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존재를 바라볼 수 있는 용기

너와 나는 서로 다른 욕구와 감정을 지닌 개별적인 존재이다.


자라나는 아이를 보면 볼수록 나 자신이 독립을 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아이가 자기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며 너와 내가 서로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느낀다. 원가족 안에서도 그렇고 지금의 나의 가정 안에서도 서로의 감정이나 욕구를 알아봐 주고 인정해주지 않는다. 울거나 떼를 쓰는 아이의 소리가 시끄러워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때론 하고 싶은 것도 상황에 따라 부모가 제지를 한다. 하물며 나조차도 하고 싶은 공부가 있고 먹고 싶은 것이 있는데, 어떻게 아이의 욕구를 무시해도 된단 말인가. 나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인정받은 경험이 많지 않아, 나를 자세히 드려다 보는 시간보다 상대에게 눈치를 보는 날들이 더 많았다.


어젠 남편이 기숙사에서 자고 오는 날이어서 밤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싶었다. 책도 읽고 글도 쓰며 새벽 1~2시까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챙기며 에너지가 방전이 되었는지 몸은 무겁고 졸음이 쏟아졌다. 조금 자고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아침에 아이들이 깨어난 시간에 일어나게 되었다. 평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독박 육아의 현실로 자유롭게 시간을 쓰지 못함에 늘 아쉬움이 가득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온전히 나의 시간을 갖길 원하지만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막내 아이로 인해 주말도, 남편이 있지만 독박 육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남편도 열심히 평일에 일했으니, 남편에게 맡길 수도 없다. 아이가 남편에게 잘 붙어있으면 내 시간을 갖고 싶다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계속 엄마만 찾아서 부탁할 수가 없다. 남편이 이해해 준다면 울어도 맡길 텐데 남편 성격을 알기에 그럴 수가 없다. 스트레스가 첫째 둘째 아이에게 갈까 걱정이 되어 온전히 남편에게 맡길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나는 '나'를 나를 찾고 싶고, 어느 하나에만 올인하지 못해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아이는 아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가 가진 욕구와 감정은 다르다. 그걸 서로가 알아주지 못해서 자꾸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는 것 같다. 아이를 돌보며 힘들고 지치는 상황이어도 아이를 안고서라도 공부를 하는 나를 보면서, 더 이상 '나'라는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나라는 사람은 있지만 나의 감정과 욕구는 없어야 했다. 이젠 나도 있고 나의 욕구와 감정도 있다. 남편이 없는 밤, 아이들을 재우고 티브이를 보면서 아무 의미를 발견할 수 없고, 그 시간마저 아깝다는 걸 느끼면서 나의 욕구가 무엇인지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지만 피곤하고 졸려 할 수 없고, 계획된 것을 하지 못해 아침시간이 괴로웠다. 이 마음을 어딘가에도 할 수 없어 답답했다. 말할 곳이 있다 해도 아이처럼 징징댈 수도 없었다. 그건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에 꾹꾹 눌러 참아야 했다. 대신 이 마음을 메모장에 기록했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들을 적어 내려가면서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감정과 욕구를 인정받지 못하고, 욕구를 실현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나를 보니 모두가 다른 감정과 욕구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서로가 다른 개별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직시하게 됐다. 그래서 개별적인 존재인 '나'의 발전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나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이를 전적으로 돌봐야 하는 책임이 있어도 나를 찾아갈 시간을 마련해야 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이젠 나 자신은 없는 희생이란 말은 나에게 더 이상 고귀한 단어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런 시간이 내게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기대지도 못하는 상황을 참고 참아내 글로 풀어내고 표현해 내라고. 작가는 사유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한데 이렇게 꾹꾹 눌러온 감정들이 바로바로 글로 이어지는 것을 보니 지금의 상황이 작가로서 발전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어 괴롭지만 글로 풀어내고 있으니 지금의 시간도 필요했던 시간이었다고 나 스스로를 다독인다.

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럼에도 난 지쳐갔고 힘이 들었다. 어딘가에 토로하고 싶었다. 지금의 내 감정과 고민을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징징 대는 내가 될까 두려웠다.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성숙하지 못하다고 지적당할 것 같아 참아냈다.


그냥 나 너무 힘들다고 말하고 싶다.

'나 힘들어요'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다' 란 책 제목이 떠오른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해야 했다. 기댈 곳이 없어 괜찮은 척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만의 힘듦을 안고 살고 있으니, 나도 참아야 했다. 나 혼자만 결혼 생활하고 있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만 독박 육아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만 힘들다고 표현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해야 하지만

때론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싶다.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


동글동글한 아기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이는 상대의 눈과 마주쳤을 때 눈을 피하거나 깜빡이지 않는다. 빤히 쳐다보는 아이의 눈동자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과도 눈을 마주치며 사랑의 인사를 할 수 있었으면 했다. 눈동자 속에 비치는 서로의 모습에서 다르지만 같은 우리를 만날 수 있다. 살아온 배경은 다르지만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상대의 눈빛을 보면 슬픈지 힘든지 기쁜지 무엇을 망설이는지 알 수 있다. 내 마음의 창을 열면 상대의 마음이 보인다. 마음속의 고민을 혼자 쌓아 놓다 보면 해결이 되지 않아 자책을 하기도 한다. 우울한 마음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이런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터놓고 상대가 나와 눈을 맞춰준다면 해결책을 쥐어 주지 않아도 해결방법은 곧 내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를 파고드는 부정적 감정은 상대에게 화살이 되어 꽂힐 뿐이다. 결코 상대로부터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내 감정과 욕구에 집중해 나를 드려다 보면 결국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알게 된다.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면 된다. 상대를 탓하는 말이 아닌 지금 나의 불안과 걱정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한다면 금방 해결될 수 있다. 서로의 다른 점으로 인해 상호보완이 될 것이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힘들거나 지칠 때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고 잠시나마 쉼을 줄 수 있다면 내 안을 무겁게 짓눌려 고통스러웠던 마음들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상대와 눈을 마주치며 함께임을 느끼고, 용기를 낼 수 있다.


아기를 돌보다 보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이 있다. 모든 정신이 아이에게 쏠려 있어야 하니 자신을 돌보거나 자신의 일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다. 사랑하는 자녀이지만 때론 지치고 힘들어 사랑스러운 아이의 눈을 맞추는 것을 잊기도 한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이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한다. 그럴 때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고 눈을 맞춰 준다면 힘을 내어 아이를 돌보고 자신의 미래도 계획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내밀어 준 그 손과 진심 어린 칭찬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도 겪어냈는데 너도 못할 것 없지. 어차피 시간은 지나가. 애들 크면 아쉬울 테니 많이 안아줘.' 이런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감의 말이 어렵다면 그냥 따스히 눈을 쳐다봐 주며 등을 토닥여 주어도 된다.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눈빛과 체온으로 상대를 위로하고 힘을 줄 수 있다.


늘 성장을 꿈꾸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기를 바랐다.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그런 꿈은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뒷 따르기 마련이다. 그 도움을 청하고, 서로 배려하는 용기를 발휘한다면 내 미래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난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해맑게 웃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따스한 눈빛과 포옹, 사랑한다는 말로 아이는 더없이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금 당장은 온종일 아이를 돌봐야 하기에 내 일상이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아이를 통해 꿈을 꾸고 성장해 나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건 아이와 내가 눈을 마주치며 사랑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대도 오늘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용기를 발휘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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