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이 영원인 것처럼

나를 가득 채우는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감성

알 수 없는 감성이 내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겨 가만히 생각에 잠기면 눈물이 차오른다. 흐르지 않고 내 눈 속을 채우다 사라진다. 아파트 바로 앞 학교 운동장에서 웅성 웅성 소리가 들려온다. 이상하리만치 그 소리마저 내 가슴을 메운다. 언젠가 사라져 버릴 이 순간이 아쉬워 지금을 붙잡아두고 싶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지금이 영원한 것처럼 온통 나에게만 정신을 쏟고 있다.


여름의 끝자락, 아니 가을의 초입인 이 계절, 긴팔을 입기엔 더워 반팔을 입고 있다. 아래는 긴 바지에 위에는 반팔,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선선함이 지금의 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적당한 이 온도는 나에게 딱 알맞은 적당한 감성을 선물해 주었다. 현재가 영어로 선물인 것처럼, 이 순간이 내겐 선물이다. 자꾸만 내 안으로 뻗치는 감성을 적당하게 조절해준다. 적당한 지금.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지금의 공기와 선선함으로 지금의 생각과 기분에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간혹 생각한다. 나는 왜 혼자인 것인지. 아이 셋과 남편. 부족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의 둘러싸임으로 분주한 시간이 내게 너무나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분주한 시간이 지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될 때 전혀 외롭지가 않다.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낸 후 데면데면했던 아이 엄마들과 간단한 인사로 헤어진다. 다 같은 엄마들이고 아이들을 같은 유치원으로 보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서로가 섞이지 못한 채 아쉬운 눈빛을 주고받는다.


분명한 내향형인 나이지만 때로는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적당히 느껴지는 사람 간의 온도가 적당히 나를 행복하게 한다.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각기 다른 모습들 속에서 우린 섞여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나를 감돈다. 결국 다들 각기 다른 길로 걸어간다. 그리곤 어김없이 찾아오는 막내의 낮잠시간, 나는 여유 있게 유영을 하듯 나만의 공간에서 헤엄을 친다. 자유형을 하다 배영을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내 얼굴의 잡티가 잘 보이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 안에서 울리는 메시지에만 집중할 뿐이다.


가끔은 걱정이 된다. 내가 어떤 환상 속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같은 공간과 동선으로 움직이는데도 간혹 낯선 느낌이 든다. 낯선 공기와 낯선 환경. 아주 오래전 보았고 느껴보았던 것 같은 느낌들이 샤샤삭 나를 지나간다. 그 낯선 느낌은 나를 살아있게 한다. 대학 입학 전 봉사로 다녀왔던 네팔과 인도에서 경험했던 시원한 바람이 생각난다. 머물렀던 숙소 위 옥상에서 느꼈던 선선했던 공기가 가끔씩 떠오른다.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나였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금을 부정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나에겐 그때의 낯선 공기가 나에게 새로움을 선사해준다.


아파트 같은 동 옆 라인에 사는 아이 엄마의 분주함과 조급함, 불안함이 떠오른다. 겉으로 보이는 아이 엄마의 알 수 없는 불안이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음이 보인다. 아이들의 유치원 하원 후 놀이터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잘 받아들이지 못해서 힘들다고. 남편과 자신 둘 다 고집이 세서 아이들의 이야기와 요구를 잘 들어주지 못한다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도 주로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겠구나.


차 한잔 같이 마실 친구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다시 무너졌다. 매일 아침, 오후에 만나는 그녀는 늘 변함없이 분주하고 조급해 보이고 불안해 보인다. 오늘 아침엔 나에게 집 호수를 물어보았다. 아이가 놀고 싶어 할 때 보내겠다며 아이에게 호수를 알려주겠다 한다. 그래서 난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오늘도 역시나 분주해 보였고, 어디를 가야 한다며 다음에 알려주겠다 했다. 그녀의 손엔 서류로 보이는 종이들이 가득 든 쇼핑백과 빈 페트병이 들어 있는 쇼핑백이 양손에 들려 있었다. 그녀의 손도 매우 분주해 보였다.


반면 나는 편안한 운동복 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유모차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아무리 집 앞이고 바로 들어간다 해도 늘 운동화나 앞이 막힌 신발을 신었었는데 어느샌가 나는 편안한 차림으로 동네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 어디도 갈 곳 없어 여유로움이 가득한 사람처럼 보였다. 어떤 누가 내게 만남을 요청하면 거절할 이유조차도 찾을 수 없는 사람 같았다. 언제든 약속에 응할 수 있는 사람 같이 보였다. 아침에 인사를 나누던 엄마들이 한 명 한 명 일자리를 구하더니 얼굴 보기도 어려워졌다. 커피를 같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엄마들이 사라지고 나는 또다시 혼자 남아 이렇게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린다.


나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을 때 바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는 나날의 연속이지만, 오늘 하루도, 지금도 지나가버린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이 생겨 나를 탓하고 싶어 질지라도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다루고 싶다. 이 순간이 영원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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