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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진짜 '나'를 찾아서

분주했던 주말과 공휴일이 지나고 나니 몸이 확 가라앉는 느낌이다. 새벽녘까지 과제를 하고 음악을 듣다 보니 새벽 3시에 잠이 들어 아이 학교 갈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일어났다. 일어나 보니 아이는 알아서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자기 나름 자신의 영역을 찾아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며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부모의 일정한 관심과 간섭이 필요하고 일상의 균형을 잡아주어야 할 때도 있지만, 아이는 스스로 잘해 나가고 있다. 꾸준한 관심과 사랑만 가져준다면 아이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어느새 엄마를 향해 미소 짓던 어린 아기가 이렇게 커버렸는지 대견하면서도 미안하다. 자신만의 자아를 찾아가는 아이를 보니 나의 자아는 어떤 모습인지, 그 속에 숨은 나의 본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평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에 빠져 한없이 가라앉고만 싶은 나는 마음껏 가라앉지도 못한다. 조용할 틈 없는 아이들과의 일상과 남편에 대한 시선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하다. 많은 기혼자분들은 공감할 테지만 유독 나는 남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모두가 잠든 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을 때에도 아이가 깨진 않을지 신경 써야 해서 온전히 음악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혹시나 남편이 아이의 우는 소리를 듣고, 울음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음악에 빠져 있는 나를 보고 화를 낼까 두려워 마음이 편치 않다. 예전에 남편이 자다가 음악을 듣고 있는 내게 다가와 이어폰을 던져버린 적이 있어서 항상 조심한다. 음악을 듣다가도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면 음악을 멈추고 아이들의 잠든 모습을 살핀다. 이렇게 나의 일상은 편안함과 불안을 왔다 갔다 하며 진정한 나는 어떤 모습인지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헷갈리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파고드는 하나의 감정이 있다. 약간의 우울감이다. 현대인이면 누구나 갖고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때론 나를 잡아두는 것 같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계획하고 행하려 할 때 내 마음속엔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는 두 가지 감정이 싸우면서 혼란스럽다. 결국 제자리에 남아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머릿속으로는 계획들이 줄을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한쪽에선 남편이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다. 이미 예매한 콘서트를 생각하며 남편이 가지 말라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은 이미 친정부모님이 봐주시기로 했는데 남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가 없어 불안하다. 콘서트는 12월 31일로 아직 3개월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긴장된다. 마지막으로 콘서트를 보러 간지도 2년이 넘었으니, 거기다 아직 아기인 셋째까지 있으니 아이들을 맡기고 갔다 올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다. 1년 중 단 하루,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자유로이 보내는 것도 이리 걱정이 되니 평소의 나는 얼마나 불안한 것인가 싶다.


가정폭력을 경험한 사람의 경우, 나 자신이 누구의 아들, 딸이라는 자긍심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심한 가정폭력을 당해서가 아니라 남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을 아이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엄마가 있어 든든하다거나 엄마의 딸이라서 너무 좋다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된다. 나조차도 어린 시절 '나 하나만 없어도'하는 생각을 줄곧 해왔었고 가족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에 나의 불안이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거절'의 말들을 하지 않으려 애쓴다. 아이의 말에 반박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꾸해줄 말이 없을 땐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만히 들어준다. '너의 말이 틀렸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라는 표현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이의 말에 무조건 네 생각이 틀렸다는 말을 했다면 지금의 아이들과의 관계도 없었을 것이다. 남편과도 아이를 훈육하고 혼내는 것으로 많이 싸우고 힘들었지만 이젠 아이에게 매도 들지 않고 화도 심하게 내진 않는다. 여전히 남편의 습관적인 말투는 남아있긴 해도 아이에게 매를 들고 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 뒤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있다. 남편은 일하고 돌아오면 티브이나 유튜브 삼매경이고, 셋째 아이가 아빠한텐 안겨있지 않으려 해서 오로지 아이의 육아가 나의 몫인 것 같아서 힘이 든다. 아이를 사랑하고 그래서 아이에게 힘든 티 안 내려고 애쓰지만 나에게만 안겨있으려 해서 육체적으로 힘이 든다. 피곤하고 몸이 뻣뻣해지면 우울한 감정이 깃든다. 늦은 시간까지 해야만 하는 것들을 붙잡고 있으면 몸이 무거워지고 자고만 싶어 진다. 조금만 남편의 도움이 있다면 힘이 날 것 같은데 아이가 자신에게 오면 울고, 안겨있지 않으려 해서 아이를 돌봐주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스마트폰과 한 몸이 된다. 동영상을 끊임없이 보느라 손가락만 열일을 할 뿐이다. 운동도 하고 자기 계발을 했으면 좋겠는데, 경제적인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남편도 현실로부터 도망쳐 동영상의 세계로 가 위안을 얻고 있는 걸까. 모든 갈등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 생각하고 남편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티브이 속 상담 프로그램을 보면 가끔씩 눈물이 난다. 그들의 상황과 같지는 않지만 그들이 느끼는 상실감이나 좌절감, 낮은 자존감들이 나에게 해당되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난다. 그들의 사연도 안타깝지만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나 자신을 보며 현실에 순응하는 것 같아 한숨이 나온다. 불안함과 무기력 속에 숨어 있는 '진짜 나'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나의 진짜 모습인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의 진짜 개성은 무엇일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글을 쓰고도 있지만 글로 인해 오히려 생각만 많아지고 실행은 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방법 밖엔 없는 것 같다. 현실을 직면하고 인정할 수 있고 그 어떤 표현도 해낼 수 있기에 글을 놓을 수 없다. 글로 표현하고 그런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모든 걸 쏟아내어도 아무런 말이 없다. 그 어떤 비난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부족한 나를 탓하고만 싶어도 나 자신은 뭐든지 해낼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비록 현실 속 나는 불안과 안정을 왔다 갔다 하며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글'이 있어 오늘도 나는 힘을 낸다. 진짜 나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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