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돈이나 지식으로만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엄마와의 통화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둘째가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한글은 읽는지, 첫째는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으로 뭘 듣는지 정보를 캐묻는다. 조카는 방과 후 수업으로 바이올린을 한다며...
나는 조카가 뭘 배우는지 뭘 했는지 사실 관심이 없다. 미안하지만 생일도 안 챙겨준다. 조카는 외동이어서 -언니 부부는 맞벌이를 한다.- 비싼 옷에 비싼 사교육에 넘치게 받으며 살고 있는 중이라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는 그렇게 조카가 뭘 했는데 너희 아이들은 뭘 했냐며 비교하 듯 말한다.
늘 그렇듯 주말이 지나면 엄마 아빤 내가 주말에 뭐했냐며 전화로 물어보신다. 뭘 했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걸까.
부모님은 언니를 대신해 조카가 쓰던 물건들도 버리기 아까웠는지 다 우리 집으로 나르신다. 우리 집은 분리수거장이 아닌데.
얼마 전엔 조카가 쓰던 보풀에 얼룩이 묻은 카시트를 가져오셨는데 딱 봐도 돌 전 아기가 탈 수 없는 주니어용이었다. 그 카시트는 가져온 그대로 창고에 덩그러니 있다.
직접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모든 것이 돈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물론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넉넉하게 살 수 있겠지만, 돈으로 아이의 마음을, 정서를 살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엄마와의 통화 후 칙칙하고 건조한 느낌이 났다. 나는 나로서 잘 살고 있고 힘들지만 책도 읽으며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하고 통화하고 나니 흘려보냈다고 생각했던 비교의 상처가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감정에 대한 대화가 전혀 없이 늘 무얼 가졌는지 무얼 했는지만 물어보시니 대화가 하기 싫어진다.
억지로 대답하고 이상하게 흘러간 대화였다. 얼른 나는 알겠어요 하며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엄마와의 대화 도중 나는 "요샌 엄마 아빠 세대와는 다르게 정서적인 것이 중요해."라고 말했다. 나는 조카의 근황에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엄마 아빤 언제나 그랬듯이 코웃음을 치셨다. 엄마가 자꾸 둘째 아이가 한글을 읽어야 하는데 하시길래 억지로 되는 건 없다고 말씀드렸다. 본인이 관심 있어하는 것부터 자연스럽게 알아가고 있다고, 모국어니까 본능적으로 배워지는 것도 많다고 말씀드렸다. 역시나 의사소통 유형이 '초이성형'인 엄마는 어떤 말을 읽을 줄 아냐며 물어보셨다.
억지로 지시하고 명령하면 아이들이 불안해한다고 말씀드리니, 엄마는 애한테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신다.
하하. 나는 문제가 있다면 부모에게 있겠지. 하고 받아쳤다.
내가 원했던 대화도 아니었고 기다리던 전화도 아니었기에 더 이상하게 흘러가기 전에 그만해야겠다 생각했다. 자연스러운 대화가 아니었다.
전화를 끊으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고, 괜히 기분만 상했다.
다시 말하지만 난 조카가 무얼 하고 무얼 가졌는지 궁금하지 않다.
난 우리 아이들의 정서적 행복이 더 중요하다. 무얼 가졌는가 보다, 아이가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가
더 궁금하고 중요하다. 부모에겐 자식을 행복하게 해 줄 의무가 있는 거니까.
나는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싶다.
삶은 돈으로만 지식으로만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고.