르게 내 심장은 쪼그라들었다. 남편의 말에 말대꾸를 하거나 언성이 높아지면 그는 나를 제지했고 열이 오르면 손이 올라가기도 했다. 바로 어제도 그랬다.


실제로 나를 때리진 않지만 그의 언어폭력은 나를 아프게 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물론 나도 잘한 건 없다. 그의 말에 화가 나 하지 말아야 될 말을 해서 그를 헐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를 이해해보려 하는데도 그의 말을 들은 그 순간엔 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잔소리가 심한 날엔 아이들과 내가 한편이 된다. 쓰라린 감정을 아이들이 알아준다. 정말 하고 싶지 않았던 말들도 아이들에게 하고 만다. "너희도 엄마가 이렇게 사는 거 별로지? 커서 엄마처럼 안 살려면 공부도 피아노도 열심히 해야 해. 자기 일이 확실하게 있어야 해. 힘이 있어야 한다고. 결혼은 독립된 인격체를 가진 두 남녀가 만나 가정을 꾸리는 거라고. 절대로 누구 하나 지는 것이 결혼생활이 아니야." 아직 9살밖에 안된 딸아이에게 별 말을 다한다. 또래보다 눈치가 빠르고, 눈치도 많이 보는 딸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한번 화가 나면 무서워지는 남편, 그리고 싸움이 잦았던 우리 부부였기에 아이는 당연하게도 커가면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부가 주고받는 명언 중의 명언이 있다.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혼 위기가 지나간 후에도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남편은 화가 나면 화를 그대로 말로 표출했고 아이들과 내가 받는 상처는 아물지를 못했다. 딱지가 앉아 떨어지기도 전에 그가 폭발해 버리는 날이 다시 찾아왔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고 냄새에 예민한 그는 며칠 전부터 내게 놀이방에 쌓아둔 인형과 읽지 않는 책을 버릴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막내의 육아로 힘든 나는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남편은, 터져버렸다. 자신의 상황과 생각만 보이는 남편은 내가 하지 못한 이유를 듣지 않았다. 오히려 지적받거나 설명을 듣기 싫어하는 남편을 자극해 버린 것이다. 살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며 이기적이라고 나를 타박했다. 그 말을 들으며 기분이 나빠진 나는 언성이 높아졌지만 소리에 민감한 남편은 나의 말이 들리지 않고 큰 소리만 그에게 전달되었다. 그는 왜 소리 지르냐며 힘으로 나를 제지했다.


아무래도 난 그를 맞출 순 없을 것 같다. 우리 사이의 개선을 위해 심리를 공부하는 나를 무시하며 맹신하지 말라고 언어폭력을 가했기에 그 앞에선 절대로 공부 얘기를 해서도 안된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심한 시댁으로 인해 남편은 자연스레 남자의 말이 더 커야 하고, 명령하고 지시하는 것이 습득이 된 것 같다. 내가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와중에 나는 잠시나마 자유를 꿈꿨다. 라면 한 그릇의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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