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경진 봄날의 달팽이 Sep 6. 2022
끝이 나질 않는 음악 듣기. 시간 가는 것도 모르고 이어지는 유튜브 동영상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 건가. 좋아하는 가수의 최근 라이브 동영상을 보고 듣느라 한 시간이 훅 지나갔다. 인터넷은 왜 이리도 느린 건지 버퍼링이 걸려 동영상이 제대로 재생될 때까지 기다리느라 제대로 감상한 시간까지 합치면 한 시간이 넘는다. 오늘까지는 그냥 걱정 없이 티브이를 보며 맛있는 음식도 먹고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 동영상도 보고 듣기로 작정했다. 글을 쓰겠다는 욕심도 내려놓고 그저 즐겼다. 밖은 태풍 때문인지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밤새 내리던 비도 그쳐 날이 맑게 개였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잘 되고 싶은 마음도 잠시 내려놓고 마음껏 놀고 싶었다.
아기는 한 시간이 넘도록 낮잠을 자고 있다. 중간에 뒤척이다 일어나 놀 것 같더니 내 품에 안겨 토닥여주니 다시 잠이 들었다. 땀을 흘리며 자던 여름이 지나가고 어느새 쌀쌀해져 긴팔 옷을 입고 잠들었다. 그 위에 얇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시원한 공기로 인해 아기는 더 길게 낮잠을 잔다. 덕분에 나는 길게 놀고 있다. 팽팽. 설거지거리도 쌓아놓고 긴 식탁 의자에 앉아 벽에 기댄 채 귀에는 무선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듣다 보니 내 귀에 문장이 빙빙 돌았다. 듣고 있던 음악이 끝이나도 아이는 계속 잠을 잤다. 얼른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에 들어가 내 귀를 맴돌던 문장을 써 내려갔다.
'쉼'에 대해 써 내려가고 싶었다. 지난주 자격증 시험을 본 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놀고 싶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듣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좋아하는 티브이도 실컷 보고 싶었다. 그런데 티브이는 생각보다 재미없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봐도 흥미로운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1박 2일을 보게 됐고 좋아하는 가수가 딘딘의 친구로 나오지 않는가! 예능 프로엔 얼굴을 잘 내밀지 않았던 가수라 꽤나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다. 좋아하는 짬뽕 국물에 좋아하는 오징어를 넣어 끓이면서 야무지게 먹다 방송이 끝이 났다. 아쉽게도 방송시간이 너무 짧았다. 다음 방송에 이어서 나오려나보다. 꼭 챙겨봐야겠다.
매일매일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 무색할 만큼 글쓰기에 일주일 이상 손을 놓고 있었다. 책도 읽지 못했다. 지난 일요일에 있었던 자격증 시험과 모의 강의를 고민하고 준비하느라 글도 쓰지 못하고 책도 읽지 못했다. 그 시간이 내겐 큰 공백이었을까. 다시 글을 쓰려니 잘 써지지 않았다. 문장 문장이 잘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정말 글쓰기를 좋아했던 건지 의심마저 들었다. 책을 열심히 읽고 필사를 해야 하나, 그래도 글을 써야 할까 고민하다 결국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렸다. 아기를 온종일 보고 있어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없으니 항상 무얼 할지 선택해야 했다. 에라 모르겠다. 무작정 글을 써보자 결정했다. 그저 생각의 흐름대로 따라가 보기로 했다.
살짝 열어둔 창문 틈 사이로 거대한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티브이 속에서 보던 회오리바람이 연상이 됐다. 바람소리가 꽤나 크다. 태풍으로 인해 피해 입은 지역들이 있을 텐데 여기는 큰 바람 소리에 비해 아무런 피해가 없는 지역이다. 첫째 아이 학교에서 태풍으로 원격수업을 한다더니 잠잠해진 날씨로 인해 취소가 됐다. 원격수업을 희망하던 아이도 어느새 다시 신이 나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했다. 3학년이 되면 하교하는 시간이 늦어져 짜증이 난다고 반복하며 말하던 아이는 어디 갔는지 다시 해맑은 얼굴로 등교를 했다. 아이는 아이인가 보다. 화나고 울고 삐쳐도 금세 풀어진다.
낮잠에 빠진 막내는 한 시간이 넘고 두 시간이 다 되도록 깨지 않고 자고 있다. 엄마 쉬라고 도와주는 건지 참 고맙다. 덕분에 한 시간 동안 밥 먹고 음악 듣다 또 한 시간째 노트북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다. 글을 잘 쓰던 못쓰던 브런치 속에 나의 글이 100개를 향해가고 있다. 즐겨찾기를 해 두었던 유명한 작가님의 글이 올라왔다. 일기가 에세이가 되려면, 이라는 제목이 글이었다. 들어가 볼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보지 않았다. 물론 책 쓰기엔 정답이 있을 테지만 그저 내 생각의 흐름대로 써나가고 싶었다. 정답이 무어라고 결론 내리고 싶지 않았다. 이 글은 나의 것이니까 나답게 써 내려가고 싶었다.
최근엔 췌장암을 앓던 동서의 어머니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6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자격증 시험이 있던 지난 일요일, 시험을 보러 협회로 향해 달려가던 차 안에서 남편이, 동생의 장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스피커로 흘러나온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소리와 함께 들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까운 듯 멀게 느껴졌던 동서이지만, 동서가 얼마나 울고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이제 나이 서른여섯 밖에 안되었는데 어머니가 이리도 빨리 가셨다니 마음이 아려왔다. 2주 전 어머니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다고 해서 동서에게 편지를 쓰려고 편지지를 사놨었다. 그동안 계속 생각을 했다. 동서는 지금 어디 있을까. 집에서 병원까지 왔다 갔다 했을까.
동서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그날, 나는 아이들 때문에 집에 있고 남편이 시부모님과 함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동서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많이 울어 눈이 부었을까. 까만 상복을 입고 있는 동서는 얼마나 슬퍼하고 있을까. 나는 고민 고민하다 밤 12시쯤 동서에게 문자를 보냈다. 장례식장이니 잠을 자고 있지 않을 것 같았다.
'동서, 오늘 저도 함께 장례식장에 가고 싶었는데 아이들과 집에 있었어요. 오늘 아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를 들었어요. 비까지 내려서 동서 마음이 더 슬프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까지 눈물이 나더라고요. 언제쯤 연락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이렇게 남겨요. 충분히 아파하고 그리워하면서 어머니 보내드리고 동서 마음도 편안해지길 바랄게요. 곁에 있어 주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이라도 함께 하고 있을게요.♡'
문자를 보내고 시큰해진 마음으로 동서가 볼 시간이, 정신이 있을까 궁금해하며 답장을 기다렸다. 자고 일어나 핸드폰을 보니 답장이 와 있었다.
'네, 형님... 엄마 보내드리느냐... 정신없는 2주를 보냈네요...
아픈 마음 속상한 마음.. 복잡한 마음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지만.. 엄마 편히 보내드리려고요..
마음 써주시고 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례 잘 치르고 또 안부 전할게요.
형님도~ 이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엄마께도 안부 전할게요♡'
2주 동안 엄마를 보내드리느라 정신없이 보냈다니, 마지막을 엄마와 함께 보내느라 병원에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어머니는 어떤 모습이셨을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 머리와 가슴에서 동서에 대한 생각이 끊어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순간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아직 경험이 없는 난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하거나 그 감정을 다 알 순 없겠지만 이상하게도 동서에 대한 안쓰러운 감정이 나를 맴돌았다. 평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잘 받아들이지 않던 동서였는데, 문자 속 아픈 마음 속상한 마음, 복잡한 마음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다는 글을 보니 동서가 예전의 모습과는 또 달라지겠구나 싶었다. 2주간 숨이 멎어가는 엄마를 보며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었을까.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 함께 했던 기억들이 동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겠지...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는 걸 느끼게 해 줬던 시원한 바람과 축축한 비로 왠지 모르게 마음이 싸했었다. 계절이 바뀌고 찬바람이 불면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신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났다. 동서의 어머니가 가시지는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지만 그 예감이 현실로 이어질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그래도 몇 달은 동서 곁에 계실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비가 내리던 날,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다니. 자꾸만 동서의 마음에 내 마음이 얹어질 줄은... 글로 이런 내 마음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동서의 결혼식 날과 조카의 돌잔치에서만 뵈었었는데 어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부디 편안히 가셨기를... 늘 동서의 곁에서 동서를 지켜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