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끝까지 쓰는 용기를 발휘했다.

여러분이 가장 절실하게 아파하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고, 그 주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먼저 공감을 얻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 보세요. 그럼 반드시 응답이 올 거예요. 당신의 가장 아픈 상처야말로 가장 눈부신 창조의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이기도 하니까요.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김영사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진이 많다. 여러 사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 한 장이 있다. 유치원에서 찍은 사진으로 고개를 숙인 채 양팔을 벌리고 균형 잡기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굉장히 자신 없어 보이는 표정이다. 나는 왜 그리 어려서부터 자신감이 없었던 걸까. 그 이유를 부모님께 묻고 싶지만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다. 부모님은 나의 성격이 어떤지 자세히 알고 계시기나 하셨을까. 먹고사는 게 바빠서 자식이 어떤 표정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지 못하셨던 걸까?


언제부턴가 가수가 되고 싶었다. 무대 위에서 자신 있게 춤추고 노래하는 보아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외적으로 아무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기획사에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사실, 이건 너무 부끄러운 나의 과거라 어디 가서도 말하지 않지만 여기서만 밝혀보겠다.) 예쁘지도 않고 노래를 잘하거나 춤을 잘 추지도 못했는데 sm, jyp 등의 대형 기획사부터 이름 모를 기획사까지 주말마다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심지어 대학생이 되어서도 보러 다녔다.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되지도 않는 춤을 심사위원들 앞에서 선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나에게 깊은 관심을 주지 않으셨기에 주목을 받고 싶은 꿈을 꿨던 것 같다.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가능성도 제로인 내가 현실의 나를 보지 못하고 허상을 꿈꾸었던 것 같다. 중학생 때부터 여기저기 참 잘도 다녔다. 부모님은 내가 어디를 가는지 묻지도 않으셨다. 그저 주말만 되면 집을 나서 오디션 장으로 향했다. 스마트 폰 속 지도 어플을 보며 그곳을 찾아갔던 것도 아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오디션 장을 찾아갔던 것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이다.


고개를 숙이고 다니고, 반에서 친구도 별로 없던 나였고 심지어 따돌림도 당해봤는데 어떤 용기로 무대를 찾아 헤매었던 것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대학교 졸업 후에는 아나운서를 꿈꿨다. 수강료가 3개월에230만원인 아나운서 학원을 다니기 위해 부모님께 눈물로 호소했다. 제발 다니게 해달라고 무릎 끓고 빌었다. 이 때도 난 공부를 잘하거나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었다. 아나운서 시험에 필수로 제출해야 하는 한국어 능력시험 점수도 굉장히 낮았다. 외적인 조건이 좋지 않았는데도 무슨 깡이었는지 공중파부터 지방 방송국까지 면접을 보러 다녔다. 부산, 대구 등등. 이땐 부모님이 함께 다녀주셨다. 새벽부터 메이크업을 받고 카메라 테스트용 정장을 빌려 입고 아빠 차를 타고 달리고 달렸다. 당연히 결과는 뻔하니 말하지 않겠다.


그놈의 무대 욕심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방송국 시험은 포기하고 외주제작사에서 리포터를 했다. 신문제작도 같이 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이때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갔었 던 것 같다. 편집장님이 넌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아쉽게도 제작사가 망해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공연기획사에서 3개월간 인턴으로 일했다. 당시 나는 직장인 연극을 하는 극단에 들어가 뮤지컬, 연극을 배워 지인들 앞에서 선보였다. 대학로 연극제에 참가해 대학로 극장에서 연기를 하기도 했다. 극 중 내가 맡은 역할이 눈물도 흘려야 했는데 티켓부스에서 공연 시작을 기다리며 눈물 흘리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때 일하던 공연기획사에서 내가 공연에 관심 있어하는 걸 아시고 배우로 연습을 해보라 하셨다. 어린이 영어 뮤지컬이었는데, 노래는 립싱크였고 가장 중요한 건 춤이었다. 춤을 배워본 적도 없는 나는 일주일 만에 잘렸고 회사도 바로 나오게 됐다.


그 당시엔 내가 왜 이리도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무대에 서고 싶었고 관심을 받고 싶었다. 잘 되어서 부모님한테 사랑도 받고 싶었다. 부모님은 별 관심 없으셨다. 그래서 난 관심받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았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가수가 되고 싶었다. 둘째 아이가 아기였을 때 보컬 선생님을 집으로 불러 일주일에 한 번씩 노래를 배웠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을 했을 때도 번 돈의 일부로 실용음악학원에서 보컬 레슨을 받았다. 배우면서 긴장을 많이 했는데도 노래가 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 꿈을 완전히 놓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내 모든 생각과 감정을 쏟아부었고 다른 잡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을 땐 당연히 책을 내고자 하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그건 글쓰기를 계속할 수 없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걸 깨닫고 글쓰기에만 집중을 하고 있다. 더 잘 쓰고 싶고 더 잘 표현하고 싶어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찾아 읽으면서 글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사유하는 중이다. 내가 왜 쓰고 싶은지, 무엇을 쓰려는 건지 알기 위해서 무작정 쓰고 있다.


세 아이를 돌보며 힘들었던 나를 잊어버리고 새벽이 되도록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 살림을 하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글쓰기로 가득하다. 어떤 내용을 쓸 것인지에 대한 생각부터 엄마들을 위한 글쓰기 강의를 하고픈 생각까지 다양하다. 나는 워킹맘이 아닌 전업주부이니, 글쓰기로 성과를 내게 된다면 전업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강의를 하고 싶다. 가족만을 바라보던 삶에서 나를 바라보고 찾을 수 있는 삶이 되도록, 조금은 시선이 세상을 향할 수 있도록 글쓰기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 나도 글쓰기를 통해 치유하고 꿈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지 아니한가.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내가 왜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만 했는지, 그런 내가 왜 무대를 꿈꿨는지 깊이 들여다보려 했는데 오늘도 글쓰기에 대한 사랑으로 글을 마무리하게 됐다. 두서없는 글인데도 누군가 끝까지 읽어주고 공감해준다면 오늘 글쓰기도 성공?이라 말하고 싶다. 여러 번 반복해 읽어보고 다듬어야 할 테지만 날 것 같은 그대로의 글이 좋다. 이 글의 모습도 나의 모습일 테니 부끄럽고 싶지 않다. 앞으로 다양한 책을 읽으며 글쓰기 방법론에 대해서도 나누어 보고자 한다. 나의 글이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공유하면서 누군가에게도 희망의 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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