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서

오늘도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고 팔을 어루만졌다. 춥진 않은지 아이의 체온을 손으로 느꼈다.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쌩쌩 분다. 하늘은 번쩍번쩍 천둥이 친다. 깜깜한 밤 잠든 세 아이를 바라본다.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밤새 편안히 자주기를 기도 한다.

이젠 더 이상 투정 부릴 수도 없는 나이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다. 언제나 나 자신보다 아이들과 남편을 먼저 챙겨야 한다. 현모양처도 현명한 엄마도 아니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한 믿음으로 살고 있다.


잠들고 싶지 않은 밤이다. 온갖 생각과 잡념들로 쉬이 잠들지 못할 것 같다. 누우면 바로 잠이 들 것 같지만 자고 싶지가 않다.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다. 숙제를 덜 끝낸 것 같은, 과제가 이해되지 않아 끙끙대고 있는 느낌이다. 내 안에 해결되지 않는 감정들이 너무 많아서 그걸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밤이다. 당장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누군가 나를 다그치는 것 같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리도 늘 끙끙대는 걸까.


대중 앞에 내 글을 내세우기 위해선 글이 명확해야 하고 쉽게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추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걸 알면서도 언제나 내 글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할 것 같다. 다 이해되는 내용이어도 특별함이나 삶에 대한 메시지가 없으면 너무도 평범한 일기가 되어버린다. 어떻게든 많은 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그 바람이 희망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어 글을 쓰고 나서도 뿌듯함 보단 아쉬움이 더 크게 남는다. 오늘도 실패한 글이 될 것 같아 마음 안에 돌 하나를 얹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무겁고 진지하다. 사람의 힘으로도 들 수 없는 초대형 돌로 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다.


잘하고 싶고 관심받고 싶어서 글쓰기에 오기가 생긴다. 갖고 있지도 않은 재능을 어떻게든 이겨보려 애를 써보지만 올라갈 수 없는 나무를 바라보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자꾸만 해내지 못할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나를 의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살면서 별다른 성취를 해보지 않아서 허튼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혀 나를 믿지 못한다.


오로지 내가 나를 이겨냈던 때는 세 아이를 낳았던 순간이다. 살면서 다치거나 아파서 치료를 받았던 적이 없었는데 세 아이를 낳으면서 세 번이나 배를 갈랐고 다시 꿰매었다. 수술 후 마취가 풀리면서 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옆으로 돌아 눕는 것조차 쉽게 할 수 없었다.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지는 못했지만 12시간의 진통도 겪었고 수술 후 수술부위의 고통도 겼었다. 그 어떤 세상의 고통보다 더 한 고통이라 여길 만큼 커다란 고통이었으니 웬만한 일은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난 늘 불안과 안정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멘토가 있기를 소망했다. 누구보다 나를 걱정해주고 칭찬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기를 바랐다.

현실은 내 소망과는 다르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사람은 없었다.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잘하고 있다고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라고 응원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오로지 글쓰기에 의지할 뿐이었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추측하고 또 추측할 뿐이었다. 그 어떤 이도 아닌, 내가 나를 믿어야 했다. 내가 나를 칭찬해주고 위로해주고 들어주고 공감해 주어야 했다.


책을 읽다 울컥 눈물을 쏟게 한 문장이 있다.


세상은 참 이해할 수 없어요. 여전히 모르겠어요. 조금 알겠다 싶으면 얼굴을 철썩 때리는 것 같아요. 네 녀석은 하나도 모른다고.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문학동네 2020) 중에서


직접 이 책을 읽은 건 아니다. 요즘 한창 읽고 있는 봉현 작가의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 라는 책에 인용이 된 문장이다. 무언가 답을 갈구하고 있던 내가 이 글을 보자마자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열심히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글이 도대체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마음이었다. 다 아는 듯 글을 썼지만 넌 아무것도 모른다고 글이 나에게 혀를 끌끌 차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이해받았다 생각했는지 답답한 내 마음을 알아준 것 같은 느낌에 나를 향한 안타까움이 더해져 눈물을 쏟았다. 왜 이리도 열심히 하는 것인지 무엇을 바라고 이리도 희망을 찾는지 답답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내게 해답을 줄 문장을 찾고 또 찾았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의 수다는 내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야기하는 즐거움으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있는데 그러질 못했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마음에 맞는 소수의 친구들과만 어울렸다. 그러다 결혼을 하니 주변엔 내 감정을 드러내고 들어주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내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그런 사람은 드물지만 그래도 한 두 명씩 인연을 이어나간다. 완벽히 내 마음을 다 꺼내지는 못하지만 늘 혼자인 것 같은 내게 혼자가 아닌 느낌이 들게 해 준다. 앞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공유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며 만남을 이어 나간다.


어느 정도 마음이 맞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도 내 마음은 그리 가벼워지지 않는다. 멘토가 있다면 묻고 싶다. 글쓰기가 원래 이렇게 혼란스러운 건가요? 아님 내 마음이 잡히지도 않을 무언가를 바라고 유난히도 그에 대한 답을 찾길 원하는 걸까요? 쓰면 쓸수록 여럽고 생각이 많아져 글쓰기를 멈출 수가 없다. 나는 계속 사유해야 하고 긴 사유 끝에 답을 찾아 나가야만 한다. 고민의 답 저자이신 글배우님은 하루에 8시간 이상 걸으신다고 했다.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신다고. 그만큼 글쓰기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내가 아닌 상대를 향한 글이어야 하니까. 모든 책 속의 글은 쉽게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글 쓰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오래오래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는 글은 그저 쉽게 재능만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나에게 행복이다.

(출처-글배우 인스타그램)


현직 작가들도 글을 쓰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니. 그래도 글을 쓰는 자체가 행복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왜 글을 쓰는지 수없이 스스로 질문했지만 이렇다 할 정답은 없었다. 다만 적어도 이 책에 대해서는 알 것 같다. 내 글이 나를 살리고 누군가의 삶에 위로와 응원이 된다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는 데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계속 쓰고, 계속 살아가고 싶어 질 것 같다.


-봉현,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 에필로그 중에서

결국 글을 쓴다는 건, 책 쓰기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됐다. 쉼 없이 주변을 관찰하고 나를 들여다 봄으로써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내 글이 나를 살리고 누군가의 삶에 위로와 응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 또한 계속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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